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 미디어 플랫폼이 ICT 초연결 인프라 기술의 등장으로 무너지고 있다.

콘텐츠와 플랫폼을 모두 가지고 있는 '갑중의 갑' 지상파가 낮은 직접수신율로 괴로와하는 사이 그 자리를 케이블, IPTV 등의 유료방송이 채우는가 싶더니 느닷없는 OTT(Over The Top/인터넷 모바일 방송) 폭풍이 몰아치고 있다. 물론 아직 OTT는 지상파와 유료방송의 보완재로 여겨지는 경향은 있으나, 조만간 미디어 시장의 중심이 될 가능성은 점점 높아지고 있다.

OTT 폭풍은 어떤 관점에서 살펴봐야 할까? 이는 플랫폼의 가치판단에 대한 근본적인 고찰과 망 중립성의 파도를 넘어, 콘텐츠의 수급적 차원에서도 의미하는 바가 크다. 단순한 시청 패턴의 변화 정도가 아니라 콘텐츠 및 플랫폼 시장의 격변을 야기할 수 있는 핵폭탄이라는 뜻이다.

▲ 오래된 TV. 출처=플리커

미디어 흥망성쇠

원래 방송은 라디오의 전유물이었다. 하지만 시청각적 강점을 살린 TV가 등장하며 라디오의 시대는 저물고 말았다. 팝 그룹 버글스의 노래 'Video Kills The Radio Star'의 시대다.

영상을 중심으로 재편된 방송의 시대는 어떻게 흘러왔을까. 초창기 영상 방송은 라디오의 인프라를 발전시킨 지상파의 몫이었다. 당장 지상파는 플랫폼과 콘텐츠를 모두 확보한 상태에서 초월적 지위를 누리기 시작했다.

이는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비슷하게 벌어진 현상이다. 영상과 관련된 콘텐츠 제작은 물론, 각 지역에 구축한 인프라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물론 기간 인프라 사업자의 지위도 영향을 미쳤다. 국내의 경우 공영방송인 KBS, 민영방송이지만 방송문화진흥회의 컨트롤을 받는 MBC가 대표적이다.

변화의 징조는 1991년 12월 서울방송, SBS의 개국이다. 나아가 1도(道) 1사(社) 원칙에 따라 1995년(부산, 대구, 광주, 대전), 1997년(전주, 청주, 울산, 인천), 2001년(강원), 2002년(제주) 각 지역에 민영방송사가 도입되며 미묘한 흐름을 보여줬다.

독과점 체제에 일부 균열이 가며 지역문화창출의 가치가 대두되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하지만 이들의 경우 기존 KBS와 MBC의 방송을 재송출하는 지역 RO 및 단순 중계 방식에서 자유롭지 못했으며, 이는 지금도 풀어야 할 숙제로 남아있다.

오히려 방송의 다양성 측면으로 큰 의미를 가지는 것은 유료방송, 특히 케이블의 대두다. 1991년 4월 시험 서비스를 시작한 케이블은 1995년부터 본격적인 송출로 새로운 미디어의 시대를 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정부는 케이블 업계를 지역문화창출 및 방송 다양성의 측면으로 강하게 육성했으며, 이러한 분위기는 유료방송 전성시대의 서막을 열었다.

하지만 2010년대 통신사 주도의 IPTV가 위력을 발휘하며 유료방송시장의 패권에도 변화가 생겼다. 유무선 통합 시너지를 통한 인터넷 기술의 발전으로 단숨에 판도가 변한 셈이다. 물론 IPTV는 최초 서비스 당시 6~7Mbps 정도의 낮은 속도로 영상을 스트리밍해 화질 수준이 나빴고, 지상파 콘텐츠를 실시간으로 보여주지 못해 VOD에만 매몰되는 분위기를 연출했으나 이내 기술 및 콘텐츠적 문제를 극복했다.

기존 미디어 플랫폼들이 방송법의 영향을 받지만 IPTV는 별도의 IPTV 특별법을 통해 상대적으로 느슨한 규제를 받았던 점도 영향을 미쳤다.

이 과정에서 지상파 플랫폼은 철저히 무너지고 있다. 2000년대 초 50%를 넘나들던 직접수신율은 현재 5% 수준에 머물러 있으며, 미래 방송 기술 경쟁에서도 주도권을 상실하고 있다. 2012년 12월 31일 아날로그 방송 종료 및 디지털 방송을 선언하며 700MHz 대역 주파수를 통해 UHD 시장의 패권을 강하게 확보하려고 했으나 이는 방송통신위원회와 미래창조과학부의 모바일 광개토 플랜에 가로막혀 뜻을 이루지 못했다.

현재 유료방송은 일제히 UHD 시대를 선언하며 발 빠른 행보를 보여주고 있으나, 지상파 UHD 본방송은 5월로 연기된 상태다.

여기까지가 최근까지 벌어진 미디어 환경의 변화다. 플랫폼적 측면에서 지상파의 쇠락이 두드러지고, 유료방송이 발전하고 있으나 IPTV가 케이블을 압도하기 시작한 시대. 하지만 변화의 파도는 더욱 촘촘해졌고, 빨라졌다.

▲ 리모컨. 출처=픽사베이

코드컷팅...OTT 신드롬
대부분의 미디어 플랫폼을 유료방송을 통해 시청하는 사람들이 많아진 상태에서, 2010년대 의미있는 변화가 감지되기 시작했다. 바로 유료방송 케이블 시청자가 가입을 해지하고 새로운 플랫폼으로 이동하는 코드커팅(cord-cutting) 현상이다. 쉽게 말하면 유료방송을 거부하고 새로운 미디어 플랫폼을 택한다는 뜻이다. 바로 OTT를 택했다.

지상파는 물론 기존 유료방송 입장에서는 재앙이다.

현재 지상파의 경우 플랫폼 경쟁력은 크게 떨어졌으나 막대한 제작비를 바탕으로 규모의 경제를 발현, 콘텐츠적 측면에서 활로를 찾아가는 중이다. 지상파의 검증된 콘텐츠를 유료방송에 제공해 수익을 얻는 상태에서 '믿었던 유료방송 플랫폼'도 코드컷팅이라는 다크호스를 만난 셈이다.

지상파 재송신 논란을 일으키며, 심지어 시청자의 시청권을 박탈하는 극단적인 블랙아웃까지 불사하는 방식으로 콘텐츠적 가치를 지키려던 지상파 입장에서는 매우 씁쓸한 현상이다.

유료방송은 더욱 직접적인 타격을 받는다. 지상파에서 뺏은 플랫폼 주도권이 인터넷 기업으로 넘어가기 때문이다. 특히 IPTV의 경우 통신사의 네트워크 인프라가 인터넷 플랫폼 사업자인 페이스북 및 기타 ICT 기업의 영향력에 압도되어 발만 동동 구르던 상황에서, 제조사의 스마트 TV의 등장으로 촉발된 OTT 시너지는 강력하고 위험한 라이벌이다.

물론 코드컷팅이 '현재의 대세냐'는 질문에는 호불호가 갈린다. 특히 국내의 경우에는 아직 코드컷팅이 파괴적인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정설이다. 업계 관계자는 "OTT를 보려고 유료방송을 해지하는 사람은 크게 봐도 전체 시청자의 20% 아래"라며 "국내의 경우 유료방송 비용이 저렴하고, 종합편성채널 등의 개국 등으로 PP(프로그램 제공자)의 숫자도 많아져 채널의 숫자도 풍성한 편'이라고 지적했다.

코드컷팅으로 OTT를 선뜻 선택하기에 현재의 유료방송 시장은 여전히 매력적이라는 뜻이다. 실제로 넷플릭스가 국내에 진출하며 케이블 방송사인 딜라이브와 손을 잡은 배경도 이러한 현실적 고려가 있었다.

하지만 코드컷팅이라는 극단적인 방법론은 아니더라도, OTT 시장이 크게 팽창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미국 연구기관인 컴스코어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기준 미국 가정의 53%가 OTT와 관련된 서비스에 가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 넷플릭스 한국 출시 기자회견. 사진=이코노믹리뷰 최진홍 기자

글로벌 기업을 중심으로 바람이 불고있다. 넷플릭스와 아마존 비디오, 훌루 등이 중심이 되어 선진시장인 미국을 중심으로 조금씩 외연을 확장하고 있는 분위기다. 특히 넷플릭스의 경우 지난해 한국을 포함한 글로벌 130개국에 신규 서비스 진출 계획을 발표하며 스펙트럼을 넓혀가고 있다.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자 기존 플레이어들도 속속 OTT에 도전하고 있다. 지상파는 '푹'을 런칭하며 일각에서 제기하는 '무료 보편의 방송 서비스 정체성을 지상파가 버렸다'는 비판을 감내하고 있으며, SK브로드밴드의 옥수수와 CJ E&M의 티빙도 등장했다. 넷플릭스와 비슷한 서비스인 토종 왓챠도 이름을 올렸다. 현재 이들은 OTT 시장을 장악하기 위해 규모의 경제적 측면에서 강하게 충돌하거나, 기존 사업자와 연합하거나 특정 타깃을 노린 독특한 행보를 연이어 보여주고 있다.

▲ 넷플릭스 시연. 사진=이코노믹리뷰 최진홍 기자

OTT 후폭풍
아직 OTT 시장이 기존 레거시 미디어 플랫폼을 대체하는 수준은 아니다. 특히 플랫폼적 관점에서 보면 유료방송의 시대라고 부르는 편이 타당하다. 채널별 시장 점유율을 보면 지상파의 경우 2002년 71.6%에 달했으나 지난해 48.8%로 크게 떨어진 반면 케이블 및 위성방송은 2002년 28.4%에서 지난해 51.2%로 수직상승했다.

현재 지상파 방송 3사의 매출 및 광고 수익은 점점 떨어지고 있으며,, IPTV의 존재감은 더욱 날카로워지고 있다.

하지만 OTT가 보완재의 역할을 넘어, 일종의 세컨드 TV의 패러다임을 부수고 미디어 환경의 중심으로 진격할 수 있는 여지는 얼마든지 있다. 넷플릭스는 올해 서비스 강화를 위해 무려 50억달러의 자금을 준비했으며 아마존은 45억달러의 물량공세를 펼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넷플릭스의 경우 현금 유동성이 악화되었다는 일각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이제 규모의 경제적 측면에서 배팅을 하겠다는 의지가 읽힌다.

오리지널 콘텐츠를 제작하고 정교한 사용자 경험을 위한 큐레이션 기술까지 탑재하는 지점은 워낙 유명하다. 실제로 넷플릭스는 인공지능 및 딥러닝을 기반으로 개인 취향에 맞는 콘텐츠를 추천하고 있다. 미국 비즈니스인사이더는 이를 두고 "시청자 콘텐츠 75%가 추천 알고리즘에서 나왔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OTT의 미래는 어떨까. 보완재에서 중심으로 진격하는 사이, 그리고 온전히 레거시 미디어 플랫폼과 충돌하는 상황에서 OTT는 마냥 꽃 길만 걸을까.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 아짓 파이. 출처=FCC

당장 망 중립성 논쟁이 발목을 잡는다. 최근 망 중립성에 있어 철저한 중립을 표방하던 미국 FCC의 톰 휠러가 물러나고 트럼프 행정부의 통신정책이 덧대어지며 분위기가 일변하는 지점이 눈길을 끈다.

톰 휠러의 뒤를 이어 미국 FCC 위원장으로 임명된 아짓 파이가 최근 통신사의 제로레이팅에 대한 조사를 중단하며, 사실상 이를 허용하는 정책적 방향을 잡았기 때문이다.

지난해 FCC 주도로 진행되던 제로레이팅 전수조사를 중단시킨 상황에서 통신사들의 전격전을 허용한 셈이다. 제로레이팅은 통신 사업자가 특정 서비스에 이용되는 서비스에 데이터 요금을 부과하지 않는 방식이다.

아짓 파이가 이끄는 FCC가 사실상 오바마 행정부의 정책기조에 반하는 제로레이팅 허용이라는 카드를 꺼내자, 당장 통신사들은 기다렸다는듯 전쟁에 돌입했다. 3위 사업자인 T모바일이 제로레이팅 서비스 가능성을 시사한 가운데 1위 사업자 버라이즌도 13일부터 모든 고객에게 한 달 80달러를 내면 데이터를 무제한으로 사용할 수 있게 만드는 요금제도를 실시한다고 밝혔다.

2위 사업자인 AT&T도 비슷한 요금제를 출시하며 맞불을 놨다. 현재 망 중립성은 무너지고 있으며, 미국의 영향을 받는 국내도 아직 특별한 변화는 없지만 조만간 미국의 방식을 따라갈 가능성이 높다.

이미 유럽에서는 망 중립성 원칙이 크게 힘을 잃어가는 상황이다. 통신사 중심의 망 중립성 논쟁이 불거지면 많은 ICT 기업이 그렇듯, OTT 업체들도 초유의 위기에 직면할 수 있다. 방대한 데이터를 처리해야 하는 영상 콘텐츠를 온전히 제공할 수 없기 때문이다.

넷플릭스를 중심으로 오리지널 콘텐츠에 집중하는 최근 OTT의 분위기가 콘텐츠 및 플랫폼 시장의 교란을 야기할 수도 있다. 지역 특화 정책의 일환으로 펼쳐지고 있는 국내 봉준호 감독의 옥자 프로젝트가 단적인 사례다. 봉준호 감독의 옥자는 넷플릭스의 지원을 받아 제작되는 상황이며, 영화는 영화관에 상영된 후 바로 넷플릭스가 독점으로 가지게 된다.

▲ 영화 옥자의 한 장면. 출처=넷플릭스

이러한 오리지널 콘텐츠의 성공이 자주 벌어질 경우, 극단적으로 생각하면 '넷플릭스 제작-넷플릭스 독점방영'의 연결고리가 완성될 수 있다. 최신 영화는 영화관에서 보고 시간이 지나면 유료방송 플랫폼으로 시청하는 패턴에 변화가 생길 수 있다. 장단이 있지만 최소한 콘텐츠 및 플랫폼 시장의 교란은 불가피하다. 많은 관련 사업자들이 긴장하는 대목이다. "OTT Kills The TV Star"의 시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