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의 이전과는 다른 행동들이 달러 약세를 부추기는 요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하지만 지난해 트럼프 당선 이후 달러화 가치와 시장 금리가 급등했던 것은 실제로 발생하지 않는 경기회복에 대한 ‘기대감’이 반영된 것이다. 따라서 현 국면은 이러한 ‘거품’이 사라지는 상황이라 볼 수 있다. 특히, 트럼프의 ‘거래의 기술’을 시장이 간과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11월 도널트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된 후 미국채 금리는 본격적으로 상승하기 시작했다. 시장금리 상승은 트럼프 공약이 경기회복으로 이어지고 이에 인플레이션율이 상승할 것이란 시장의 기대감이 이끌었다. 한편으로는 트럼프 공약이 미국의 재정지출을 늘려 미국에 대한 신뢰도가 낮아질 것이란 부정적 요인도 시장금리를 상승시키는 요인 중 하나로 작용했다.

▲ 미국채 10년물 금리 추이 [출처:한국거래소]

이에 미국채 10년물 금리는 지난해 11월(트럼프 당선 전) 1.86%에서 12월에는 2.59%까지 급격히 치솟았다. 올해 초에는 잠시 소강상태를 보이는가 싶더니 지난 3월에는 작년 12월 고점을 돌파하면서 시장금리의 급격한 상승을 예고하는 듯 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미국채 10년물 금리는 하락 반전해 지난 18일 기준 2.18%로 내려앉았다.

미국채 금리만큼이나 요동을 친 것은 다름 아닌 달러화 가치다. 달러 인덱스는 지난해 11월 100을 넘지 않았으나 트럼프 당선 이후 미국채 금리 상승과 함께 동반 오르기 시작해 12월에는 103을 넘어섰다. 하지만 다른 점은 올해 3월 미국채 금리가 12월 고점 수준을 넘어섰을 때에도 달러 인덱스는 오히려 12월 고점 대비 하락해 미국채 금리만큼 상승탄력이 강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물론 각국의 경기상황과 물가수준 등이 다르고 그만큼 달러에 미치는 요인도 많아졌기 때문에 달러 인덱스가 미국채 금리 수준과 동일할 수는 없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 기간 동안 트럼프의 발언이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했다는 것이다. 특히 트럼프가 “약달러를 선호한다”는 발언을 할 때마다 달러화 가치는 좀처럼 오르지 못했다.

다시 생각해보면 그동안 미국채 금리 상승과 달러화 가치 상승은 트럼프에 대한 ‘기대감’이 작용했다고 볼 수 있으며 이는 ‘현실화’되지 않았다는 측면에서 되돌림 현상으로 해석할 수 있다.

▲ 미국채 10년물 금리 추이 [출처:한국거래소]

이는 트럼프 캐비닛 지수를 보면 더욱 확고해진다. 트럼프 캐비닛 지수란 트럼프 행정부 내각들이 사외이사로 겸업하고 있는 15개 기업들의 주가로 구성된 지표다. 트럼프 캐비닛 지수의 추이를 보면 미국채 금리 및 달러 인덱스와 그 흐름이 상당히 유사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트럼프는 ‘거래의 달인’이었다

지난 18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골드만삭스가 달러 강세 전망을 철회했다고 보도했다. 골드만삭스는 지난해 11월 달러 강세 전망을 낸 이후 최근까지 이 의견을 유지했으나 최근 트럼프가 달러 강세를 경계하는 발언을 하자 전망을 선회한 것이다.

아울러 미국 외 국가들의 성장세 반등, 예상보다 비둘기적인 연방준비제도(연준, Fed)의 기조 등도 달러화 강세를 저지하는 요인으로 꼽았다. 한편, 최근 미국 경제지표들이 예상보다 부진하게 나오고 있다는 점도 골드만삭스의 전망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골드만삭스의 의견 변화에서도 볼 수 있는 것처럼 현재 글로벌 금융시장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주체는 역시 트럼프다. 그렇다면 트럼프의 머릿속에는 무엇이 그려져 있을지 여부가 향후 금융시장을 예측하는데 상당히 중요하다.

“트럼프는 무엇을 우선시하는가”에 대한 질문에 직관적인 대답은 “미국의 이익”이다. 하지만 이상한 점이 있다. 예상과는 다르게 미국 재무부는 지난주 발표한 환율보고서에서 어느 나라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심지어 트럼프는 WSJ와의 인터뷰를 통해 “중국이 북한 문제를 해결해주면 대규모 대중 무역적자를 용인하겠다”는 발언을 했다. 그러나 이는 전형적인 ‘트럼프스러운 모습’이다. 트럼프는 그의 저서 중 하나인 <거래의 기술>을 통해 “거래를 성사시키기 위해 달려드는 것은 최악의 협상”이라며 “상대방은 피 냄세를 맡게 되고 당신은 곧 죽게 된다”고 말하고 있다.

한마디로 협상을 할 때, 크게 생각하라는 것(Think Big)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신동석 삼성증권 연구원은 “북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중국에게 무역적자를 양보한다고 했지만 한반도에서 전쟁은 가장 큰 투자 대상 중 하나인 중국을 잃거나 아시아에서 대규모 손해를 감당해야 한다”며 “이는 철저히 미국의 이익에 부합하지 않는 것”이라고 전했다.

그는 이어 “트럼프는 미국의 경제적·정치적 이익을 극대화 하는 방향으로 북한 문제의 해법을 찾아가는 중”이라고 해석했다.

만약 이러한 맥락으로 해석하지 않는다면 트럼프의 정책기조가 바뀐 것이라는 착각을 할 수 있다. 하지만 트럼프는 ‘미국의 이익’을 기반에 두고 협상을 해가고 있는 것이다. 이는 트럼프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미국의 이익’이 변하지 않을 뿐, 그 과정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는 뜻이다.

실제로 트럼프는 환율조작국을 하지 않은 대신, 저평가된 환율국가의 주력 수출품에 대해 상계관세를 부과하는 쪽으로 무역정책을 조정했다.

김일구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미국은 부가가치세가 없는데, 국경조정세는 일종의 부가가치세와 같은 역할을 하면서 수입을 억제하는 효과도 갖는다”며 “국경조정세를 통해 법인세 인하를 통한 세수부족도 상쇄할 수 있다”고 전했다.

지난해 트럼프 당선 이후 급등한 달러 인덱스와 미국채 금리는 트럼프의 ‘직설적’인 표현을 믿었던 것일까. 그렇다면 트럼프발 ‘단기 거품’은 현재 해소되는 국면일까. 만약 이 모든 것이 사실이라면 트럼프의 ‘거래의 기술’을 주목해야만 한다.

이미 달러화 가치는 트럼프 당선 당시 수준까지 하락했다. 극단적인 상황에서 한발 물러나는 트럼프의 행동은 달러가 방향성을 찾지 못하고 제자리로 돌아오게 된 원인이다.

한 자산운용사 매니저는 “달러는 약세를 보일 것으로 예상되지만 정확히 말하면 유로화 및 엔화의 강세가 더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상황”이라며 “기존 시장의 반응이 트럼프에 너무 의존했던 경향이 있었는데 이러한 분위기가 점차 사라지고 있다는 점도 달러 약세 요인 중 하나”라고 전했다.

다만 그는 “트럼프가 ‘미국 우선주의’ 철회하지 않는 이상 장기적 관점에서 달러는 강세를 보일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