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개봉한 영화 <부시맨>에는 외부와 격리되어 원시생활을 영위하던 부시맨 부족이 등장한다. 사단은 평화롭던 어느 날, 하늘에서 콜라병이 떨어지며 벌어진다. 부시맨 부족은 콜라병을 신의 선물이라고 생각하고 추장 카이는 신의 선물을 돌려주기 위해 땅 끝으로 모험을 떠나게 된다.

 

여기에서 흥미로운 상상을 해보자. 만약 부시맨이 콜라병의 용도와 쓰임새, 나아가 정체를 명확하게 숙지한 상태에서 이를 발견했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영화의 장르가 변한다. 부시맨 부족은 하늘에서 콜라병을 던진 비행기 조종사에게 항의하는 한편, 이를 아프리카 환경오염 문제로 확장시켜 의미 있는 집단행동에 나섰을 가능성도 있다. 정리하자면, 고작 콜라병 하나 들고 험난한 모험을 떠나는 것보다 훨씬 생산적인 일에 나설 수 있다는 뜻이다.

최근 고용노동부는 제4차 산업혁명 대비 국가기술자격 개편 방안을 발표하며 17개 국가 자격증을 신설하겠다고 발표했다. 로봇 및 3D 프린터, 빅데이터 의료 및 신재생에너지, 환경안전 등이다. 4차 산업혁명의 파도가 몰아치며 해당 산업을 선점하는 한편 국가적 어젠다를 설정하여 미래 인재를 적극적으로 키우겠다는 복안이다. 초연결의 4차 산업혁명 시대가 도래하는 상황에서, 일견 고무적인 방법론으로 보인다.

그러나 악마는 디테일에 있는 법이다. 그 누구도 4차 산업혁명에 대한 명확한 정의를 내리지 못한 상태에서, 무턱대고 자격증만 신설하면 우리가 단숨에 4차 산업혁명의 주역이 될 수 있을까? 만약 일자리 창출을 위한 단순한 국가적 정책이라면 차라리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고용노동부의 이번 방침은 그 효율과 효능성에 대한 논쟁은 차치한다고 해도, 접근방식부터 철저히 꼰대스럽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건 마치 사냥으로 살아가던 부시맨 부족에게 다가가 ‘오늘부터 이 지역에 공장이 들어서는데, 여기서 일하면 더 좋아. 할 수 있지?’라고 제안하는 식이다.

물론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은 ‘IT 강국 코리아를 부시맨과 비교해?’라고 화낼 수도 있겠다. 하지만 감히 단언하건데, 4차 산업혁명은 그 누구도 가보지 못한 길이며 어떤 방식으로 발전되는지 여부도 불투명한 상태다. 심지어 4차 산업혁명이라는 단어 사용에도 호불호가 갈리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우리 모두 부시맨이 될 수밖에 없다는 점도 밝힌다. 자존심 상해 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오면, 코딩 교육 의무화도 마찬가지다. 현재 정부는 2015 교육과정을 개편해 중학교에서 선택교과인 정보 과목을 2018년부터 34시간 이상 필수교과로 전환하는 한편 초등학교에서는 2019년부터 소프트웨어 기초교육을 17시간 이상 실시할 계획이다. 발상은 나쁘지 않다. 지긋지긋한 제조업 일변도의 국내 경제 정체성을 바꿀 수 있는 나름의 전환점이 될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이 역시 부시맨에게 아무런 배경설명도 없이 콜라병만 던져주는 격이다. 코딩이 왜 필요한지, 소프트웨어의 정체성이 어디로 가야 하는지. 이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정부의 노림수가 제대로 먹힐 것이다. 지금 같은 방법으로는 사교육비만 늘어난다.

판을 깔아주고, 생태계에 대한 이해를 자연스럽게 체화시키는 것이 먼저다. 정부는 자연스러운 ICT 생태계 창출을 위해 매끄러운 구동 알고리즘을 만들어주고, 그 안에서 다양한 플레이어들이 스스로의 필요에 따라 방향성을 잡아야 한다. 자격증을 만들고 정규교과에 소프트웨어 교육을 넣는다고 갑자기 스티브 잡스가 나올까?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은 크게 두 가지 부류라고 생각한다. 시대의 흐름을 제대로 읽어내지 못하고 있거나, 뭔가 또 다른 음모를 꾸미고 있거나. 우리, 생각이라는 것을 하면서 삽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