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산사거리에 위치한 폭스바겐 클라쎄오토 전시장 전경 / 사진 = 이코노믹리뷰 DB

“전시장 오셔도 차는 없어요. 언제부터 판매를 재개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폭스바겐이 주력 차종의 ‘인증 취소’로 판매를 중단한 지 8개월여가 지났다. 각 전시장은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급기야 전국 매장에 있는 전시 차량들까지 모두 빠져나간 상황. ‘차 없는 전시장’ 안에 있는 영업사원들의 피로도는 이미 한계치에 도달한 듯했다.

“중고차라도 보실래요?”

10일 서울 시내에 있는 폭스바겐과 아우디 전시장들을 돌며 분위기를 살펴봤다. 폭스바겐은 휴업에 들어간지 8개월여, 아우디는 1개월여가 지난 시점이다.

마침 평택항에 있던 아우디폭스바겐 차량 2500여대가 독일로 반송됐다는 소식이 전해진 날이었다. 이들 차량의 재인증만 학수고대(鶴首苦待)하고 있다는 ‘매니아 층’의 반응을 살펴볼 수 있는 기회다.

우선 도심 한복판에 있는 폭스바겐 매장을 찾았다. 점심시간이 막 지난 시점이라 그 앞을 지나다니는 이들이 몇몇 눈에 띄었다.

▲ 10일 오후 서울에 있는 한 폭스바겐 전시장 모습. 차량이 모두 빠져 빈 공간으로 방치돼 있다. / 사진 = 이코노믹리뷰 DB

문을 열고 들어섰지만 내부가 텅 비어 있었다. 자동차 전시장 안에 차가 없으니 당연한 일이다. “어떻게 오셨나요?” 영업사원의 눈빛에는 반가움 대신 의아함이 묻어 나왔다. 구경할 수 있는 차가 없고, 계약할 수 있는 모델도 없으니 방문객이 있을리 없는 것이다.

재인증이 언제 되느냐, 실차를 볼 수는 있느냐 등 기자가 쏟아낸 질문에 돌아오는 답변은 하나였다. “잘 모르겠습니다.” 8개월여간 빈 사무실을 지킨 영업사원의 모습에서는 안타까움이 묻어나왔다.

마침 사무실로 전화가 걸려왔다. 누군가 전시장에 오면 골프 차량을 구경할 수 있냐고 물어본 것으로 보인다. 그는 “지금 차량은 보실 수 없고요, 직원들이 타고 있는 차는 구경하실 수 있습니다. 중고차라도 보실래요?”라고 답변했다. 절실함이 느껴지는 발언이다.

▲ 10일 오후 서울에 있는 한 폭스바겐 전시장 모습. 차량이 모두 빠져 빈 공간으로 방치돼 있다. / 사진 = 이코노믹리뷰 DB

다른 폭스바겐 매장 분위기도 비슷했다. 도산대로 ‘수입차 거리’에 있는 클라쎄오토 전시장 역시 차량이 모두 없어진 상태. 직원이 두 명 상주하긴 했지만, 일을 하고 있지는 않았다.

아우디는 상대적으로 힘이 덜 빠져 보였다. 전 차종의 서류를 재검토한다며 지난달 판매 중단을 선언했지만, 나름 활기를 잃지는 않은 모습이다. 영업사원들은 대부분 자리를 지키고 있었고, 고객 응대를 하는 ‘안내 요원’ 여직원들도 모두 출근했다. 

고객 선택이 제한적이라는 점은 동일했다. A6, A7 등 일부 차종만 실제로 볼 수 있었고, 차량이 세워져 있던 곳 대부분이 비었다. 서울 시내 복수의 아우디폭스바겐 매장에 전화를 돌려본 결과 상황이 거의 비슷했다.

머나먼 재인증의 길···알 수 없는 미래

폭스바겐과 아우디는 수입차 성장을 주도한 대표 브랜드다. 한때 BMW, 메르세데스-벤츠와 함께 ‘빅4’로 군림하기도 했다. 2014년 두 브랜드의 합산 판매량은 5만8366대로 수입차 시장 점유율이 30%에 육박했다. 2015년에는 6만8316대를 팔아 28%의 점유율을 기록했다.

2015년 말 전세계 자동차 시장을 강타한 ‘디젤게이트’를 겪고 지난해 인증 서류 조작 문제까지 불거지며 힘이 빠지기 시작했다. 문제는 다시 차량을 판매할 수 있는 시점이 언제가 될지 아직 알 수 없다는 것. 딜러사들은 폭스바겐코리아와 아우디코리아로부터 금융지원 등을 받아 간신히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 서울에 있는 한 아우디 전시장 전경 / 사진 = 이코노믹리뷰 DB

수입차 업계에 따르면 인증 취소로 인해 평택항에 1년여간 세워둔 아우디폭스바겐 차량들은 대부분 독일 본사로 반송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 곳에 방치된 수입차는 2만여대. 이미 지난달 1300대가 선적돼 독일로 향했고 이날도 티구안, 골프 등 2500여대가 배가 올라탄 것으로 전해졌다. 이달 중순 내에 1200여대가 추가로 반송될 예정이다. 일각에서 떠돌던 ‘대량 할인설’이 힘을 잃는 대목이다.

정부의 인증이 예상보다 늦어지며 일어난 일로 풀이된다. 업계 한 관계자는 “(폭스바겐의 경우) 당초 빠른 시일 내 재인증 절차를 거쳐 올해 상반기 내 판매를 재개할 계획이었지만 늦어지고 있다”고 언급했다.

폭스바겐 관계자는 “고객 신뢰 확보를 위해 재인증보다는 기존 차량의 리콜을 우선 과제로 삼고 있다.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재인증은 아직 협의 중인 상태”라고 밝혔다.

럭셔리 브랜드 벤틀리의 경우 최근 플라잉스퍼, 컨티넨탈 GT, 벤테이가 등 주력 모델에 대한 재인증·인증을 마쳐 숨통이 트인 상태다. 아우디와 폭스바겐의 앞날은 불투명하다. 환경부 관계자는 “(아우디폭스바겐과) 리콜과 재인증 등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면서도 “자세한 일정 등은 알 수 없는 상태”라고 말했다.

폭스바겐코리아는 ‘차 없는 전시장’을 활용하기 위해 딜러 공간기부 CSR 활동을 펼치고 있다. 전시장 공간을 이용해 ‘나눔 전시회’를 펼치거나 장애인 대상 연말이벤트 등을 열고 있는 것이 골자다. 한 딜러사는 ‘아트스페이스 프로젝트’를 펼쳐 신진 작가들의 활동을 지원하고 그 작품들을 전시하는 작업을 펼치기도 했다. RC카 대회, 사진 공모전 등 고객감사 이벤트를 펼치는 곳도 있다.

▲ 자료사진. 폭스바겐은 최근 고객 신뢰 회복을 위해 ‘위 케어 캠페인’을 실시하고 있다. 캠페인에는 고객이 전국 어떤 서비스센터를 방문하더라도 동일한 표준화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혜택 등이 포함됐다. / 출처 = 폭스바겐코리아

봄바람이 불어오는 4월이지만 아우디폭스바겐의 ‘겨울나기’는 아직 진행형이었다. 불확실한 미래 앞에 딜러사, 소비자 모두 애만 태우고 있다.

한편 지난해 문 닫은 폭스바겐 강남전시장 인근에 최근 토요타 전시장이 새롭게 자리잡은 것으로 파악됐다. 토요타 브랜드가 ‘수입차 거리’로 불리는 도산대로 근처에 전시장을 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폭스바겐의 현 상황과 그 빈자리를 채우며 ‘일본차 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토요타의 전략이 묘하게 엇갈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