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대차 그랜저 HG (자료사진) / 출처 = 현대자동차

중국의 사드 보복 후폭풍으로 위기를 겪고 있는 현대·기아자동차의 앞길에 훨씬 큰 고비가 찾아왔다.

6개월여 넘게 내부고발, 내수차별 논란 등의 중심에 섰던 ‘세타2 엔진’의 리콜이 최종 결정된 것. 논란을 제기한 쪽과 현대·기아차 측의 주장이 워낙 많이 엇갈리는지라 정확한 정황 파악도 힘든 상황이다.

당장 현대·기아차는 리콜에 따른 손실액 부담이 불가피해졌다. 소비자 신뢰는 크게 떨어질지, 혹은 오히려 회복하는 계기가 될지 미지수다.

현대차그룹을 덮친 대형 사건의 실태를 분석해봤다.

현대·기아차, 국내서 17만1348대 자발적 리콜

먼저 확인해야 할 사실은 현대·기아차가 7일 ▲세타2 2.4 GDi ▲세타2 2.0 터보 GDi 엔진이 장착된 차량 17만1348대에 대해 자발적 리콜을 실시한다고 발표한 것이다.

현대차 대상 차종은 2009년 7월~2013년 8월 생산된 YF쏘나타(2.4GDi, 2.0 터보 GDi) 6092대, 2010년12월~2013년8월 생산된 그랜저 HG(2.4 GDi) 11만2670대다.

기아차 대상 차종은 2010년 5월~2013년 8월 만들어진 K5(2.4 GDi, 2.0 터보 GDi) 1만3032대, 2011년 2월~2013년 8월 제작된 K7(2.4 GDi) 3만4153대, 2011년3월~2013년 8월 생산된 스포티지 SL(2.0 터보 GDi) 5401대다.

‘시동 꺼짐 가능성’ 국토부의 확인

이번 세타2 엔진 관련 리콜은 정부의 명령이 아닌 현대·기아차에서 자발적으로 시행하는 리콜이다. 국토부는 지난 4월6일 업체 측으로부터 리콜 계획서를 받고, 이를 승인했다.

국토부 측에서 확인한 이번 리콜의 원인은 ‘시동 꺼짐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엔진에는 직선운동을 회전운동으로 변환시키기 위해 커넥팅 로드라는 봉과 크랭크 샤프트라는 또 다른 봉이 베어링을 통해 연결돼 있다. 또 베어링과 크랭크 샤프트의 원활한 마찰을 위해 크랭크 샤프트에 오일 공급 홀(구멍)을 만들어 놓아야 한다.

엔진 속을 오일이 오가기 위해 구멍을 뚫은 것이라고 이해하면 된다.

문제는 현대·기아차가 크랭크 샤프트에 오일 공급홀을 만드는 과정에서 기계 불량으로 금속 이물질이 발생했고, 이러한 ‘금속 이물질로 인해 크랭크샤프트와 베어링의 마찰이 원활하지 못하게 되는 소착현상(마찰이 심해지며 열이 발생하고, 접촉되는 면이 붙어버리는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 세타2 엔진 결함 부위 / 출처 = 국토교통부

리콜 방식은 “점검 후 엔진 교환”

이런 와중에 우선 현대차의 리콜 진행 방식이 도마에 올랐다. 결함을 인정하고 리콜을 실시하지만, 서비스센터 방문 후 ‘엔진에 문제가 있으면’ 이를 바꿔주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국토부 역시 이 같은 리콜 방식을 승인한 상태다. 현대차가 앞서 미국에서 진행한 리콜도 같은 조건으로 이뤄졌다.

전례도 있다. ▲2017년 3월17일 르노삼성 SM6 리콜 ▲2016년 10월28일 BMW M5·M6 리콜 ▲2016년 3월15일 지프 컴패스 리콜 등이 정비소에서 차량을 일단 점검한 후 리콜을 실시한 사례다. 해외에서도 이 같은 ‘조건부 리콜’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다만 리콜 대상 차량 운전자가 ‘엔진 교체 대상자가 아닙니다’라는 말을 들으면 브랜드 신뢰도 하락이 불가피해 보인다. 이는 앞서 진행됐던 조건부 리콜 사례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난 현상으로, 해당 브랜드 차량과 정비 시스템에 대한 불만이 쌓일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분석이다.

한편 이번에 발견된 문제로 인해 국내 및 해외에서 사고가 접수된 사례는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엔진 문제로 인한 소음 등을 호소한 경우가 있었는데, 이에 따라 현대차가 자체적으로 조사를 진행해 리콜을 결정한 것이다.

세타2 엔진의 존재감

현대·기아차는 리콜 대상 차량을 17만1348대로 산정했다. 이는 단일 결함으로 국내에서 진행된 리콜 중 역대 세 번째로 큰 규모다.

단순히 숫자가 중요할 뿐 아니라 현대차그룹 내부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한 부품이다. 세타2 2.4 GDi 엔진의 경우 자체 기술 개발을 통해 2009년 선보인 국내 최초의 직분사 엔진이다. 2.0 터보 GDi는 직분사에 터보차저를 결합한 ‘다운사이징’ 엔진으로 2013년부터 미국에서 판매가 시작됐다.

리콜 목록에 이름을 올린 차종들은 현대·기아차의 ‘최전방 공격수’들이다. 쏘나타, 그랜저, K5, K7 등 주력 승용 라인업이기 때문이다.

최근들어 개발한 신형 엔진, 그것도 볼륨모델에 올라간 부품이 문제를 일으켰다는 점이 회사 입장에서는 뼈아픈 셈이다.

가장 보편적으로 팔리는 2.0 가솔린 쏘나타·K5의 경우 누우 엔진이 올라간 탓에 리콜 대상에는 포함되지 않았다.

내수차별·내부고발 ‘나비효과’

더 중요한 포인트는 이번 리콜 사태의 시발점이 ‘내수차별 논란’에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 말 현대차에서 약 25년간 근무한 한 ‘내부고발자’가 세타2 엔진 관련 내용을 폭로하며 이목이 모이기 시작했다.

그의 핵심 주장은 현대차가 세타2 엔진의 결함을 알면서도 이를 은폐했다는 것이다. 비슷한 시기 미국에서 현대차가 세타2 엔진에 대한 리콜을 시작하면서 논란은 걷잡을 수 없이 번졌다.

‘(같은 엔진을 사용했는데) 미국에서만 리콜을 하고 한국 소비자는 차별하는 것 아니냐’는 합리적 의심이 커지기 시작한 것이다.

▲ 현대차가 지난해 10월 블로그를 통해 해명한 ‘세타2 엔진 내수 차별 논란’ 관련 내용. / 출처 = 현대자동차 블로그

이에 대한 현대차 측의 답변은 ‘국내 판매된 모델에는 문제가 없다’는 것이었다. 현대차는 지난해 10월 자사 블로그를 통해 “(미국에서의 협의는) 미국 엔진 공정의 청정도 관리문제로 발생한 사안”이라며 “국내 생산엔진에는 해당되지 않는 사항”이라고 밝혔다.

공정 청결도 문제···논란의 중심에 서다

현대차가 진짜 내수차별을 했는지, 엔진 리콜을 어떻게 실시할지 등 가장 핵심적인 내용이 숨어있는 곳은 바로 ‘왜 엔진에 결함이 나타났는가’ 여부다.

현대·기아차는 초지일관 ‘공정 청결도 문제’를 언급해왔는데, 이를 두고 업계에서는 갑론을박(甲論乙駁)이 벌어지고 있다.

일단 확인된 것은 ‘엔진을 만드는 과정에서 깔끔하지 못한 부분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엔진에 오일이 오고가기 위한 구멍이 필요한데 이 곳에 이물질이 들어갔다고 생각하면 쉽다.

다만 앞서 미국 리콜 결정 당시 ‘국내 엔진은 상관 없다’고 발표했기 때문에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이대로라면 ‘현대차가 결함 사실을 은폐하려 한다’고 폭로한 내부고발자의 주장이 사실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현대차 측은 ‘원인이 다르다’고 맞섰다. 쉽게 설명하면 한국 공장에서는 (크랭크 샤프트에) 구멍을 뚫는 데 사용된 물건에서 이물질이 묻어 나왔고, 미국 공장에서는 이를 다 뚫은 후 세척하는 과정에서(금속재질로 된 솔을 이용) 이물질이 생겼다는 것이다.

다만 이 같은 주장에 신빙성이 없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업계 한 관계자는 “업체 측이 언제 이물질이 묻었는지를 주장하고 있는데, 사실상 이를 확인할 방법이 없다”며 “어찌됐건 커넥팅 로드 관련해 문제가 발생했다는 것인데, 미국이나 한국이나 같은 이유로 리콜되는 것이라고 보는 게 맞는 것 같다”고 언급했다.

이에 대해 다른 관계자는 “리콜이란 자동차에 중대한 결함이 있을 경우 실시되는데, 각국 정부에서 리콜 계획서를 받으면서 이를 대충 넘겼을 리가 만무하다”며 “한국과 미국 정부에서 각각 리콜 승인을 받은 사안을 두고 ‘현대차 말을 믿을 수 없다’고 하는 것은 억측”이라고 반박했다.

학계에서는 현대차 측 주장에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 분위기다.

한 자동차관련 대학 관계자는 “사실 (현대차 측 설명이)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며 “지난해 ‘국내 제품은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내놓은 상태라 변명을 하고 있다는 합리적 의심이 가능해 보인다”고 귀띔했다.

이호근 대덕대학교 자동차학과 교수는 “결국 (커넥팅 로드) 연결 부위의 문제인데, 사실상 같은 사유로 리콜되는 것으로 판단할 수도 있다”고 진단했다.

다만 당초 논란이 됐던 ‘청결도 문제’에 대해서는 대부분 증거가 현대차 측 주장이 사실이었다는 쪽에 손을 들어주고 있다.

지난해 논란이 최초 불거졌을 당시에만 해도 ‘청결 문제로 이물질이 생겨 엔진에 이상이 생겼다’는 현대차 측 주장에 반감을 품은 의견이 많았었다. 사실로 드러날 경우 공정 과정이 아니라 엔진 자체에 결함이 있다는 뜻이 된다. 후폭풍과 비용 손실이 예상할 수조차 없을 정도로 거셀 것이 분명하다.

이에 대해 업계 한 관계자는 “엔진 내부에는 부품이 많이 들어갈 뿐 아니라 가공 과정에서 반도체 등 세심한 작업을 필요로 하는 부분도 많다. 작은 이물질이 전체 엔진에 문제를 줄 가능성은 충분하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글로벌 완성차 브랜드들도 개별 공장의 문제로 일부 지역에서만 리콜을 진행하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세타2 엔진 리콜 당시에도 현대차 앨라배마 공장 제품들은 대상 차종에 포함됐지만, 같은 엔진을 공유하는 기아차 K5(조지아 공장)는 제외된 바 있다. 이 역시 현대차의 주장이 사실이라는 점에 힘을 실어주는 대목이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2015년 9월 실시된 미국 YF쏘나타 리콜과 국내 리콜, 북미에 신고된 리콜 등은 서로 다른 별도의 건”이라며 “엔진 설계 결함이 아닌 청정도 및 공정상 산발적인 가공 불량 문제가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 현대차 YF 쏘나타 (자료사진) / 출처 = 현대자동차

17만대 리콜, 손실액은 아직 미지수

국내에서 17만대가 넘는 차량을 대량 리콜하기로 한 와중에 정확한 현대차 측 손실액은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다. 미국에서 진행한 ‘조건부 리콜’의 경우 전체 차량의 3~5% 가량이 엔진을 교환한 것으로 알려졌다.

단순 계산할 경우 국내에서 6000~7000대 정도가 엔진을 교환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현대차 측은 문제가 있는 차량에 엔진을 통째로 바꿔주겠다고 발표한 상태다.

업계와 블루핸즈 자료 등에 따르면 2.0ℓ급 엔진의 소비자가는 380만~400만원 수준인 것으로 전해졌다. 공임까지 더할 경우 약 600만원 가량의 금액 투자가 전망된다. 이호근 교수 역시 “세타2 엔진의 경우 엔진 가격은 380만원, 교체 비용은 600만원 가량이 예상된다”고 내다봤다.

6000대의 엔진을 교체한다고 가정할 경우 360억원 가량의 비용 손실이 예측된다.

최악의 상황도 배제할 수 없다. 업계 사정에 능통한 한 관계자는 “수개월 전 현대·기아차의 내부 문건을 확인한 적 있는데, 최대 리콜 투입 비용이 1조원이 넘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실제 600만원을 기준으로 17만대의 엔진을 모두 교환한다고 계산할 경우 필요한 금액은 1조200억원 수준이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아직 정확한 손실액은 파악하기 힘든 상황”이라고 말했다. 복수의 증권사 애널리스트들 역시 “정확한 파악은 힘들다”고 입을 모았다.

한편 현재 북미에서는 세타2 엔진 관련 미국 도로교통안전국(NHTSA)에 쏘나타, 싼타페, K5, 쏘렌토 등 130만여대에 대한 리콜이 신고된 상태다.

핵심은 ‘고객 신뢰’

현대·기아차가 당면한 가장 큰 과제는 이번 사태로 인해 고객 신뢰를 잃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첫 번째 걸림돌은 리콜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다.

국토교통부 산하 자동차리콜센터에서는 리콜을 “자동차가 안전기준에 부적합하거나 안전운행에 지장을 주는 결함이 있는 경우에 자동차 제작·조립·수입자가 그 결함 사실을 해당 소유자에게 통보하고 수리·교환·환불 등의 시정 조치를 취함으로써 안전과 관련된 사고와 소비자 피해를 사전에 예방하고 재발을 방지하는 제도”라고 규정하고 있다.

‘차량에 문제가 있다’는 이미지가 먼저 떠오를 수밖에 없는 셈이다. 이에 따라 국내에서는 아직 자동차 리콜에 대해 부정적 인식을 가지는 경우가 많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독일 등 자동차 선진국에서는 이를 다르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자동차 부품이 늘고, 전자제품이 많아지면서 리콜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다는 것이다. 오히려 차를 파는 데 그치지 않고 꾸준히 상황을 확인, 문제가 발견되면 수리해주는 것이 ‘사후서비스’의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취급받고 있다.

고객의 안전을 위해 자발적 리콜을 실시하는 사례가 앞으로 더 많아져야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배경이다.

큰 손실을 감수하고도 사고 사례가 없는 엔진 관련 결함에 적극적 태도로 나선다는 점에 높은 점수를 줘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 현대차가 지난 2015년 진행한 ‘쏘나타 정면 충돌’ 실험 장면. 현대차는 내수 차별에 대한 일각의 논란을 잠재우기 위해 총 100억원의 예산을 들여 자동차 정면 충돌 실험을 진행했다. 이 이벤트 이후 현대차는 고객과 소통에 적극적으로 나서며 신뢰를 회복한 바 있다. / 출처 = 현대자동차

현대·기아차가 국내 시장에서 ‘안티 퇴치’에 힘쓰고 있는 와중에 이 같은 사건이 터졌다는 점은 회사 입장에서 부담이다.

현대차는 지난 2015년 내수용·수출용 쏘나타 두 대를 충돌하는 실험을 공개한 바 있다. 총 100억원의 예산을 투입, 그간 꾸준히 제기돼온 ‘내수 차별 논란’에 정면으로 돌파한 것이다. 제품 품질에 대한 신뢰를 겨우 회복했더니 이번에는 리콜 문제가 발목을 잡고 있는 모양새다. 투명한 정보 공개와 적극적인 소통을 통해 돌파구를 찾을 수밖에 없어 보인다.

이번 리콜은 개선된 엔진생산에 소요되는 기간, 엔진 수급상황 및 리콜준비 기간을 감안해 오는 5월22일부터 진행될 예정이다.

한편 리콜 사실이 전해진 4월7일 현대차 주가는 전일 대비 2.36% 떨어진 14만4500원에 장마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