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법리베이트 제공으로 물의를 빚은 다국적제약사 노바티스의 만성골수성백혈병치료제 '글리벡'의 급여정지를 놓고 정부의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시장질서를 교란하고 건강보험재정을 위협할 수 있는 리베이트를 근절하기 위해 법을 도입했지만 중증 질환을 치료할 수 있는 약의 급여정지가 환자들의 반발을 사고 있기 때문.사진=이미지투데이

의약품 리베이트는 시장 질서를 흐리고 의료기관으로 하여금 가격이 높은 약제를 과잉처방하게 만드는 요인이 돼 결국 국민건강보험재정에 위협이 될 수 있다. 때문에 정부는 제약사들의 리베이트 행태를 근절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시도해왔다. 그 중 일명 ‘리베이트 투아웃제’를 통한 약제의 보험급여정지가 정부의 의도와는 다르게 환자들의 불안감을 오히려 가중시키고 있다.

‘단 1개월이라도’ 제약사엔 가장 무서운 ‘급여정지’

노바티스의 한국법인인 한국노바티스는 의료인에 학회 명목의 식사접대, 강연료 지급 등 72억원의 리베이트를 지급해 2011년 9월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과징금 23억5300만원을 부과받은 데 이어 2016년 8월 2011년부터 5년간 25억9000만원의 리베이트를 의료계 관계자에 제공한 혐의가 서울서부지검에 적발됐다.

불법리베이트를 제공한 제약사에 가해지는 처벌은 대략 ▲약가인하 ▲판매정지 ▲과징금 ▲형사처벌 ▲국세추징 등이 있다.

다양한 제재에도 불법리베이트가 줄어들지 않자 정부는 2014년 7월2일부터 불법리베이트로 적발된 약의 건강보험 적용을 최대 1년까지 일시정지 시키고 같은 약이 2회 이상 리베이트로 적발되면 건강보험 급여목록에서 삭제하는 이른바 '투아웃제'를 시행하기에 이른다.

적발금액이 적어 급여정지되진 않았지만 경고를 받은 사례가 있다. 2015년 한국아스트라제네카 등 3개 업체는 한 대학병원 의사에 리베이트를 제공한 사실이 적발돼 보건복지부로부터 경고통보를 받았다. 리베이트 금액이 500만원 미만으로 소액이었기 때문이다.

▲ 부당금액에 따른 급여정지 기간과 과징금 부과비율

투아웃제는 제약사가 제공한 부당금액에 따라 급여정지 기간과 과징금 부과비율을 달리하고 있다. 리베이트 제공 시기와 약제별 리베이트 금액에 따라 급여정지 기간은 달라질 수 있다. 리베이트 금액이 500만원 이상만 돼도 1개월의 급여정지에 처해진다. 약제에 대한 1개월 급여정지는 사실상 시장퇴출과 다름없이 큰 타격이라는 것이 업계의 중론이다.

노바티스는 2011년부터 2016년까지 26억원 상당의 불법리베이트를 제공했다는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으나 리베이트 투아웃제가 시행된 2014년을 기점으로 리베이트 금액을 어떻게 나눌지가 관건이다.

원칙은 ‘급여정지’ 맞지만…“환자선택권 제한” 반발

원칙대로라면 글리벡을 급여정지 하는 것이 맞다.

글리벡 100mg의 경우 이미 국내에만 15개의 제네릭이 존재하기 때문에 급여정지 대신 과징금으로 처벌을 대신할 수 있는 경우에 해당하지 않는다.

▲ 노바티스의 '글리벡'과 글리벡 복제약(제네릭)들의 보험약가. 글리벡보다 3배 가까이 저렴한 제네릭도 존재한다.자료=식품의약품안전처 온라인의약도서관

급여정지 대상 약제라도 ▲진료상 필수약제 중 경제성이 없어서 제약사가 취급을 기피하는 퇴장방지의약품 ▲긴급도입 희귀의약품 동일제제가 없는 단독등재 의약품 ▲복지부장관이 특별한 사유가 있다고 인정한 약제 등은 급여정지 대신 과징금으로 처벌을 갈음할 수 있다.

문제는 환자들의 반발이다. 잘못은 제약사가 했는데 애꿎은 환자들에게 피해가 전가돼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백혈병환우회는 “글리벡 치료로 수년 또는 10년 이상 장기 생존하고 있는 수천 명의 만성골수성백혈병 환자들이 노바티스사의 불법 리베이트 제공에 아무런 귀책사유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글리벡을 강제적으로 다른 대체 신약이나 복제약으로 교체하도록 강요받는 것은 비합리적”이라며 “환자에게 피해를 주는 것이 아니라 불법 리베이트를 제공한 제약사를 강력히 형사처벌하고 행정처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환자들, 복제약보다 오리지날약 선호

글리벡 제네릭의 경우 생물학적동등성시험(생동성시험)에 의해 오리지날약과 효과가 동등하다는 것을 입증했지만 신약처럼 임상시험을 거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불신이 존재한다.

생동성시험은 사람을 대상으로 오리지널 약제와 동일한 주성분의 제네릭이 동일한 경로로 투여될 때 생체이용률에 있어서 통계학적으로 동등하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실시된다. 약품을 경구투입하거나 주사를 맞은 뒤 시간당 혈액 내 흡수율을 확인하는데 오리지널 약제와 비교할 약제가 각 시간마다 체크한 성분량(체내흡수율)에서 큰 차이를 보이지 않을 경우 생동성이 확보된 것으로 판단한다.

생동성시험에 대한 불신 때문에 식약처는 2015년 2월 임상시험과 생동성시험의 기준을 통합관리하기로 결정했다.

시민단체, “원칙 훼손 안 된다…약제 관리 시스템 무력화하는 것”

건강사회를위한약사회(건약)와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등 시민단체는 원칙대로 글리벡의 급여정지를 진행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경실련은 11일 “복지부는 제도 도입취지에 맞게 의약품 리베이트 제재수단을 강화함으로써 리베이트 관행을 근절하고 공정한 거래질서를 확립해 국민의료비의 감소 및 국민건강의 보호에 이바지하기 위해 노바티스를 일벌백계해야 한다”고 했다.

건약은 12일 의견서를 통해 “보건복지부는 지금 과징금 대체 여부를 고민할 것이 아니라 환자들에게 제네릭 의약품에 대해 설명하고 안심시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며 “미국, 독일, 영국, 뉴질랜드 등 많은 선진국들이 70%에 육박하는 제네릭을 사용하고 있으며 세계보건기구에서도 제네릭 사용을 권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일부 언론에 보도된 바와 같이 제네릭 의약품에 대한 환자들의 막연한 불안감 때문에 노바티스사에게 특혜를 준다면 (생략)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제네릭 의약품 허가·관리 체계를 부정하게 되고 건강보험심사평가원, 국민건강보험공단의 급여·약가결정 시스템도 무력화시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복지부도 급여정지를 하는 것이 원칙이라는 입장이다.

복지부관계자는 "급여정지를 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환자에 미칠 영향을 고려해 신중하게 검토하고 있다"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