필자는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명절이나 어버이날처럼 특별한 날에만 부모님을 챙기는 것 같다. 어버이날에도 마음을 담아 카네이션 한 송이 부모님 가슴에 꽂아드리지 못하고 전화로 안부만 전하곤 했다. 자기 몸 하나 건사 잘 해도 효도라고 하지만, 부모 입장에서는 자식들 생각이 가득일 것이다. 일요일 아침 늦잠을 자는 딸의 기상시간을 기다렸다가 전화를 하신다는 어머니 말씀이 문득 떠올라 필자도 죄송한 마음이다. 그런데 모 신문사에서 직장인과 대학생들에게 설문 조사를 한 결과 73%가 가장 부담스러운 기념일로 어버이날을 꼽았다. 조금 씁쓸한 결과다. 경쟁사회에서 아무리 살기 힘들다고는 하지만 적어도 부모 자식 간의 소통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이번 어버이날에는 부모와 자식 간에 물질적인 교류보다 마음의 교류가 많은 날이었으면 좋겠다.

그나마 5월에 어버이날이라도 있어서 다행인 것 같다. 자식들에게 5월 8일 하루만큼은 강제로라도 낳은 정, 기른 정을 생각하게 하는 날이다. 4월 말이나 5월 초에 백화점에 가면 우리나라 사람들 대부분이 효자인 것으로 착각할 정도로 부모님을 위한 선물이 풍성하다. 그러나 필자도 부모가 되어서 알게 된 것이지만 부모는 자식들에게 거창한 선물을 기대하지 않는다. 그저 마음이 담긴 따뜻한 말 한 마디가 그리울 따름이다. 요즘 우리들은 자식에 대한 사랑은 지나칠 정도로 크지만 부모에 대한 사랑은 정반대다. 자식으로부터 소외당한 노년의 고독과 외로움이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고 있을 정도로 쓸쓸한 노인도 많다.

어버이날은 잘 알다시피 어머니날로부터 시작되었다. 1910년경 미국에서 한 여성이 돌아가신 어머니를 추모하기 위해 교회에서 흰 카네이션을 교인들에게 나누어준 데서 유래된 어머니날은 우리나라의 경우 1966년에 제정되었다가 1973년에 아버지, 어른, 노인들을 포함한 지금의 어버이날로 이름을 바꾸었다. 부모님 가슴에 달아주는 카네이션은 살아계신 어머니에게는 빨간 카네이션을, 어머니를 여읜 사람은 어머니의 무덤에 흰 카네이션을 놓았다. 빨간색 카네이션은 ‘건강을 비는 사랑’과 ‘존경’이라는 뜻이 담겨 있다. 카네이션의 꽃말은 ‘모정, 사랑, 부인의 애정’이며, 색에 따라 각각의 꽃말도 다양하다. 분홍색을 띠는 카네이션은 ‘당신을 열애합니다’, 흰색은 ‘돌아가신 어버이를 추모합니다’를 의미한다고 한다.

‘어버이날에는 어떤 선물을 해드릴까?’를 생각하는데, 부모님과 함께 하는 시간을 갖는 게 제일 중요하다는 것이 필자가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느끼는 마음이다. 필자는 그동안 이 칼럼을 통해 시즌별로 어떤 음식을 먹어야 몸에 좋은지를 소개해왔다. 그러나 어버이날에는 기존의 영양학적 관점보다 심리학적 관점을 강조하고 싶다. 부모님의 마음을 챙겨야 부모님의 몸이 건강할 수 있으니까. 꼭 시간을 내서 직접 차리는 건강밥상이 아니라 외식을 하는 것은 어떨까? 비싼 음식, 화려한 장소가 중요한 게 아니라 자식과 같이 보내는 시간, 함께 이야기를 주고받는 그 시간이 세상 그 어떤 선물보다 값진 것이라고 믿는다.

예전에 우연히 본 그림 중에 필자를 참 행복하게 하는 그림이 하나 있었다. 프랑스 화가 밀레의 그림인데 어린 아기를 문턱에 앉히고 엄마가 아기에게 밥술을 떠 넣어 주고 있다. 두 언니가 앞에 앉아서 그런 동생을 귀여운 표정으로 지켜보는 그림이었다. 필자는 이 그림에서 부모 자식 간의 행복감을 온전히 느낄 수 있었다. 올해 어버이날에는 이런 풍경을 만드는 가족이 많았으면 좋겠다. 유태인들은 가족 사랑이 애틋한 민족 중에 하나다. 유태인들의 가장은 퇴근하면 바로 집으로 와서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며 저녁 준비도 아내와 함께 한다. 어떤 정치인이 얘기한 저녁이 있는 삶이 이런 풍경이다. 가족 간의 관계가 점점 소원해지는 우리들에게 가족의 소중함을 느끼게 하는 풍경이 아닐까.

우리나라 부모 세대는 자식들을 성공시키느라 자신의 인생을 송두리째 희생한 부모들이 많다. 그러나 그렇게 힘들게 키운 자식들에게 제대로 대접을 못 받고 있는 게 또 현실이다. 홀로 어버이날을 맞이하는 할머니에 관한 뉴스를 보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이 할머니들에게 가장 반가운 사람은 복지관에서 도시락을 가져다주는 봉사자이다. “그래도 어버이날이라고 복지관에서 카네이션 하나 갖다 주더라고.” 이렇게 말씀하는 할머니에게 한두 끼를 해결할 도시락보다 더 소중한 것은 말동무를 해주는 봉사자이다.

우리 부모님들에게는 맛있는 대화가 필요하고, 마음의 영양식이 필요하다. 어버이날을 단 하루 특별한 날로 그치지 말고 따뜻한 말과 소식으로 사랑을 드려야 한다. 좋은 음식을 먹어도 외로움과 기다림에 지치면 세포가 손상되고 조직은 노화되어 질병에 걸릴 수밖에 없다. 부모님께서 건강하게 지내실 수 있도록 하는 가장 아름다운 선물은 자식일 것이다. 자식들의 웃음과 기쁜 소식들이 부모님께는 한아름 진짜 선물이라는 것을 기억하고 부모님의 마음영양을 위한 사랑나눔으로 이 한 달을 가꾸어 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