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찾는 외국의 유명한 패션 디자이너나 패션 관련 경영자들이 늘 빼놓지 않고 하는 말이 있다. 한국 사람들은 마치 중요한 약속이나 행사가 있는 것처럼 하나같이 너무나 잘 차려입고 세련되게 하고 다니는 것에 놀랐다는 것이다. 학교를 가거나 직장을 가는 별다를 것 없는 일상인데 말끔하게 잘 차려입은 모습이 인상적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들의 패션은 너무 한결같아서 잘 차려입긴 했지만 누가 누군지 구분이 안 갈 정도로 획일적이라는 지적을 빼놓지 않는다.

예전에는 이런 말을 듣거나 읽으면서 ‘그래, 한국 사람들이 유행을 지나치게 쫓는 경향이 있어서 옷 입는 게 비슷해 보이기는 하지’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패션의 중심이라는 뉴욕에서 사람들의 패션을 본 이후에는 ‘뉴욕도 별 수 없이 다들 똑같은 옷만 입고 다니던데 뭘’이라는 반발심 비슷한 것이 생기기도 한다.

뉴요커들도 다들 비슷한 옷을 입었다고 생각하게 만든 것은 바로 ‘레깅스’ 때문이다. 레깅스는 발 부분이 없는 타이츠 모양의 바지로 신축성 있는 소재로 만들어져서 편안하다는 특징이 있다.

레깅스는 한국에서는 ‘쫄바지’로 불리면서 주로 겨울에 타이츠 대신 스커트 안에 입어서 추위를 막는 데 사용됐다. 한국에서 레깅스를 입는 사람들은 대부분 긴 티셔츠나 치마를 덧입어서 별도의 하의로 입는다기보다는 타이츠처럼 활용하는 경우가 많다.

뉴욕에서 보이는 레깅스는 일반 ‘쫄바지’ 형태도 있지만 헬스클럽에서 운동할 때 입는 운동용 레깅스가 많다. 뉴욕의 길거리에서 지나가는 여성 중 절반 이상은 레깅스에 짧은 티셔츠를 입고 있다. 레깅스를 타이츠로 입는 것이 아니라 그냥 ‘바지’ 대신 입는 것인데, 처음 이런 모습을 본 한국 사람들은 민망하다고 느끼는 경우가 많다.

남들이 입는 옷차림에 이렇다 저렇다 말을 하지 않는 미국 사람들에게도 간혹 너무 심하다 싶었는지, 몇몇 사람들이 인터넷에 레깅스는 바지가 아니라고 했다가 레깅스 예찬론자들에게 뭇매를 맞기도 했다.

작가이자 연설가인 프랜 레보위츠는 요즘 너도나도 레깅스를 입고 다닌다면서 이는 마치 잠옷을 입고 돌아다니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면서, 당신이 0.1%에 속하는 타고난 몸매가 아니라면 레깅스를 바지로 입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가 혼쭐이 났다.

누구든 자신이 원하는 옷을 입을 수 있으며 남들이 왜 내가 무슨 옷을 입는지 이래라 저래라 하느냐는 것이 주요 요지였다.

불과 6~7년 전인 2010년만 해도 많은 미국인들은 레깅스를 바지로 입는 것에 대해서 불편함과 언짢은 감정을 드러냈는데, 몇몇 연예인들로부터 시작된 레깅스 일상복 패션은 이제 모든 젊은 여성들의 교복이 됐다.

여성들은 레깅스의 장점으로 편하다는 점을 꼽았다. 남성들은 이런 패션의 등장을 은근히 반기는 눈치다. 한 인터넷 게시판에 어떤 남성이 올린 글에는 ‘누군지 모르지만 레깅스를 바지로 입는 패션을 만들어낸 사람에게 상을 수여해야 한다’면서 트렌드를 즐기고 있음을 나타냈다.

레깅스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에 대해, 여성들은 내 몸이니 내가 마음대로 입을 권리라고 하는데 어쩌면 이것은 여성의 성적 상품화가 고도화된 다른 모습은 아닐까 싶다.

어찌되었거나 레깅스의 일상복 패션은 자리를 잡아서 미국 하면 떠오르는 청바지를 위협하는 미국의 패션이 되고 있다.

온라인에서 레깅스의 판매 증가는 이미 청바지의 판매 증가율을 훨씬 앞서고 있다. 우먼스 데일리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15년 온라인 쇼핑을 통해서 팔린 레깅스의 매출 증가율은 41%이지만 청바지의 온라인 쇼핑 매출 증가율은 3%에 그쳤다.

광부들의 작업복으로 등장해 튼튼하고 질겨서 인기가 높았던 청바지는 이제 편안하지 않다는 이유로 레깅스에 가장 미국적인 패션의 영예를 물려줘야 할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