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씨티은행이 이르면 하반기 전국 영업점 133곳 중 32곳만 남기는 대규모 사업 조정에 나선다는 소식이다. 이에 기존 직원들 대부분이 사실상 콜센터에 재배치된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한국씨티은행이 이러한 조치를 취한 배경은 무엇일까? ICT 기술의 발전으로 디지털 환경에 보폭을 맞추기 위한 행보라는 설명이다. 인터넷전문은행 등이 비대면, 무점포 서비스를 내세워 핀테크 혁명을 일으키는 상황에서 기존 은행도 빠르게 흘러가는 시대의 흐름을 따라가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러한 일련의 사태를 지켜보면, ICT 기술의 발전과 인간의 일자리에 대한 의미있는 시사점을 여럿 발견할 수 있다. 인공지능과 일자리의 상관관계를 넘어서는 기술 혁명의 그림자다.

노동조합은 어떻게 될까. 그 기원을 역사적 관점에서 보는 학자들은 노동조합을 일종의 산업화 산물로 이해한다. 자급자족에 가까운 소상공인 중심의 경제가 산업혁명을 만나며 규모의 경제를 갖추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노동력을 가진 노동자의 운명이 고용주로 넘어갔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고용주는 상품시장의 경쟁을 위해 노동 강도를 높이며 압박했고, 노동자는 노동조합 결성으로 맞섰다는 것이 학자들의 주장이다.

▲ 산업단지. 출처=픽사베이

그렇다면 노동자와 고용주가 각각 노동조합과 사업체를 매개로 삼은 상태에서 어떤 전제를 공유하고 있을까? 간단하다. 노동자가 제공하는 노동력이다. 노동자는 노동력을 제공하고, 고용주는 얻어낸 노동력을 통해 사업을 키우는 과정에서 각자의 이해득실을 따지기 때문이다.

정리하자면 지금까지의 산업혁명은 노동력을 전제로 한 상태에서, 노동자와 고용주의 복잡한 상호작용을 유도한 셈이다. 그런 이유로 고용주 입장에서 본다면, 노동조합은 규모의 경제를 촉발시킨 산업혁명의 사생아다.

문제는 소위 4차 산업혁명이라는 시대가 펼쳐지며, 노동력의 정체성이 변하며 발생했다. 인공지능과 로봇, 자동화 설비가 인간을 대체하며 노동자와 고용주의 거대한 '전제'인 노동력의 의미가 변했기 때문이다. 고용주는 로봇과 인공지능이 제공하는 노동력에 더욱 큰 매력을 느꼈고, 더 이상 노동조합이라는 사생아에 관심을 둘 이유가 사라지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이 지금까지의 산업혁명과 극명하게 갈리는 지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지금까지의 산업혁명이 에너지의 근원, 즉 인프라(석탄 및 전기 등)의 변화에 집중하면서도 꾸준히 노동력을 제공하는 노동자(인간)의 존재를 놓지 않았던 반면, 우리가 4차 산업혁명으로 부르는 지점에서 노동자는 굳이 인간이 아니어도 된 시대가 됐다.

UBS에 따르면 아시아에서만 2030년까지 최대 5000만개의 일자리가 없어질 전망이다.

그렇기 때문에 4차 산업혁명이라는 단어는 지금까지의 산업혁명과 차원이 달라진다. 특히 노동력의 정체성이 달라진 지점은 기존의 산업혁명과 분명한 단절성을 가지고 있다. 여기서 자문해야 한다. 4차 산업혁명이라는 단어가 맞을까? ICT 기술을 원동력으로 삼는다고 해서 이를 지금까지 인간의 노동력을 전제로 한 산업혁명의 연장선으로 보는 것이 맞을까?

따지고 보면 온디맨드도 마찬가지다. 수요가 공급을 결정하는 시대에서 플랫폼 사업자는 공급자의 입장에서 슈퍼갑이 된다. 가변적인 수요정보를 수집해 공급자에게 제공하는 '결정권'이 플랫폼 사업자에게 있기 때문이다. 우버와 에어비앤비를 합리적 소비의 방식인 공유경제 기업이 아니라, 초월적 플랫폼 사업자인 온디맨드 기업으로 봐야 하는 이유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은 모든 노동자의 비정규직화를 끌어낸다.

결론적으로 우리가 4차 산업혁명이라고 부르는 단어는 산업화의 산물인 노동조합의 종말을 재촉하고 있으며, 이는 지금까지의 산업혁명과 본질적으로 차원이 다른 개념이라는 시사점을 남긴다. 그 과정에서 절묘한 운용의 묘를 보여줄 수 있을까? 예컨데 전자책 시장이 뜨며 기존 활자시장과의 상생이 가능할까?

ICT 기술을 견인하는 사람들은 '가능하다'며 우리를 안심시키고 있으나, 4차 산업혁명이라는 이름으로 본질을 숨긴 '그 것'은 기술의 발전이 만들어 낸 산업화의 과정에서 탄생한 노동조합을 아니러니하게 기술의 발전으로 숨통을 조이고 있다. 우리가 진지하게 생각해야할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