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Nature-Coexistence(자연-공존), 60.6×72.7㎝ Mixed Media, 2013

 

1번 국도를 달리다 관산동 고양외고 옆길로 들어가면 뒤편 야산에 특이한 집이 한 채 나온다. 청주한씨 문양공파 종갓집이다. 사당과 나란히 있는 종갓집이다 보니 숙연한 마음에 옷깃을 여미게 된다. 서양화가 최구자(Choi, Goo-Ja)는 바로 이 댁을 지키는 종부이다.

작업실이 지하층에 있다. 이도 조상님 사당 높이보다 높아지는 것이 불효, 불경일 것 같아서 2층을 못 올렸다는 것이다. 종부의 삶이 어떤 것인지 대략 짐작이 가는 대목이다. 이런 환경에서 그림이 그려진다. ‘그린다’는 것, 그것은 작가에게 어떤 의미와 의의가 있는 것일까.

 

▲ 50×65㎝

 

최구자(崔久子, CHOI GOO JA)작가는 초기 녹녹치 않은 종부 생활 중에도 틈틈이 작업을 해서 그룹활동은 유지할 수 있었다. 물론 자신이 원하는 만큼의 분량은 아니었다 해도, 그가 처한 현실을 감안하며 충분히 善防했다 할 수 있다.

하지만 작가의 욕구와 열망은 그것으로 만족할 수 없었던 모양이다. 30년 넘는 세월동안 ‘벼르고 혹은 벼려온’ 내면이 어지 筆舌로 다 형언될 수 있겠는가. 耳順에 즈음해서야 畵業에 본격적으로 투신하게 된다. ‘운명적’이라는 것은 미술대학을 나왔다는 사실이 아니라, 진정 ‘끼’와 신념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일컫는 말이리라.

 

▲ 50×65㎝

 

정말이지 작가의 그림은 오랜 세월 치열하게 살아온 삶의 地層에서 얻어진 광물적 결정체와도 같은 것이다. 삶 치고 한 편의 드라마 아닌 것이 없다지만, 묵묵히 반세기 가까운 세월 속에서 ‘벼르고 벼르온’ 美意識세계가 그리 간단하겠는가.

 

▲ 41×53㎝

 

작가의 화면에 ‘새’ 이미지가 많이 등장하던 때가 있었다. 반추상 작업이 한창하던 때의 화면에서 새는 작품의 결정적 키가 되고 있었다. 굳이 작가의 심경과 결부시키지 않더라도 독해될 수 있는 문맥이기는 하나, 작가의 삶이 대입되지 않았더라면 화면의 主役으로까지 읽히지는 않았을 것이다. △글=이재언(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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