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후보들이 토론회에 나와서 하는 말을 보면 보통 비위가 아니고서는 참기 힘들만큼 감정을 거슬리는 말과 표현으로 상대 후보를 제압하려고 한다. 이럴 때는 비위가 좋은 사람이 결국 이긴다. 비위는 비장과 위를 말한다. 비장은 흔히 ‘지라(Spleen)’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위를 뺀 간을 비롯한 모든 소화 장기의 기능 일체를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그래서 소화 기능뿐만 아니라 기호, 기분이나 감정의 흡수력뿐만 아니라 넉살까지도 비위와 관련이 있다고 본다. 그래서 비위가 좋으면 아무 것이나 가리지 않고 잘 먹고 잘 소화하며, 마음에 안 맞는 사람과도 잘 만나 잘 사귀는 것을 말하기도 한다. 반면 매사에 까다로운 사람은 어떤 음식을 보아도 일단 곤충의 더듬이처럼 코를 벌름거리며 냄새를 맡고, 또 조금 먹어보고 입맛에 맞지 않으면 바로 뱉어낸다. 또 사람을 사귀어도 어떤 사람이든 의심하지 않고 바로 친화력을 발휘해 상대와 친해지는 넉살 좋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무조건 상대를 자신의 잣대로 가늠해보고 약점부터 찾아내어 제압하려 하거나 상대를 왕따시켜 주도권을 쥐려는 사람도 있다.

이처럼 음식이나 일에 대해 먹고 싶은 생각이나 하고 싶은 일이 왕성하면 비위가 좋다고 한다. 대중 앞에 서면 오히려 힘이 나고 어떻게든 관중을 사로잡는 카리스마를 발휘해 인기를 독차지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사람들 앞에 나서면 하늘이 노래져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고 우왕좌왕하다 마는 소심한 사람도 있다.

식욕이 왕성하면 배고픔을 못 참고 무엇을 먹어도 소화가 될 것 같으며, 소화에 자신이 없으면 조금 기름진 음식을 보기만 해도 체할 것 같은 사람이 있다. 이런 사람들에겐 대중 앞에 나서는 일 자체가 스트레스다. 작은 일도 결정을 못 내리고 밤잠을 설치며 고민하기 마련이다.

자신을 험담하거나 폄하하는 말을 해도 대수롭지 않게 무시하고 받아 소화할 수 있으면 정말 넉살 좋은 사람이다. 그러나 소소한 거슬림에도 못 참고 화를 내고 성질을 낸다면 비위가 약한 사람이다.

이런 상황에 가장 현명하게 처신할 사람은 관대한 태음인이다. 어떤 경우도 흔들림 없이 오히려 숙고해 유머러스하게 되받아칠 수 있는 여유를 가진 사람이다. 즉각 반응하지 않고 천천히 꾀를 내어 임기응변으로 곤란한 상황에 대처하는, 아주 능구렁이 같은 능수능란한 ‘요령쟁이’이다. 그러나 편협해져서 화부터 내고 앞뒤를 재지도 않고 버럭 화를 내었다가는 자기도 억제할 수 없게 큰 사고를 칠 수도 있는 편이라 조심해야 한다. 욱하는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는 사람이 진다는 생각으로 잘 참아내야 한다.

소음인은 이런 토론과 경쟁에 아주 약해서 아주 조심스럽다. 머릿속에는 아주 논리정연하게 무장되어 있지만 조금만 공격해도 요령 있게 대처하지 못하고 당황하다가 쉽사리 무너지기 쉽다. 혼자서 강의를 해보라고 하면 아주 빈틈없이 잘할 수 있으나 토론에 들어가 자기의 논리에 반하는 의견을 제시하면 이성을 잃고 자신의 방어막을 치는 데 허둥대는 모습이 역력하다. 이는 자존감이 낮고 비위가 약해 상대를 포용하고 상대방의 의중을 소화시킬 여력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작 외나무다리를 잘 건널 수 있다는 배짱을 가질 수만 있다면 오히려 유능한 협상가가 될 수도 있다.

소양인은 워낙 사교적이라 자신의 영혼을 팔아서라도 상대방을 받아들이려고 한다. 상대방이 공격을 해오면 우선 자존심을 꺾고서라도 일단 양보한다. 물론 ‘정의의 이름’ 아래 자신을 낮추지만 결국은 그를 설득해 자신의 이득을 보려는 욕심이 거기엔 숨어 있음을 알아야 한다. 문제는 서둘러 승부를 내려고 하다 보면 결국 화를 내게 되고, 자신의 의도를 상대방에게 읽히게 되어 낮은 수가 들통나기도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협상에 약하다. 모 재벌은 미국 자동차 회사가 인수하려고 10년간 협상해 오던 헝가리의 자동차 회사를 단 4시간 만에 인수하라고 결정을 내려 결국 그 회사가 망하게 되는 결과를 초래한 적도 있다고 한다.

협상을 잘하려면 작은 꼬투리를 잡아 간단한 기술로 넘어뜨리겠다는 얄팍한 수작보다는, 신속한 관찰과 상대방의 의중에 대한 객관적 평가를 가지고 전체의 흐름을 잘 파악해, 작은 것은 양보하고 큰 것을 얻는 것이 비위 좋은 협상의 명수가 되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