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미국 IT 스타트업계 분위기가 좋지 않다. 지속적으로 수익성이 확보 가능한 비즈니스 모델의 부재로 인해 사실상 ‘돈줄’이 말라 있는 상황. 특히 IT 업계는 장기간 투자비용을 벤처캐피탈이나 엑셀러레이터에게 의존하기 때문에 연구개발비, 마케팅비, 노동비 등으로 지출하고 나면 또 다시 돈을 투자받아야 하는 악순환이 지속된다. 그러다 보면 스타트업이 ‘빚더미’에 앉게 되고, 전체 스타트업 생태계가 ‘빚 경제’로 변해버리는 상황이 연출된다. 지금 실리콘밸리의 상황이 그렇다.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2015년 미국 IT 스타트업들이 400억달러가량의 투자를 받았던 것 대비 2016년에는 285억 규모로 급감했다. 가장 큰 이유는 테라노스 등과 같은 ‘IT 유니콘’들에 대한 각 투자기관들의 실망 탓이 크다.

서비스, 콘텐츠 등 무형의 가치를 바탕으로 고객을 유도해야 되는 산업보다 실제로 ‘땅’과 ‘경작물’을 소유할 수 있는 농업이 더 가치가 높다는 지적이 계속 나오고 있다. 특히 생산, 유통, 판매를 잇는 농업 스타트업 모델이 ‘말뿐인 IT 스타트업’들보다 훨씬 현실적이라는 입장이 지배적이다. 스파크 캐피탈(Spark Capital)의 창업자 토드 다그레스(Todd Dagres)는 2010년부터 소형 컨테이너들을 도시형 농장으로 바꾸어온 ‘프레이트 팜스’(Freight Farms)에 투자하기로 한 배경을 설명하며 ‘도시 농부’(Urban Farmers)의 가능성을 언급했다. 스파크 캐피털은 프레이트 팜스에 초기 투자비로 370만달러(한화 41억원)가량을 쏟아 넣으며 LED 조명과 습도 제어 시스템, 통기 기능 등이 탑재된 애그리테크 모델에 깊은 관심을 기울였다. 프레이트 팜스는 사물인터넷과 상추 재배를 결합, 한 번에 700포기까지 재배가 가능한 시스템이다.

프로듀스 페이(Produce Pay)는 ‘미국판 카카오 파머’(Kakao Farmer)로 불린다. 농민들이 수확, 저장해둔 농작물을 빠르게 시중에 판매할 수 있도록 이어주는 플랫폼 역할을 하며 농민들의 유동성 확보에 조력한다. 특히 프로듀스 페이는 북미, 중남미 지역에서만 2016년 기준으로 8000만달러의 수익을 올리며 혁신적인 사업 모델의 수익성을 입증했다. 창업자인 파블로 슈바즈벡은 농가 4세 출신으로 코벤처(Coventures)와 500스타트업(500 Startup) 등 유수의 벤처캐피탈에서 자금을 조달, 각국 농민들의 수익성 제고를 도와주고 있다.

 

‘말뿐인 벤처’에 대한 피로감이 ‘농업 벤처’에 대한 관심 불러일으킨다

스타트업 거품에 대해 국내 벤처 투자업계도 피로를 느끼기는 마찬가지 상황이다. CK 인베스트먼트 대표이사이자 한국외국어대 경영학부 겸임교수로 있는 강명재 박사는 ‘말뿐인 벤처에 투자자들의 관심이 급감하고 있고, 진짜 산업의 경계를 붕괴시키고 새롭게 도약할 수 있는 벤처를 찾고 있다’며 농업 벤처의 참신성 주목 배경을 설명했다. 특히 강 박사는 KBS 벤처 공모전 프로그램인 ‘황금의 펜타곤’에서 ‘만나씨이에이’ 등 애그리테크 전문 벤처들을 감별해내며 관련 분야에 꾸준히 관심을 기울여 왔다. 그는 기업가치평가 과정에서 지식, 창의성과 같은 무형의 성과들을 일일이 측정하기 어려운 일반 스타트업과 토지 및 농산물 등 유형의 대상을 포착할 수 있는 농업 벤처들은 큰 차이점이 있음을 지적했다. 또 강 박사는 농업 분야에서 생산‧유통‧판매를 일원화하는 ‘6차산업’(1차산업과 2차산업, 3차산업의 메커니즘을 결합하자는 정책적 슬로건으로 일본의 농림수산성에서 유래한 용어)과 최근 논의되는 4차산업 혁명 트렌드 하의 농업도 구분해야 한다고 분석했다. 국내외에서 흥행하고 있는 농업 벤처들 중 상당수는 각종 자동화 기술, 측정 기술 등과 함께 동종 상품 생산동향과 시장 동향을 동시에 체크하고, 시장과 시장을 잇는 ‘산업 간 융합’에 입각한 모델이라는 것이다. 같은 맥락으로 강 박사는 일반적인 농작물 재배 방법의 혁신 이외에도 기술을 통해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는 ‘4차산업 기반’의 농업 벤처 혁신 사례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분석했다.

 

 

농업 벤처에 대한 인터넷 담론은… ‘교육, 기술, 산업’

본지가 자체 SNS 빅데이터 조사 분석을 해본 결과 농업 벤처 관련 이슈 중에서 가장 핵심 화두는 ‘교육’(1위 : 6425건) ‘기술’(2위 : 5503건) ‘정책’(5위 : 4593건)으로 나타났다. 본지는 2016년 4월부터 2017년 4월까지 1년 동안 온라인 포럼, 트위터, 네이버 블로그 등에 게재된 네티즌들의 포스팅 19만2781건을 수집한 후 ‘연관어 분석’, ‘감성 분석’ 등의 기법을 통해 핵심 키워드를 도출했다. 가장 많이 언급된 순서대로 명사들을 나열해보니 ‘교육, 기술, 산업, 사업, 정책, 지원, 뉴스, 농촌, 도시’ 순이었다. 정부가 홍보하는 키워드들이 대부분이었다.

사실상 대부분의 농업 벤처들이 정부주도형 모델로 사업을 진행하고, 성장하고 있기에 글로벌 시장으로 눈을 돌리는 데에는 본질적 한계점이 있다는 해석도 가능할 법 하다. 대부분 정부 산하기관의 벤처 지원 프로그램은 ‘소액다건’(많은 벤처에게 적은 양의 돈을 지원하는 형식) 형으로 구성되기 때문에 지속적인 혁신 기업 지원이 어렵다는 일각의 분석도 있다. 김윤형 한국외국어대 상경대학 명예교수는 ‘그동안 우리나라 벤처 지원 정책은 큰 정부 관점을 바탕으로 한 자금 제공 모델에 집중되어 왔기 때문에 젊은 농업 벤처인들의 자율적 창의성을 억제할 위험도 있다’고 지적했다. 또 김 명예교수는 그동안 판매와 유통 채널 간의 급격한 영향력 차이로 인해 농업 벤처 시장 자체가 ‘기울어진 운동장’으로 전개되고 있다는 점도 난점으로 분석했다.

 

제조, 판매혁신과 함께 유통, 자금조달 체계 혁신 뒷받침되어야

식용 및 사료용 농산물의 가격 변동을 대부분 대기업이 쥐고 있기 때문에 이들의 횡포를 막을 수 있는 스타트업, 농가 지원 프로그램도 절실한 것으로 보인다. 덴마크의 축산업협동조합 모델인 대니쉬 크라운(Danish Crown)은 양돈 축산 협동조합 모델로 농민들이 함께 공장을 운영하고 사료를 생산하며 시장 가격 변동폭에 따라 생산량과 유통량을 자유자재로 조절할 수 있는 기구로 각광받고 있다. 대니쉬 크라운은 1882년 덴마크 축산업 농민 500명으로 시작해 2017년 오늘날까지 지속되고 있다. 반면 한국의 농민 협동조합 대부분은 배타적인 납품 규정 등으로 경상북도에 위치한 농가가 경기도에 납품하기는 어려운 배타적 시장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이러한 ‘유통 칸막이’를 없애고 전국적인 규모의 집적장 설치를 통해 농민들의 효과적 납품과 판매를 돕기 위한 시스템이 절실한 셈이다.

국내 사례도 있다. 농부들을 위한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으로 각광받는 농사펀드는 농업 자금 조달 과정의 혁신을 통해 농가들의 위험부담을 줄여주겠다는 명분을 갖고 있다. 농사펀드는 2017년 기준으로 180개 가구에게 친환경 및 일반 농업을 위한 투자를 진행했다. 이 펀드는 각 상품 유형별로, 지역별로 고르게 자금을 배분한다는 명분을 갖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