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특별시 은평구 녹번동에 위치한 트러블러스맵 사무실 모습(사진=이코노믹리뷰 노연주 기자)

여행하기 좋은 4월, 트래블러스맵 변형석 대표를 만났다. 트래블러스맵은 공정여행을 추구하는 여행사다. 공정여행은 환경오염이나 사회문제를 지양하고 현지 지역사회에 도움을 주는 방향으로 여행을 즐긴다.

인터뷰 당일 서울시 은평구 녹번동에 위치한 트래블러스맵 사무실에서 외출 중인 그를 기다렸다. 5분 정도 기다렸을까. 체크무늬 셔츠를 입은 그가 커다란 백팩을 메고 나타났다. 변 대표는 지난 2009년 트래블러스맵을 설립하고, 9년째 경영하고 있다. 대안학교 교사라는 평범하지 않은 이력도 갖고 있다. 교단에서 섰던 그가 여행사를 설립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대안학교 교사에서 공정여행사 대표로 전직한 배경이 궁금하다.

여행에 대한 관심은 대안학교 생활과 연관이 있다. 대안학교에 오는 아이들은 물론 ‘공부하기 싫고 다른 방식으로 배우고 싶다’도 있지만 대개는 그(대안학교에 오기까지) 과정에서 상처입고 지친다. 무기력한 상태로 찾아온 아이들의 몸을 깨우는 작업이 필요하다. 3월 학교에 입학하면 5월께 ‘걸어서 바다까지’라는 프로젝트가 진행된다. 서울시 영등포에 있는 학교에서 강원도 속초까지 걸어간다. 차를 한 번도 타지 않고 약 280㎞ 거리를 9박 10일 정도 걷는다. 2003년 당시만 해도 둘레길 등 걷기문화 자체가 생소했다. 도보여행이라고 하면 국토대장정만을 떠올리던 시절이다.

아이들과 했던 도보여행은 두 가지 측면에서 흥미로웠다. 우선 여행이라는 경험이 사람들, 특히 빠르게 변화하는 청소년에게 커다란 영향을 줬다. 일상적인 생활공간과 다른 공간에서 새로운 경험을 통해 아이들은 빠르게 변해갔다. 무기력했던 아이들이 9박 10일 걷기로 생기를 되찾았다. ‘해냈다’라는 성취욕이 아이들에게 필요했던 것 같다. 마지막 날 바닷가에 도착하면 펑펑 우는 친구들도 많고, 다시 걸어서 서울까지 가자는 아이도 적지 않았다. 도보여행은 관광지를 찾아다니는 게 아니고, 주민들이 먹는 음식을 먹고 현지인들이 운영하는 민박집에서 잠을 잔다. 아이들뿐 아니라 나한테도 색다른 경험이었다.

두 번째는 도보여행이 여행자에게 줄 수 있는 매력이다. 걷는 과정에서 평소 하지 못했던 생각에 잠기게 된다. 기존 여행상품에서는 찾을 수 없던 살아 있는 경험을 맛볼 수 있었다.

그 와중에 ‘공정여행’이라는 말이 국내에 등장하게 됐다. 뭔가 하고 봤더니 그동안 해왔던 도보여행과 유사했다. 해외 사례를 찾아보니 이미 10~20년 전부터 공정여행 상품을 취급해온 여행사들이 있었다. 해외에서는 ‘공정여행’이라기보다는 지속가능한 여행(Sustainable Tourism)이라고 불린다. ‘아, (공정여행이) 비즈니스로 가능한 시기가 왔구나’라는 생각이 들더라. 그쯤 한국에서 ‘사회적 기업’이라는 개념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이 같은 흐름들이 맞물리면서 팔자에도 없던 여행사를 창업하게 된 것 같다.

설명을 들었지만 여전히 공정여행이 뭔지 잘 모르겠다. 일반 관광상품과 어떻게 다른 건가.

트래블러스맵이 추구하는 여행은 공정여행보다는 지속가능한 여행 혹은 지속가능한 관광이라고 표현하는 게 더 정확할 것 같다. 경제·환경·사회적 지속가능성을 중시하는 여행 방식이다. 예를 들면 농촌체험활동을 들 수 있다. 한국에서는 변질됐거나 개념이 명확하지 않지만 외국에서 (농촌체험활동이) 시작된 배경은 농가의 수익원을 다각화하기 위해서였다. 농촌의 매력을 활용해 도시 사람들을 불러 모으겠다는 판단에서 시작됐다. 농촌은 소득을 올릴 수 있고 방문객들은 도시에서 경험하기 어려운 환경친화적인 생활을 누릴 수 있게 됐다. 그런 식으로 발전된 여행 스타일이 국내에서 공정여행이라고 불리게 된 것이다.

지속가능한 관광·여행이라는 말은 30년가량 사용되고 있다. 기존 여행 방식에서 최근 새롭게 강조되고 있는 덕목은 책임(Responsibility)이다. 관광이 지역사회에게 좋은 영향을 주지만 역효과도 적지 않다. 인권문제, 여성 성매매, 동물학대, 환경훼손, 아동노동 등 복잡한 사회문제들을 만들어내고 있다. 산업구조의 문제도 있지만 사람 간의 문제도 간과할 수 없다. 이에 트래블러스맵은 ‘윤리성’에 무게 중심을 둔 공정여행을 내세우고 있다.

2017년 현재도 공정여행을 낯설어 하는 소비자가 적지 않다. 처음 사업을 시작했던 2009년 당시 고객들 반응은 어땠나?

▲ 트러블러스맵 상품 안내 책자(사진=이코노믹리뷰 노연주 기자)

처음에는 고객들이 힘들어 했다. 관광업계의 기형적인 비즈니스 모델에 익숙해져 있었기 때문이다. 대부분 여행사들은 고객에게 비용을 직접 청구하지 않고 이른바 백마진으로 수익을 올린다. 표면적으로는 저렴해 보이지만 여행 내내 예상치 못한 비용들이 발생하는 이유다. 여행지에서 옵션을 제시하거나 쇼핑센터만 전전하는 식이다. 1박 2일 국내여행의 경우 3만원 미만의 상품을 시중에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반면 트래블러스맵에서는 15만원 정도 한다. ‘비싸다’는 불만이 가장 많았다.

하지만 가격이 비싸다는 이유만으로 상품이 시장에서 외면받지는 않는다. 그 가격에 합당한 가치를 소비자에게 꾸준히 제공할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 초기에는 ‘공정무역’이라는 가치에 동참하고 싶은 고객들이 태반이었다. 최근에는 대중교통을 이용하거나 현지인들이 찾는 명소를 방문하는 등 트래블러스맵만의 독특한 여행상품에 매력을 느끼는 고객들이 많아졌다. “여행을 다녀오고 보니 공정여행이었다”는 후기도 적지 않다.

트러블러스맵의 향후 행보가 궁금하다.

내년이면 트래블러스맵이 창립 10주년을 맞는다. 한 차례 터닝 포인트가 필요한 시점이 됐다. IT 서비스가 발전할수록 여행사 업무는 줄어들고 있다. 항공편만 해도 이제는 소비자들이 온라인에서 가장 저렴한 티켓을 직접 구매한다. 여행사로서 지속가능하기 위한 대비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지역화 전략을 펼칠 계획이다. 다양한 곳에 터를 잡고 해당 지역사회를 활성화시킬 수 있는 요소를 찾아내는 비즈니스를 구상 중이다. 한국뿐 아니라 아시아 국가에서도 이 같은 노력을 추진하고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여행사는 필요 없어져도 여행을 가서 잘 곳이나 먹을 곳은 그렇지 않다. 그간 지역민과 여행자 사이를 이어주는 역할을 해왔다면, 앞으로는 현지 비즈니스에 직접 관여해 지역사회를 활성화시킬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