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저의 일상과 가젯(Gadget)에 얽힌 그렇고 그런 이야기. 일상가젯 7화.

이상형을 만났다. 사람 얘긴 아니다. 매일 그를 두드린다. 하루 5시간쯤은 꼭 붙어있다. 그는 키보드다. 사람들은 연애할 때 이런 생각을 한다. ‘이 사람이 내 마지막 사람일 거야.’ 난 이런 생각이다. ‘이게 나의 인생 키보드 아닐까.’

소개가 늦었다. 그이는 커세어 K63이다. 지난 10일 한국에 출시된 따끈한 신상 키보드다. 단순히 느낌이 좋아 이상형이라 말하는 건 아니다. 왜 그런 느낌을 받게 되나 따져보면 이유가 있기 마련이다. 그 대상이 사람이어도 마찬가지다.

내가 K63을 이상형이라 느끼는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정리했다. 역으로 이를 참고하면 당신이 인생 키보드를 찾는 데 도움되지 않을까. 누군가는 ‘그깟 키보드 아무거나 쓰면 되지’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 커세어 K63. 출처=커세어

 

작동방식: 기계식 vs 멤브레인

K63은 기계식 키보드다. 전자식 멤브레인 키보드가 대세였던 적이 있지만 요즘엔 굳이 기계식 키보드를 찾는 이들이 많아졌다. 멤브레인 키보드는 저렴하지만 기계식 키보드를 사용하고부턴 눈에 들어오질 않는다.

멤브레인은 키감이 부드럽지만 치는 맛이 떨어진다. 가격대가 저가로 형성된 탓인지 모델이 대부분 무난하다. 매력이 없다. 기계식 키보드는 제품군이 정말 다양하다. 흔한 물건인 키보드가 매력 넘치는 가젯으로 돌변하는 순간이다.

기계식 키보드는 세심한 취향을 지닌 유저에게 어울리는 물건이다. 브랜드, 스위치, 키캡, LED 백라이트 등에 따라 마음에 드는 모델을 고르면 된다. 가격대가 다양하지만 멤브레인보단 비싼 게 흠이다. 멤브레인이야 몇천원에도 살 수 있다. K63은? 10만원대다. 커세어 제품 중엔 저렴한 편이다.

 

스위치 타입: 청축? 적축? 갈축?

이게 정말 난해한 문제다. 기계식 키보드는 스위치 타입을 골라서 살 수 있다. 청축, 적축, 갈축, 흑축, 백축, 녹축 등등. 스위치마다 고유의 키감이 존재한다. 타건 소리도 다르고 키압도 제각각이다. 그러니 ‘흑축이 최고야’ 같은 얘길 하긴 어렵다. 역시 취향 문제니까.

자신의 기계식 키보드 스위치가 어떤 타입인지 알고 싶다면? 키캡을 빼보면 된다. 십자 모양이 나타나는데 그 색깔이 뭔지를 보면 타입을 알 수 있다. K63은 빨간색이니 적축이다. 키압이 낮아 오랜 타건에도 부담이 없고 적당한 소음을 내는 스위치다.

▲ 청축 기계식 키보드(좌)와 적축 기계식 키보드. 사진=이코노믹리뷰 조재성 기자

이전엔 커세어의 스트레이프 MX 사일런트라는 제품을 썼다. 적축이긴 한데 사일런트 스위치를 탑재한 보기 드문 모델이다. 키감이 적축이면서 소음은 최소화한 스위치다. 이전에는 청축 기계식 키보드를 사용했는데 소음이 너무 컸다. 타자기 같은 소리가 듣기 좋았지만 사무실을 소란스럽게 만들었다.

그래서 소곤소곤 이야기하는 스트레이프 MX 사일런트를 들인 거다. 역효과가 있었으니. 소리가 없어지니 치는 맛이 반감되는 것 같았다. ‘이러려고 기계식 키보드 입문했나.’ 그러다 적축인 K63에 손을 댔다. 매력적이면서도 사무실에서 사용하기에 무리없는 소리를 냈다. 눈이 맞았다.

기계식 키보드는 대개 같은 모델이라고 해도 스위치 타입을 골라서 구입 가능하다. 각 축마다 어떤 소리가 나는지 묘사할 문학적 역량이 내겐 부족하다. 유튜브엔 스위치 타입별 타건 영상이 많으니 그걸 참고 바란다. 키압은 결국 직접 쳐봐야 아는 것이니 오프라인 매장을 방문하는 걸 추천한다.

▲ 적축 스위치에 붉은 LED 백라이트 조합인 커세어 K63. 출처=커세어

 

브랜드: 커세어? 로지텍? 맥스틸? 레오폴드?

멤브래인 대신 기계식을, 그리고 특정 스위치 제품을 사기로 마음 먹었다면 브랜드를 고를 차례다. K63의 경우 앞서 언급한 대로 커세어 제품이다. 미국 게이밍 기어 브랜드다. 비싼 가격 탓에 ‘허세어’라고도 불리지만 물건이 제값은 충분히 한다.

기계식 키보드 브랜드는 무수히 많다. 로지텍, 에이서, 기가바이트, 레이저, 스틸시리즈, 덱, 레오폴드 등등. 가성비(가격대비 성능비)가 돋보이는 국내 브랜드도 여럿이다. 한성컴퓨터, 앱코, 제닉스, 맥스틸, 스카이디지탈과 같은 브랜드들이다.

가장 좋은 방법은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살피고 공감이 되는 브랜드 제품을 택하는 거다.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고 싶지 않다면? 로고 디자인을 봐라. 키보드는 디자인이 표준화된 편이니 제품별로 엄청난 차이를 발견하긴 어렵다. 그러니 어떤 로고가 박혀있는지가 중요한 포인트다. 커세어의 범선을 본 뜬 로고는 언제 봐도 멋스럽다.

▲ 커세어 K63의 모습. 사진=이코노믹리뷰 조재성 기자

 

사이즈: 텐키리스 vs 풀사이즈

K63은 텐키리스 키보드다. 뭔소리냐고? 풀사이즈와 대비되는 개념이 텐키리스다. 오른쪽 숫자 패드가 없는 타입을 텐키리스라고 한다. ‘불편하겠는데?’ 이런 생각을 할지 모른다. 일반 키보드를 사용하가다 숫자 패드가 없는 노트북 키보드를 사용하면 불편하지 않던가.

텐키리스는 여러 장점이 있다. 일단 가볍다. 휴대하기 편하다. 사무실에서 쓰다가 PC방에 가져가서 게임을 해도 손색없다. 공간 절약도 가능하다. 복잡하고 좁은 책상에서 진가를 발휘한다. 특히 게이밍에 유용하다. 마우스 컨트롤이 중요한 게임에선 마우스를 운용할 공간을 최대한 확보하는 게 중요하다. 텐키리스 키보드를 활용해 공간을 확보해야 하는 이유다. 프로게이머들도 같은 이유로 텐키리스를 선호한다.

▲ 커세어 K63. 출처=커세어

 

LED 백라이트: 모노톤 vs 무지개빛

K63은 붉은 LED 백라이트를 내뿜는다(커세어 제품은 LED 백라이트가 예쁘기로 유명하다). 묵직하면서도 강렬한 이미지가 완성된다. 제품 상단 둥근 조명 버튼을 누르면 쉽게 밝기 조절이 가능하다. 전용 소프트웨어로 조명 효과를 커스터마이징할 수 있다.

조명 역시 취향의 영역이다. 나의 첫 기계식 키보드는 무지개빛 LED 백라이트를 탑재한 제품이었다. 너무 부담스러워 아예 조명을 끄고 사용했다. 형형색색 무지개빛을 좋아하는 사람도 분명 있을 거다. 시중에 판매되는 기계식 키보드는 모델에 따라 LED 조명 색상은 물론 효과도 다양하다. LED 광고판처럼 현란하게 불빛이 반짝이는 제품도 있다.

▲ 커세어 K63의 모습. 사진=이코노믹리뷰 조재성 기자

 

기타: 미디어키, 디자인, 커스텀 키캡

K63 상단엔 다양한 추가키가 달려있다. 참 유용하단 생각이 든다. 키보드로만 볼륨을 조절한다든지 멀티미디어 재생·정지 등이 가능하다. 조명 밝기를 조절하거나 윈도우 키를 잠글 수도 있다. 직관적이어서 편리하다.

▲ 커세어 K63에 달린 멀티미디어 조작키. 출처=커세어

키보드 디자인이 다 거기서 거기이진 않다. 기계식 키보드와 게이밍 키보드는 교집합 부분이 큰 편이다. 게이밍에 방점이 찍힌 제품은 대개 화려하고 과장된 모습을 하고 있다. 어두운 PC방에 있지 않으면 어색한 그런 제품들이다. K63이 크게 멋부린 디자인으로 보이진 않는다. 하지만 세련됐다. 사무실에서 사용해도 크게 이질감이 없다. 질리는 디자인이 아니다.

기계식 키보드 마니아라면 눈치챘을 거다. 사실 난 기계식 키보드 편력이 대단한 사람이 아니다. 이제 막 그 세계에 눈을 뜨고 있는 사람에 가깝다. 그러니 K63이 나의 인생 키보드라고 속단할 수 없다. K63엔 미안한 일이지만. 그 다음 단계는 기성품이 아니라 커스텀 키보드라고들 한다. 스위치, LED, 키캡 등을 맞춤 조립 제작한 커스텀 제품 말이다. 더 심오하고 복잡한 세계다. 그 세계가 내게 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