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약 드실 시간입니다.” 또르르 굴러온 로봇이 말을 건넨다. “아 또 까먹고 있었네. 고맙다.” 혈압이 높아 약을 꼬박꼬박 챙겨 먹어야 하는 M 씨에게 가정용 로봇은 소중한 동반자다. 서울시 강남구에 사는 M 씨는 최근 회사를 명예퇴직했다. 남편과 둘이 저녁을 먹을 때면 출가한 자녀들이 떠올라 적적할 때가 많았다. 그런데 집에 귀여운 가정용 로봇이 들어온 이후 말수가 많아졌다. 자주 잊어버리는 약 복용 시간과 일정을 알려준다. M 씨 부부는 조만간 친구들과 여행을 떠난다. 스스로 건강을 관리할 수 있는 디지털 헬스케어 기기만 있으면 든든하다. 건강만 지키면 독립적이고 행복한 노년기를 보낼 수 있지 않을까. M 씨는 오늘도 스마트워치에 찍히는 심장박동수를 확인하며 힘차게 걸음을 내딛었다.  

“50대 이상이 인구의 절반, 부의 80%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을 위한 브랜드는 아직 없다. 이제 시작이다.” 노인 온라인 커뮤니티 실버서퍼닷컴의 대표 마틴 록이 실버세대가 시장의 주요 고객층으로 등장할 것을 예견하며 말했다.

현재 노년층으로 진입하고 있는 세대는 1955~1963년대에 걸쳐 태어난 베이비붐 세대라 할 수있다. 약 725만명에 달하는 베이비부머는 전체 인구의 15%에 달한다. 이들은 경제 호황기를 거치며 경제력을 갖췄고, 디지털에 익숙한 최초의 세대다.

지난 2010년 은퇴를 시작한 베이비붐 세대는 인터넷 쇼핑,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 다양한 인터넷 서비스 및 디지털기기 활용에 능숙한 액티브 시니어다. 최근 장년 또는 노년층이 게임이나 고화질(HD) TV, 휴대전화 등 정보기술(IT) 기기를 즐기는 비율도 늘고 있다. 한국보다 앞선 시장인 미국에서 변화가 먼저 감지되고 있다.

 

최근 미국 시장조사기관인 포레스터 리서치는 미국인 4만8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 조사 결과 최신 첨단 IT 전자 기기들이 젊은이나 노년층 구분 없이 사회 전반적으로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는 결과를 공개했다.

40세 이상인 경우 84%가량이 인터넷을 사용하고 있었다. 이들 중 3분의 2가량이 광대역 인터넷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으며 57%가량이 휴대전화를 이용 중이다. 포레스터 리서치는 미국 장 노년층에서도 퍼스널 컴퓨터와 MP3 플레이어, HDTV, GPS 등의 사용 빈도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장·노년층의 절반가량이 일상적으로 닌텐도 위 등을 이용한 게임을 즐기고 있다고 밝혔다.

한국 베이비붐 세대도 미국의 트렌드를 이어가고 있다. 베이비붐 세대의 특징 중 하나는 과거의 노년층과 달리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주도적으로 형상해 나가고 있다는 점이다.

은퇴 후 삶에서도 베이비붐 세대는 노령 세대와 다를 것으로 보인다. 여가생활, 부부 가족관계, 새로운 소비 풍조 등 긍정적인 기대감도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보건사회 연구원은 베이비붐 세대는 가족중심 가치관과 자녀를 위한 부모의 헌신을 강조했던 노령세대와 다르게 “자녀로부터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노년기를 성공적 노화로 규정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들은 어떤 디지털 기기에 기꺼이 지갑을 열까?

◇​IT 산업의 금맥, 디지털 헬스케어

디지털 헬스케어란 개인의 건강관리 및 질병 예방을 목적으로 헬스케어와 ICT가 융합된 산업 분야를 말한다. 베이비부머들이 노인이 되어감에 따라 6조달러 이상의 거대 산업으로 부상하고 있다.

자가 진단 및 관리를 할 수 있는 디지털 헬스케어 기기가 뜨고 있다. 만성질환에 대한 관심이 확대되며 필요성도 늘고 있다. 당뇨·고혈압 등 만성 질환으로 의료비 부담이 증가하는 가운데 스스로 진단하고 관리할 수 있는 디지털 헬스케어 기기 구매율이 높아지고 있다.

▲ 무채혈 혈당측정기 글루코트랙. 출처=조인메디칼

‘글루코트랙’이란 혈당계는 무채혈 방식의 혈당 측정기다. 당뇨환자들의 경우 혈당관리를 위해 하루에도 몇 번씩 채혈을 해야만 하는 부담감이 적지 않았다. 특히 채혈침에 대한 관리, 알코올 솜 등의 소모품 관리와 비용 또한 당뇨 환자들에게 큰 짐이었다.

스마트폰 사이즈의 글루코트랙은 이어 센서를 귓불에 물리면 1분 이내로 측정치를 보여주는 세계 특허 무채혈 혈당측정기다. 이스라엘 인테그리티(Integrity)에서 세계 최초로 개발된 특허 제품이다. 지난 2014년 유럽 CE 및 임상을 마치고 유럽, 호주, 일본, 캐나다, 이탈리아 등에서 시판되고 있다.

최근 국내 식약처의 수입허가를 마치고 올해 1월부터 국내 시장에 공급되고 있다. 한글 메뉴 및 음성안내가 제공되고 혈당 변화를 그래프로 간편하게 볼 수 있다. 터치스크린 방식으로 사용이 편리하다.

▲ 각종 신체 정보를 확인할 수 있는 스마트 시계. 출처=애플

애플은 헬스 전용 스마트 시계 시대를 선점하려 한다. 지난 4월 12일 미국 <CNBC>는 “애플이 소규모 팀을 구성할 정도의 생명공학 엔지니어를 영입했고 이들은 애플 본사에서 수마일 떨어진 팔로 알토 지역 연구소에서 혈당 수치 모니터링이 가능한 센서를 개발 중”이라고 알렸다.

애플은 글로코트랙과 비슷한 혈당 모니터링 센서 및 혈당 측정기를 개발 중인데 이를 스마트 시계에 내장하려고 한다. 아직 어떤 업체도 스마트 시계에 내장할 만한 크기에 지속적인 모니터링이 가능한 혈당 모니터링 센서를 개발하진 못한 상태다. 구글도 모기업 알파벳 산하에 생명과학 계열사 베럴리(Verily)를 두고 의류 연구 목적 스마트 시계를 개발하고 있다.

▲ 에이수스의 젠보. 출처=에이수스

에이수스는 지난해 대만 타이베이에서 열린 컴퓨텍스에서 가정용 로봇 젠보(Zenbo)를 발표했다. 젠보는 노인을 돌보거나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등 기본적인 개인 사용자 보조 기능을 강조했다. 젠보는 2피트 높이에 바퀴로 이동하며, 표정을 나타내거나 영상 통화, 영화 감상 등에 쓰이는 디스플레이 패널을 갖췄다.

젠보의 핵심은 노인 사용자를 돌보는 기능이다. 에이수스는 젠보가 노인층의 영상 통화나 음성 명령을 통한 소셜 네트워킹을 도울 수 있어 세대 간 디지털 격차를 좁힐 수 있다고 설명했다. 스마트 웨어러블 기기와 연결 가능하고, 위급 상황 발생 시 스마트폰 앱으로 친지들에게 알림을 전달할 수도 있다. 동화책을 읽거나 영상을 보여주고 인터랙티브 게임을 진행하는 등 아동용으로도 사용될 수 있다.

미래지향적 ‘아우라 파워 슈트’도 등장했다. 이제까지 못 보던 옷이다. 노인들이 걷고 일어서서 계단을 오르는 데 혁신적으로 도움을 주는 전기 근육 슈트다. 스위스 출신 산업 디자이너 이브베하(Yves Behar)가 퓨즈 프로젝트에서 만들었다. 이브베하는 삼성전자의 야심작 ‘더 프레임 TV’ 개발에 아이디어를 제공한 세계적인 디자이너다.

로봇 회사인 슈퍼플렉스(Superflex)와 공동으로 디자인된 제품으로 노년층을 타깃으로 일상생활에 도움을 주기 위해 제작됐다. 노인들의 힘을 완전히 대체하는 게 아니라 전기모터로 움직이는 인공 근육 형태로 노인층의 근력을 보완하고 증강시켜주는 제품이다.

가볍고 유연한 원단으로 만들어진 슈트는 육각형 포드(Pod)에 수납된 모터를 통해 전기·물리 자극을 줘 높은 수준의 근력이 생성되도록 돕는다. 전기 근육은 몸통·엉덩이·다리·등 위에 위치한다. 센서가 내장돼 있어 인공 지능을 통해 신체의 자연스러운 움직임이 가능하다. 의료기기 느낌을 지우기 위해 스포티한 슈트 스타일로 제작했다는 후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