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권자인 금융기관은 신용정보사를 대리인으로 세워서 채무자에게 돈을 받아내는데, 채무자는 왜 대리인을 세우면 왜 안 되죠?"

백주선 한국파산회생변호사회 초대 회장(법률사무소 상생 변호사)은  가계부채와 관련된 민생법안의 개정과정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했다. 이 때문인지 백 변호사는 가계부채 문제가 화두가 되면 목소리가 커진다.

채무자, 채권자와 평등해야

백 변호사가 민변 민생경제위원회에서 활동하면서 관여한 법률 중의 하나가 '채권공정추심에 관한법률'이다. 그는 이 법률에서 채무자의 대리인 도입을 적극 주장했다.

채무자 대리제도는 대출이나 카드가 연체되거나 연체될 위기에 있을 때, 채무자가 대리인을 선임해 채권자와 협상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채무자가 채권추심에 대응하기 위해 대리인을 선임하면, 채권자는 채무자에게 직접 전화나 우편물을 발송하는 방법으로 추심할 수 없게 된다.

백 변호사는 듣기에 생소한 채무자 대리인 제도에 대해 "채권자인 금융기관은 신용정보사를 대리인으로 세워 채무자에게 돈을 받아내는데, 채무자는 왜 대리인을 세우면 왜 안 되는 거죠?"라고 되물었다.   

▲백주선 변호사는 채권자와 채무자가 공격,방어에 있어서 평등해야 된다고 주장한다. 사진=이코노믹 리뷰 노연주기자

그는 이 제도가 미국이나 일본에서는 운용되고 있는 것이라며 "채무자 대리인으로 비영리 단체와 사회적 기업이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선 변호사 아닌 자가 채무자 대리인이 되는 것은 변호사법 위반이 아니냐는 주장에 대해서 명확한 입장을 보였다. 

그는 신용정보사의 예를 다시 들면서 "생각해 보면 신용정보회사도 채권추심업무를 하지 않느냐. 그 채권추심업은 과거 변호사법에서 강력하게 규제되었던 것인데 특별법으로 가능하게 한 것"이라며 "특별법을 만들어 채무자 대리인을 할 수  있게 한다면 문제될 것이 없다"고 설명했다.

그렇지만, 군소 시민단체가 채무자대리업을 하겠다고 난립할 수도 있고, 이들의 전문성도 시비거리가 되지 않을까. 

"개정안에서 말하는 시민단체 혹은 사회적 기업은 상시 회원이 1000명 이상 되어야 합니다. 이 정도면 참여연대, 경실련, 환경운동연합 등이 해당되는데, 이 단체들은 변호사들보다 조직적으로 움직입니다"

"채무자의 평온한 삶 보호해야한다"

채권자가 돈을 빌리고 갚지 못하는 사람에게 전화독촉도 못하게 하는 건 심한 게 아닌가. 

백 변호사는 이 제도가 채무자가 무조건 돈을 갚지 않게 하는 제도가 아니라고 구분을 명확히 했다.

그는 이 법은 채무자의 안정적인 삶을 목적으로 한다고 강조했다. "채무자가 채권자로부터 심한 압박을 받으면 사채를 쓰는 경우도 있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도 있다"며"아무리 채무자가 법적으로 빚을 갚아야 하는 의무가 있더라도, 사람의 생명보다 중요한 채무는 없다"고 말했다.

그는 "채무자가 누릴 수 있는 삶의 평온을 깨뜨리는 방식으로 채권 추심을 하는 것은 막아야 한다" 며 "결국 채무를 갚는다는 측면에서 보더라도, 채무자가 삶의 안정과 여유를 두고 생활할 수 있어야 일도 하고 돈도 갚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백주선 회장은 채무자의 기본적인 삶을 보호해야 채무자가 돈을 갚을 수 있는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사진=이코노믹 리뷰 노연주기자

도산 법조계와 시민운동, 주도적으로 이끌 수 있는 단체 필요해

백주선 변호사는 한국 파산회생변호사회를 결성, 초대 회장을 맡고 있다. 정평 있고 노련한 파산변호사들도 회원으로 참여하고 있지만, 회원 대부분은 젊은 변호사들이다.

"파산회생변호사회는 도산 사건을 전문적으로 취급하고 연구하는 변호사들의 모임입니다. 가장 중요한 목표는 도산제도를 개선하는 데 앞장서는 겁니다. 우리 회는 도산법조인으로서 앞으로 부채문제 또는 가계부채와 관련된 일체의 법률에 대해 구체적 개정안을 제시하고 관철하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그는 이 모임이 반드시 변호사들만 참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시민단체, 금융관련소비자단체, 참여연대, 민변등 부채문제에 관심 있는 그 어떤 모임도 환영한다고 했다. 

백 변호사는 "이 단체는 크게 보면 소비자 운동이고, 그중에서 대출받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금융소비자의 권리를 보장하고, 신장하려는 뜻에서 결정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렇게 되면 더욱 다양한 이견과 세밀한 의견으로 여러 현안을 대응할 수 있다는 것.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개인회생과 파산의 문제로 옮겨갔다. 백 변호사는 개인회생과 개인파산의 제도가 좀 더 유연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개인회생기간 너무 길고, 엄격한 개인파산제도 문제 많아

그는 현행 개인회생의 상환 기간이 너무 길다고 비판했다. 개인회생은 소득이 있는 금융소비자가 많은 빚을 졌을 때, 소득에서 일정한 생활비를 빼고 남는 소득으로 최장 5년 동안 변제하는 채무조정절차다.

"상환기간 5년이 매우 길어요. 상환기간이 길다는 건 사회로 복귀하는 기간이 길다는 것과 같습니다. 채무자 회생법에서 상환 기간을 최장 5년으로 규정했는데, 이 말은 5년 안에서 탄력적으로 운용하라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2년도 되고 3년도 되는 건데 법원 실무는 꼭 5년을 다 채우라는 거에요"

채무자가 상환 기간이 너무 길어서 중도에 포기하는 사례가 많다면, 채무자를 경제적으로 재건시켜 사회로 복귀시킨다는 법 취지로 볼 때 본말이 전도된 것이라게 그의 주장이다. 

법원 통계에 따르면 개인회생 졸업률이 20~30%내외. 개인회생을 통해 5년동안 상환을 완료하는 채무자가 100명중 20~30명꼴에 그친다는 얘기다. 

개인파산제도의 문제점이 개인회생보다 크다. 그는 우선 파산제도가 너무 엄격해서 채무자의 고통이 가중된다고 주장했다.

“파산절차에서 채권자가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데 굳이 법원이 채무자의 부모와 자녀들의 재산까지 모두 조사하는 것이 옳은 방법인지 고민해 봐야 합니다. 많은 파산법조인이 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현행 파산절차는 채무자가 파산신청을 하면 법원이 파산관재인이라는 대리인을 세워 채무자를 조사한다. 파산관재인은 채무자에 대해 약 30종의 서류를 요구하고, 부모, 배우자, 자녀의 재산관계를 모두 밝히라고 요구한다. 채무자가 불응하면 면책을 허가하지 말라고 판사에게 보고하고, 판사는 대부분 그 보고를 수용한다.

그는 파산절차를 채무자와 채권자간 주장과 이의에 맡기는 대신, 법원의 재량을 제한해야  채무자가 신속하게 경제주체로 복귀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강조했다.

백 변호사는 파산절차의 운용상 문제점 못지않게 내용상 문제점도 지적했다. 그는 파산절차에서 면책의 범위를 지금보다 더 넓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중 하나로 세금의 문제를 들었다. 현행 채무자회생법은 조세채무는 면책해 주지 않는다.

“정말 경제활동이 어려워 세금도 못낸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에겐 조세 채권이 계속 빚으로 남아 경제활동 부분에서 목을 옥죄고 있으니, 이런 부분을 숨통을 틔워줘야 이 제도가 실효성을 갖게 되는 것 아닙니까”

▲ <백주선 변호사, 사진=이코노믹 리뷰 노연주기자>

회생, 파산 관대해지면 약탈적 대출 사라질 것

가계 부채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그는 "가계부채가 많다는 것은 빚을 내지 않고 생활하기 어렵다는 방증"이라며 "결국 빚을 확 줄여주는 방법 이외에 다른 도리가 없다"고 해법을 제시했다.

그는 이어 "지금 있는 파산·회생 제도에서 최대한 빚을 조정해 다시 경제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것은 빚을 갚지 않고 그 돈을 소비한다는 측면에서 여러 가지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개인 소득으로 소비를 증대시킨다면 내수 활성화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백 변호사는 법원의 파산절차에 대한 효율적 운용이 과도하고 무분별 대출행위를 제한할 수 있다고도 했다. 채권자가 빌려주는 단계에서 조심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주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