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데이터, 드론, 로봇 등의 기술을 활용해 최첨단 농업의 가능성이 주목되고 있다. IT와 농업이 결합된 ‘애그리테크’(Agritech)가 각종 병충해와 풍수해를 이길 수 있는 새로운 예측농업 시스템으로 발전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미츠이, 몬산토, 신젠타 같은 세계적인 농업 분야 기업들도 최근 관개, 농작물 수확 등 특화된 기술들을 바탕으로 한 비즈니스 모델에 적극 투자하고 있다. 미국의 ICT 전문 미디어인 씨비 인사이트(CB Insights)는 미국에만 약 80개의 애그리테크 관련 스타트업이 존재하는 것으로 집계했다. 그 분야는 농장 관리 시스템, 동물 관련 데이터 분석, 유전자 편집 기반 농업, 로봇과 드론, 정밀 농업, 센서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포진돼 있다.

 

애그리테크, 미국 단연 선두… 일본, 중국 등 국가적 차원 맹추격

애그리테크 분야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지역은 단연 미국이다. 최근 미국 시장에서는 자동화 기술과 빅데이터, 센서 등을 기반으로 식물의 생장 상태를 지속적으로 체크하고 각종 변동 상황에 대응할 수 있는 ‘처방 농업’(Precision Agriculture)이 떠오르고 있다. 이 시스템은 농토 곳곳에 센서와 위치추적용 비콘(Beacon)을 설치하고 작물과 토양에 관련된 정보를 취득하고 기후 관련 데이터까지 체계화해 농장주들에게 제공한다.

몬산토는 ‘클라이밋 코퍼레이션’(Climate Corporation)이라는 기후분석용 플랫폼을 내놨다. 디지털 플랫폼 속에서 농장물의 상태를 매 시간마다 체크하는 기능뿐만 아니라 비슷한 지역의 토양, 날씨, 기후 변화 알림 기능 등이 탑재돼 있다.

데이터 기반의 처방 농업은 이벤트 예측 기능뿐만 아니라 아직 농업이 익숙하지 않은 미숙련 농장주(또는 농부)들에게 ‘교육 시스템’ 기능도 제공한다. 존 디어(John Deer)가 공급하는 시드스타 파이오니어(SeedStar Pioneer)라는 솔루션은 이미 개발해 시장에 유통시키고 있는 파종기와 함께 씨 뿌리기에 적합한 토양과 시점 등을 사용자들에게 친절하게 알려 준다.

카이스트 NClab의 강범수 연구원은 “미국은 애그리테크를 단순히 효율적인 농장 관리 시스템으로만 한정시키지 않고, 농작물과 재배자가 직접 교감하고 다른 이들과도 소통할 수 있는 교육 시스템으로 정착시키고 있다”며 “지역사회 차원에서 시스템 기반의 효율적 농업 운영과 다양한 사용자들의 참여를 장려하고 있다”고 애그리테크의 현지 내 성공 배경을 해석했다.

 

중국도 애그리테크 활성화에 열을 올리고 있다. 드론 개발사인 DJI는 운반 기능이 탑재된 드론을 정밀농업에 적용해 수확량을 증가시키는 실험을 하는가 하면, 중국계 벤처기업 알래스카 라이프(Alaska Life)는 도심 지역에서 적정량의 야채를 생산하기 위한 ‘식물공장’ EDN을 내놨다. 대부분의 농부가 일일이 물을 주고 솎아내고, 양분을 주는 과정에서 많은 노동력을 할애하지만, 식물공장 시스템이 적용되면 일주일에 2번가량 체크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농작물 관리가 가능하다는 이점이 있다.

일본은 농업 기술 분야의 종가로 ‘스마트 농업’(Smart Agriculture)의 필요성이 강조된 지 오래됐다. 2014년부터 일본 농림수산성은 네덜란드의 IT 기반 농업 첨단화 모델을 벤치마킹해 원예, 채소재배 등을 위한 다양한 스마트 농법 지원 정책을 펼쳐왔다.

요코야마 돔형 식물공장은 주식회사 그란파가 에어돔 모형 식물공장을 설치, 야채 재배에서부터 유통, 판매 과정 등을 종합한 ‘가치사슬 통합’(Integration of Value Chain) 모델로 각광받고 있다. 돔형 식물 공장은 예측 기반 시스템을 통해 수온과 비료 농도까지 체크하는 한편, 생산된 상품이 구매자에게 효과적으로 전달되게 하기 위한 수요 예측 기능까지 탑재했다.

재생에너지를 활용한 농장의 가능성도 주목되고 있다. 일본의 미야기현 구로카와군의 도요타 스마트 팜은 인근 지역의 자동차 공장에서 발생한 폐열을 이용, 파프리카 등을 재배한다. 폐열을 통해 덥혀진 90도가량의 온수가 실내 온도를 조절하며 작물의 생장을 돕는 시스템으로 구성되어 있다.

 

애그리테크 주목하는 까닭, 재해 대비·곡물 시장 안정 예측

그러면 왜 갑자기 해외 각국이 ‘애그리테크’에 주목하게 된 것일까. 류민호 호서대학교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는 “계속 제기되는 기후, 식량 관련 위기설, 곡물 시장의 불안정 등의 원인 때문에 새로운 농법을 바탕으로 시장 환경을 숙성시켜 보려는 니즈(Needs)가 계속 늘어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재해 노출에 민감한 국가들을 중심으로 애그리테크가 전격 도입되고 있는 상황이다.

일본은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태를 촉발했던 ‘동일본 대지진’을 계기로 청정한 식량의 필요성을 국내외에 강조하고 있다. 최근 들어 지진이 잦아지고 있는 네덜란드 역시 애그리테크를 통한 감자 및 사탕수수 생산을 위한 첨단 농법이 확산되고 있다. 네덜란드 농업부는 ‘SKOS’라는 빅데이터 기반 정보 공유 플랫폼을 바탕으로 기업, 농가, 정부를 잇는 ‘안전 농업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또 금융위기 이후 카길 등의 곡물 거래 기업과 사모펀드들이 투기에 뛰어들면서 안정화된 곡물 공급 체계를 위한 애그리테크 모델도 강조되는 상황이다.

2012년 당시 러시아 정부가 물가 안정을 위해 밀 등의 곡물 수출을 제한하자 이집트를 비롯한 북아프리카 시장에 ‘밀 대란’이 일어났다. 치솟는 곡물 가격을 안정시키지 못한 당시 무바라크 정권은 결국 장기집권에 종지부를 찍고 정부를 넘겨주는 사태까지 발생했다. 농산물 시장의 불확실성으로 이한 ‘정정 불안’까지 막기 위해서는 정부 차원의 ‘애그리테크 정책’을 통해 식량 증산이 필요함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애그리테크 국내서 성공하려면

애그리테크는 기업 주도형 농업 비즈니스 모델이다. 기계에 의한 식량 생산 자동화와 증산을 중요한 축으로 하기 때문에 농산물 시장에 큰 충격을 가져올 수 있다. 이런 애그리테크의 기조는 농산물 수매 정책을 지향하는 한국 풍토와 이질감을 조성할 수 있다는 평가도 있다.

곽규태 순천향대학교 글로벌경영학과 교수는 ‘4차산업혁명으로 인한 노동력 절감 효과와 애그리테크로 인한 농민들의 소득 감소 현상이 비슷한 각도로 나타날 수 있다’고 우려를 표명했다.

특히 농업계에서는 2017년 대선 정책 공약 제언 중 하나로 농민 기본소득 보장, 기초농산물 수매제 등을 강력하게 제시한 바 있다. 해외 농산물의 유입으로 인한 국내 시장의 충격 이외에도 자동화에 의한 농산물 양산이 농민들의 먹거리를 잠식하는 상황을 막으려는 조치다. 곽 교수는 ‘애그리테크로 인한 기술 기반 시장화도 중요하지만 손실에 대한 보전 등을 사회적으로 합의하지 않으면 비즈니스 도입에 큰 장애를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한국에서는 ‘스마트팜’(Smart Farm) 등 농림부 주도로 기술 기반 농업 현대화 작업이 꾸준히 추진되어 왔다. 비근한 예로 1992년 설립되어 지금까지 명맥을 이어 오고 있는 한국농림수산식품정보원이 대표적이다. 이 기관은 농업정보화, 농림수산정보망 구축, 농업용 소프트웨어 개발 및 보급 등을 지속하고 있으나 농민들의 실생활과 접목될 수 있는 정책 개발에는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아 왔다. 또 정부주도형 ‘스마트 팜’이 농업계의 마인드셋 부족, 핵심 개발 기업의 부재 등으로 인해 사실상 도입이 지연돼 왔던 것도 애그리테크가 넘어야 할 장벽으로 보인다.

‘만나씨이에이’ 등 농업 기반 스타트업들의 투자와 관련된 조언을 해온 강명재 CK 인베스트먼트 대표는 ‘애그리테크 모델이 활성화되려면 농업과 기술을 접목한 솔루션과 서비스 등을 포괄적으로 제공할 수 있는 플랫폼 모델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또 강 대표는 ‘기존 ICT 기업의 농업 분야에 대한 관심과 함께 농협 등 전통 농기업의 연구개발 투자도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며 인수합병을 통한 생태계 재편도 적극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며 농업 분야의 산업 구조조정 필요성도 제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