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시인들은 동굴에서 부족이 함께 살았다. 이들은 그 부족의 규율에 의해 모든 걸 공개했다. 동물과 같던 시절이므로 자신만의 생각이 허용되지 않았다. 누가 누구와 사랑을 나누는지도 감출 수가 없었다. 하지만 원시인들이 깨우치면서 차츰 자신만의 생각을 갖기 시작했고 남에게 들키고 싶지 않은 자신만의 비밀이 생겼다. 부끄러운 곳을 가리기 위해서 옷을 걸쳤고, 남과 다른 공간에서 거주하기 시작했다. 학자들은 사생활을 정의할 때 문명을 들먹인다. 사생활은 다른 사람들의 간섭으로부터 자신을 자유롭게 만들어 주는 기반이라고 정의한다. 문명사회로 발전할수록 우리는 집단사회로부터 개인중심 사회로 발전해왔다. 점차 독립된 공간을 만들었고 자신의 개성을 차별화했다.

 

사생활은 문명으로 획득한 인권이다

사생활, 즉 개인정보 보호는 인간이 사회생활에서 누릴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인권으로 취급한다. 1948년에 공표된 세계인권선언문 제12조에서 ‘누구도 자신의 개인적인 일, 가족, 주거 또는 통신에 대해 함부로 간섭받거나 명예 및 신용에 대해 공격을 받지 않는다. 모든 사람은 이러한 간섭이나 공격에 대해 법의 보호를 받을 권리를 가진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대한민국 헌법 제17조에도 ‘모든 국민은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받지 아니한다’라고 선언하고 있고, 제18조에는 ‘모든 국민은 통신의 비밀을 침해받지 아니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개인의 사생활은 양도할 수 없는 인권이며 전 세계 헌법, 법률, 그리고 조약에서 이를 인정한다. 인권은 오프라인뿐만 아니라 온라인에서도 보장받는다. 유엔인권위원회 결의문 A/hrc/20/L.13에선 ‘인터넷에선 인권을 증진하고 보호하며 즐길 수 있는 인권을 갖는다’고 선언하고 ‘온라인에서 간섭받지 않고 의견을 표현할 권리를 실현시키는 데 개인정보 보호는 매우 중요하다’고 언급하고 있다.

경제개발협력기구(OECD)는 개인정보 보호에 관한 구체적인 원칙들을 잘 정리했다. 1980년에 채택한 개인정보 보호 8개 원칙은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모두 고려한 권고안이란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를 나열하면 ‘①개인정보 수집은 합법적이고 공정한 방법으로 데이터의 주체로부터 지식이나 동의를 얻어야 한다는 수집 제한 원칙; ②개인 데이터는 사용 목적과 필요한 범위 내에서만 활용되도록 완전히 최신 상태를 유지시켜야 하는 데이터 품질 원칙; ③데이터 수집 시점과 목적이 제한된 범위에서만 사용해야 하는 목적 명시 원칙; ④개인 데이터는 명시된 목적을 벗어나서 공개되거나 사용될 수 없다는 사용 제한 원칙; ⑤데이터에 무단으로 접근해 파괴하거나 변경 또는 사용하지 않도록 안전장치를 하는 보안 원칙; ⑥개인 데이터의 성격과 주 사용목적, 정체성, 데이터 존재와 본질이 쉽게 사용되도록 하는 개방성 원칙; ⑦데이터 사용자가 어떤 개인의 데이터를 가졌는지 그리고 그 데이터를 확인할 수 있도록 하는 개인 참여 원칙; ⑧데이터 사용자가 위에 언급한 조치들을 취할 책임을 지는 책임 원칙’ 등이다. 하지만 이런 원칙들이 현실적으로는 지켜지기 매우 힘들다는 문제점이 있다.

개인 데이터란 여러 가지 측면이 있다. 개인의 특징을 구분하는 정보로는 신분을 구분해주는 신분정보(이름, 주소, 전화번호, 이메일, 모습 등), 인류학적인 정보(나이, 성별, 교육, 직업, 이력 등), 관심사항(취미, 좋아하는 일, 좋아하는 음식, 색상, 선호도 등), 보유장비(인터넷 IP 주소, 휴대폰 암호, 각종 온라인 암호 등) 등이 있다. 주변 인물정보로는 접촉인사들, 가족과 친척, 친구들, 동창들, 친목회원들, 소셜 네트워크 친구들이 있다. 소통정보로는 소셜 미디어의 기록들(문자, 사진, 댓글, 음악, 사용하는 앱, 열람한 비디오물 등)과 문자소통기록 그리고 대화 내용, 방문기록 등이 있다. 활동정보로는 식사, 운전, 취침, 쇼핑 정보 등이 해당된다. 재무정보로는 수입, 지출, 거래, 계정, 주식, 채무, 보험, 고정급, 세금, 신용등급 등에 관한 정보들과 상품 구매정보가 해당된다. 정부기록 정보로는 주민등록, 범죄기록, 군대복무기록, 세무, 부동산 등기 등의 정보가 있다. 또 건강정보는 복약기록, 건강검진 기록, 질병기록 등이다. 이외에도 개인적 취향에 따른 문화생활 기록들 예를 들면 책, 영화, 비디오, 음악, 소프트웨어, 방문지, 접촉인사, 관련된 사건이나 행사들에 관한 기록도 모두 개인 데이터 범주에 속한다.

 

디지털 인격은 스스로 지킨다

디지털 세상이 되면서 개인정보는 모두 디지털 데이터로 전환되었다. 개인 정보는 다양한 형식의 파일들로 디지털 인격체를 만들어낸다. 개인정보도 세분화되면서 비밀로 감추는 대상이 아니라, 분류기준에 따라서 어떤 정보는 교환하거나 판매하고 어떤 정보는 감추는 등 의도적으로 관리해야 하는 대상이다. 일부 정보를 공개해 남과 차별화된 혜택을 추구할 수도 있다. 디지털 인격은 ‘자신에 관한 개인 데이터를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고 자신의 이익과 의도에 맞게 주관적으로 권한을 행사한 결과’라고 설명할 수 있다. 개인 데이터를 관리함에 있어서 공짜 점심을 바랄 수 없다는 표현이 딱 들어맞는다. 자신의 데이터를 전혀 노출시키지 않고 외부로부터 부가적인 이익을 취하기는 힘들다. 어떤 정보는 잠그고 또 다른 정보는 자유롭게 흘려서 혜택을 취하는 등 공개 범위의 절충점을 찾아야 한다. 개인 데이터를 공개할 때는 당연히 교환가치를 따져봐야 하며 적절히 절충해서 얻고자 하는 가치를 키울 수 있다.

부모가 아이의 페이스북 게시물들에 대해서 노골적인 의견을 내세워 가르치려 든다면 먼저 아이의 주변을 감싸고 있는 사생활을 해치지 않을 만한 절충점을 찾아야만 한다. 보통 사람들은 소셜 미디어 공간에서 익명성을 유지하면서 실용적으로 다른 사람들의 정보를 얻고자 하는 욕심이 있다. 하지만 자신을 전혀 드러내지 않은 상태로 좋은 정보를 상대와 교류하고 싶다는 생각은 과욕이다. 건강정보도 개인정보 보호 차원에서 절충점을 찾기 어려운 분야이다. 전자건강기록을 공개하는 일은 사생활을 노출하는 위험이 있지만 삶의 질이나 질병을 예방한다는 관점에서 보면 이득이 될 수 있다. 인터넷 웹사이트 방문기록을 저장한 쿠키 분석과 잠재고객에 대한 서비스 향상도 개인정보의 활용상 절충점이 필요하다. 개인정보는 아이들과의 소통이나 교육, 건강증진, 더 나은 서비스, 전기‧물‧가스 등의 효율적인 관리, 자기표현이나 자랑거리 등 다양한 관점에서 서로 다른 절충점들이 존재한다. 경제활동이 서비스산업 중심으로 바뀌면서 개인정보는 경제활동의 도구이기도 하다. 개인정보를 잘 활용해야만 최적의 맞춤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다.

 

 

개인정보 공개는 증강효과를 노린다

사기피해, 범죄희생 등을 방지하려면 개인정보를 공개하지 않아야 하지만 다른 관점들과 절충해야 하므로 세심하게 공개 범위를 정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공권력이 인터넷에서 포르노 검색을 차단하고, 거리에서 카메라 감시활동을 벌이고, 주민등록에 지문을 채취하는 일 등에 동의하고 있다. 하지만 동시에 회의론과 공포를 느끼는 점은 공개한 데이터가 기업에 의해 상업적으로 오·남용하거나 정부가 사회적 통제의 수단으로 악용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1949년에 출판한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에선 전체주의 국가 오세아니아를 통치하는 빅 브라더가 모든 시민을 원격으로 감시한다는 가상세계를 예측했다. 사실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우리의 사생활은 마치 빅브라더의 텔레스크린 속에 드러나듯이 거의 노출된 상태에 놓여 있다. 정부는 마음만 먹으면 디지털과 미디어를 활용해서 모든 사람들을 감시할 수 있다. 일반인들은 체념하듯 데이터 감시사회를 수용하고 있다. 데이터 오·남용을 의심하면서도 개인정보 공개에 동의하는 이유는 디지털 세상을 보다 편리하게 살아갈 수 있는 힘이 증강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디지털 사회에선 사생활을 잊어버려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정치인이나 정책 입안자는 디지털 개인 정보 보호를 기본 권리로 삼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고 말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더욱 많은 장치가 인터넷에 연결되고 있고, 개인 데이터가 입력되어야만 작동하도록 시스템이 설계되므로 개인정보를 무조건 닫고 살 수만은 없다. 끊임없이 변하고 있는 주변 상황에 맞춰 개인정보의 공개 대상이나 범위를 달리할 수밖에 없다. 다만 누가 어떤 데이터에 액세스할 수 있고 무슨 용도로 사용되는지에 대해 분명히 알 필요가 있다.

 

과연 세상은 나의 인권을 지켜줄까?

그러나 온라인 규제가 기술혁신을 제약하는 부작용이 있다는 주장이 강하다. 최근 트럼프 행정부가 들어선 지 두 달 만에 공화당이 다수인 미 상원에서 개인정보 수집 규제법을 폐기하는 결의를 했다. 이는 작년 10월에 오바마 정부 하에서 통신사업자가 개인의 웹 탐색 및 앱 사용기록, 위치 방문기록 및 재무정보와 관련된 데이터를 사용자의 허락 없이 수집하거나 제3자에게 전달할 수 없다고 한 개인정보 보호규제법이다. 연방통신위원회가 개인정보 보호규제법을 다시 폐기하기로 한 이유는 페이스북이나 구글은 온라인 콘텐츠에 접근할 수 있는데 비해 통신사업자들에게만 규제를 가하는 건 불공정한 규제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따라서 통신사업자들도 인터넷 회사들과 마찬가지로 온라인 콘텐츠에 접근할 수 있게 되었다. 개인의 허가 없이도 웹 탐색이나 앱 사용실적을 추적하고 공유하며 제3자에게 민감한 개인정보를 판매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이번 조치는 인터넷이 통신뿐만 아니라 교육, 직장 그리고 상업 활동을 하는 중요한 수단이라는 점이 고려되었다. 미국의 개인정보 보호 법규가 우리에게 중요한 이유는 우리가 사용하는 디지털 데이터들이 모두 미국 기업의 데이터센터에 저장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깨알같이 적혀 있는 사용동의서에 대부분 무방비로 동의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미국 국가정보국(NSA)는 세계의 모든 사람들의 활동들로 인해 발생하는 디지털 데이터를 연속해서 감시하려는 목적으로 지금 베수비어스(Vesuvius)란 양자슈퍼컴퓨터를 구축하고 있다. 국가안보와 민주주의의 보호란 미명하에 비밀사찰을 준비하는 중인 것으로 보인다. 과연 디지털 문명은 개인의 인권을 원시동굴사회로 환원시키려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