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케이션 담당자로 살아오면서 늘 듣는 이야기가 있다.

‘술 잘 마시겠군. 폭탄주는 몇 잔이나 마시나?’

‘밤새 술 마셔도 끄덕 없어야 하는 거 아냐?’

‘몸으로 때우는 것 아닌가?’

‘기자 몇 명이나 알고 있나? ~~일보, ~~~씨 아나?’

‘바쁜 아침에 신문이나 보고 있고, 팔자 좋다.’

‘광고나 협찬으로 돈 써가면서 기사 내는 거 누가 못해?’

‘신문에 나오는 기사들 다 돈 받고 하는 거 아냐?’

‘돈 쓸 줄만 아는 팀! 회사 돈으로 비싼 것 먹고 다녀서 좋겠다.’

‘~~신문, 그런 매체 누가 보기나 하나?’

‘이것도 못 빼?’  ‘이것 밖에 못 내?’

‘어제 ~~신문에 났던 기사 좋던데, 00신문에도 실어봐’

‘아니 그것도 몰라?’

‘왜, 여기 저기 쑤시고 캐묻고 다녀?’

 

대개 커뮤니케이터 하면 사람들이 떠올리는 것들이 이런 정도다. 아마도 드라마 같은 데서 잘못 비춰진 영향도 무시 못하리라 생각된다. 기업의 어릿광대 정도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어서, 회식자리 같은 곳에서는 흥을 돋워주는 사람인 것마냥 여기기도 한다. 아니면 누가 되었던 간에 그들이 알고 있는 지식과 정보 이상의 것을 알고 있어야 하는 사람이라고 오해 받기도 한다.

 

끼와 재능이 커뮤니케이터의 기본? 꼭 그렇진 않아

이런 오해는 커뮤니케이션 담당들 중에는 뛰어난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 유달리 많기 때문인 것 같다. 언론을 비롯한 외부관심도 끌어야 하고 외부 행사를 비롯한 많은 일들로 외근이 잦다. 공시며 재무며 기업 내부사정에 대해 누구보다 많이 안다. 최고경영진의 의중이 무엇인지, 어떤 이야기를 했는지도 두루 파악하고 있다.

본사에 있으면서 공장의 돌아가는 사항을 훤히 본다. 접대도 많아서 음주가무부터 골프, 당구, 바둑, 고스톱이나 카드 같은 잡기에 고수들도 많다. 글 쓰는 능력을 보유하고 있으면서 사업을 꿰뚫는 안목 그리고 화술이 뛰어난 사람도 많다. 사내에서 섭외나 취재를 다니며 주목 받는 상황도 많고 전략회의 같은 부담스런 자리도 스스럼없이 끼는 참모다. 업무의 특성상 웬만한 부서보다는 훨씬 다양한 경험을 하게 된다.

사실 나는 잡기라곤 할 줄 아는 것이 없다. 술 마시며 대화 나누는 정도는 좋아하지만 노래방에서는 마이크 근처에도 잘 가지 않는 스타일이고, 골프는 아직 채도 한번 잡아 보지 못했다. 어쩌다 친구들과 스크린골프장엘 가더라도 박수나 치고 배달시킨 자장면이나 축내는 위인이다. 당구를 조금 치기는 하지만 대학 1학년 때 실력 그대로 지금도 150 수준이다.

사람들은 잘 믿으려 들지를 않는데, 포커는커녕 고스톱도 칠 줄을 모른다. 화투 그림이 뜻하는 숫자를 알지 못한다. 수학여행이나 엠티를 비롯해서 어디서든 고스톱 치던 친구들 등허리을 쳐다본 기억뿐이다. 좋아했던 주윤발, 유덕화, 주성치가 나왔던 홍콩 느와르물도 영화 자체를 좋아했지 주인공 손바닥 카드패의 절묘함에 대해서는 전혀 몰랐다. 주인공이니까 당연히 이기는 패려니 했다. 지금도.

골프채를 잡아 본 적도 없다. 혹자는 ‘큰 일을 하려면 골프를 쳐야 한다’ 거나 ‘골프도 못 치면서 무슨 커뮤니케이션을 한다고 하냐?’고도 한다. 골프를 하게 되면 한 마디로 노는 물이 달라진다는 식이다. 일견 맞는 말 같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활동 범위가 더 넓어지면 아무래도 깊이 있는 대화를 많이 나눌 수 있기에 더 낫다. 하지만 커뮤니케이션이라는 것이 어느 날 어느 곳에서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평소 그와 얽힌 모든 생활이 다 커뮤니케이션의 연장 선상에 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젊은 기자들이 나에게 수시로 골프 함께 가자고 졸라댔다. 막 입문해 재미를 느낄 시기인데, 같이 갈 만만한 사람이 없어서였다. 심지어 어떤 기자들은 자기들 비용으로 부킹까지 해서 초대도 했지만, 골프 칠 팔자가 못 되는지 하필 비상이 걸려 그마저도 불발됐다.

내성적인데다가 말수도 적다. 하지만 커뮤니케이터로 20년 가까이 일하다 보니 이쪽 방면으로는 경험을 많이 쌓았다. 모두 몸으로 겪었다. 매 사건, 이슈 하나 하나 머리에 쥐가 날 정도로 고민했다. 수없이 많은 기자들이 허점을 파고 들며 여기 저기 찔러대는 걸 방어하면서 더해진 경험이다. 산업과 경제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흥미진진하게 들을 수 있는 이야기 20년 치가 머릿속에 들어있다. 에너지, 건설, 건자재, 전선, 금융, 스포츠, 자동차부품 그리고 바이오까지 다양하다. 딱히 써 먹을 데도 없지만, 뉴스를 생산하는 사람에게는 참고서로 꽤나 유용하다. 때문에 산업, 금융, 증권 등 언론사의 각 부서를 막론하고 만나는 기자들마다 이런 살아있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첩자 오해나 코스트센터라는 지적, 당연히 감수해야

커뮤니케이션 담당들이 겪는 가장 큰 고민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첩자로 오해를 받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코스트센터로써 비용을 쓰기만 할 뿐 벌어들이는 건 하나도 없다는 지적이다. 모두 기업이 보수적이거나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경험이 부족해서 생기는 일이다.

첩자로 오해 받아서 사내 주요 사안에 대한 접근이 차단되기도 한다. 기획, 재무, 전략 부서 쪽에서는 커뮤니케이션 담당에게 노출되면 바로 외부로 알려지기라도 할까봐 쉬쉬하는 기업도 있다. 외부로 알려져선 안 되는 프로젝트 초기나 중반기까지는 비밀에 부친다. 커뮤니케이터가 모르는 사안이 기사화 되었을 될 때 대응이 더 힘들다는 것을 몰라서 그렇다,

큰 프로젝트들은 증권사, 은행, 자산운용사, 회계법인, 법무법인 등의 여러 기관들이 함께 참여하게 된다. 비밀유지 약정을 체결하고 진행 하더라도 외부 노출을 막기 힘든 경우가 많다. 이때 커뮤니케이션 담당은 알지도 못하는데 기사로 노출되었다고 의심의 눈초리를 받는 경우도 종종 있다. 기업이 처음부터 커뮤니케이터가 내용을 잘 아는 것이 낫다는 것을 인지 하기까지는 상당한 기간이 필요하다. 그런 오해를 극복하면 최고경영진이 주관하는 고위급 회의에도 참석하게 된다. 그 또한 만만찮은 일이지만 말이다.

다음으로 코스트센터 타이틀을 달고 지내는 것인데, 어쩔 수 없다. CF나 광고, 공익기관 기부금이나 행사 후원 같은 경우 앞의 숫자가 무엇이든 동그라미 일곱 개 이상 붙을 때가 많다. 사보나 웹진을 다달이 발행하는 경우 연간 수억 원은 손에 쥐고 있어야 하고, 기자나 외부 관계자들과 미팅, 식비, 술값도 무시할 수 없다. 명절에 소소하게 준비하는 선물도 백 개 이백 개가 넘어가면 그 비용 또한 무시할 수 없다. 때문에 주위 여러 부서에서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기 일쑤다.

 

커뮤니케이터가 뛰면 사장님 가슴이 철렁한다

20년 동안 희한한 경험도 많았다. 일단 욕을 많이 먹는다. 밥 먹는 것보다 욕을 더 많이 먹는다. 일상다반사다. 회사 분위기가 좋을 때도 그렇고 좋지 못할 때도 일반 직원들과는 좀 달리 행동해야 될 때가 많다. 그 중 하나가 회사가 힘들수록 커뮤니케이션 담당이 사내에서 급히 뛰어다니면 안 된다. 복도나 계단을 황급히 뛰어다닌 다는 것은 임직원들에게 큰 일 터졌다고 대놓고 광고하고 다니는 것이다.

위기에 빠진 회사 실적이 좋을 리 없다. 그렇다고 공시만 내면 공시된 숫자를 맘대로 발라내 엉뚱한 얘기가 나오기 십상이었다. 긍정적 포인트로 시장에 충격파를 줄여야 했다. 분초를 다투는 상황이면 계단을 두 세 칸씩 뛰어 다니는 경우가 허다했다. 한 번은 결재판을 들고 계단을 뛰어 내려가는 나를 보고 CEO가 놀란 얼굴로 불러 세웠다.

“회사에 무슨 큰 일이 났기에 그렇게 뛰어 다니는 건가?”

“큰 일이 난 것은 아닙니다. 업무를 빨리 처리하려는 마음에 …”

“그래? 깜짝 놀랬어, 당신이 뛰어 다니면 내 가슴이 철렁한다네.”

“알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스케줄이 많을 때는 일년 내내 회사 구내식당을 한번도 이용하지 못했다. 총무부 막내가 ‘회삿밥 안 먹는 사람’이라고 놀려 대기도 했다. 그러다 모처럼 구내식당에서 줄을 섰는데, 보는 사람들 마다 뭔가 큰 일이라도 터진 양 걱정을 했다.

“구내식당에서 밥 먹는 것을 보니, 뭔가 안 좋은 일이라도 있는 거 아냐?”

“회사에 뭔 급한 일이 생겼나요?”

“아니, 무슨 급한 일이 생겼길래 회사에서 밥을 먹나요?”

 

그러다 보니 갑작스런 점심 약속 변경 연락을 받는 경우에는 가끔 외딴 곳에 가서 혼밥을 했다. 가급적 회사에서 몇 블록 이상 떨어진 식당을 이용했다. 그래야 회사 사람들 눈에 띄거나 할 염려가 없었다.

뛰어난 커뮤니케이터 일수록 마음의 상처가 많다. 내색하지 않을 뿐이다. 직원이지만 생각이나 활동 폭은 남달라야 한다. 내부든 외부든 기업이 좋은 평판을 쌓기 위해서는 20년이 필요하지만 기사 하나에 웬만한 회사는 그야말로 ‘훅’ 가는 경우도 생긴다. 커뮤니케이터는 그런 충격 상황에서 완충 역할을 하면서 마음에 굳은 살을 한 겹 한 겹 쌓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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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끼와 재능이 도움은 되지만 커뮤니케이션에서 꼭 필요한 것은 아니다.

2. 어느 날, 어느 곳에서 커뮤니케이션이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3. 첩자로 오해 받고 코스트센터로 지적 받아도 흔들림이 없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