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18일, tvN 드라마 <혼술남녀>의 조연출 이한빛 PD의 자살에 대해 그의 동생 이한솔 씨가 SNS에 올린 게시글이 <한겨레신문>의 보도를 통해 공개되면서 많은 이들에게 충격을 전했다. 전해진 내용에 따르면 <혼술남녀> 제작팀은 작품의 완성도가 낮다는 이유로 첫 방송 직전 다수의 계약직 스태프 인력들을 해고했다.

이로 인해 촬영 준비 기간이 짧아져 주간 방송 드라마를 생방송에 가깝게 만들어내 이한빛 PD를 비롯한 촬영 스태프들은 엄청난 양의 업무를 소화해야 했다. 그러한 가운데 제작팀 조직 내의 부조리와 따돌림 등으로 인한 고통을 견디지 못했던 이 씨는 드라마의 마지막 촬영이 종료된 이후인 지난해 10월 26일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번 사건은 엔터테인먼트 등 콘텐츠 생산을 기반으로 하는 업계의 부조리한 인적 관리 시스템에 대한 경종을 울리며 일파만파 커졌다. 이에 tvN을 운영하는 CJ E&M은 그간 쌓아온 문화 선도 기업이라는 이미지에 상당한 타격을 입었고 공식 입장을 통해 이한빛 PD의 죽음을 애도하고 모든 조사에 충실히 임하겠다고 밝혔다.

사실 그간 콘텐츠 업계의 부조리는 ‘아는 사람은 다 알고 있는’ 관행처럼 여겨져 왔다. 이를테면 여자 연예인들에 대한 기획사 관계자들의 성(性)상납 요구부터 시작해 아이돌 그룹 육성에 대한 기획사의 불평등 계약, 신입 방송국 PD 및 계약직 스태프들에 대한 콘텐츠 업체들의 부당한 처우 등은 주변에서 흔하게 일어나는 일임을 사람들은 이미 알고 있다.

여기에 업계에서 당연시되는 상명하복 하향식 조직문화, ‘짬(연차)’가 찰 때까지 계속되는 소위 ‘시다바리(심부름꾼)’ 노릇, 조기 퇴사자 속출으로 인한 경력 멤버들의 부재, 일련의 상황들을 모두 하급자들의 인내심 탓으로 돌리는 윗선들의 인식은 결국 악순환을 반복시킨다.

창의성의 멋진 발현을 기대하고 콘텐츠 업계의 문을 두드렸던 젊은이들은 마치 시스템처럼 자리 잡은 현실적 부조리들에 좌절한다. 창의성을 요구하는 조직의 운영은 전혀 창의성을 발현시킬 수 없도록 한다.

문제의 근본적 해결은 인식의 개선이다. 직급이나 연차에 관계없이 급여 혹은 근무 조건에서 상식적인 수준을 유지하고 모든 조직 구성원들에게 인격적 대우를 하는 것이다. “우리 때는 더 힘들게 일했다”거나 “요즘은 일하기 편해졌다”는 비아냥은 결국 말하는 이들의 수준 낮은 인격을 증명하는 것이다.

이번 사건은 한 PD의 죽음으로만 끝날 문제가 아니다. 콘텐츠 업계의 악덕 관행이 지속되는 것에 대한 경고와 같다. 업계가 각성하지 않으면 제2, 제3의 이한빛 PD가 나오지 않는다는 법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