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안철수 후보가 양자 구도를 전제로, 문재인 후보보다 더 높은 지지율을 나타낸 여론조사 결과가 공개됐다. 여론조사 방법론에 대한 논란은 없지 않지만, 더 높은 지지율이 나왔다는 사실 자체는 나름 의미가 있다. 다른 여론조사에서는, 문재인을 추월하지는 못했지만, 안철수의 지지율이 30%를 넘겼다. 메이저 후보로 인정받기 시작했다는데 대해 안철수 후보와 캠프에 축하를 보낸다.

몇 가지 배경과 함의가 있다. 우선 문재인에 반대하는 다양한 세력들이 움직인 결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연대나 단일화로 가시화되기에는 난관이 많겠지만, 민심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만큼은 부인하기 어렵다. 다음으로 국민의당 경선의 컨벤션 효과가 크게 작용했다. 안철수는 경선에서 80% 이상의 득표율로 압도적 지지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보수 대표 홍준표 후보가 문재인을 집중 공격한 반사 이익을 안철수가 챙긴 측면도 있다. 마지막으로 문재인 캠프와 후보 본인의 실언이나 실착이, 대안으로서 안철수에 대한 지지율을 높였다.

그러나, 안철수는 지금이 위기의 시작이다. 왜냐하면 문재인에 반대하는 세력들은, 문재인 견제라는 목표가 어느 정도 이뤄지는 순간, 안철수 견제를 시작할 것이다. 안철수는 지난 2012년 말 정계 입문 이후 5년도 못되는 기간, 윤여준, 김종인, 최장집, 법륜 등 정치 멘토들을 떠밀어 내보낸 전력이 있다. 반문 세력들은 ‘멘토 배신’의 다섯 번째 피해자가 되기 싫어 반드시 안철수 길들이기에 들어갈 것이다.

국민의당 경선은 사실 철저한 실패작이다. 다만 효과적 PR 덕분에 ‘성공한 경선’으로 알려졌을 뿐이다. 오픈 프라이머리, 당원뿐 아니라 국민개방 경선인데 참여자는 20만 6천명에 불과하다. 안철수의 득표율은 75% 이상으로 매우 높지만 득표수는 13만명에 그쳤다. ‘압승, 득표율 75%’의 이면에는 빈약한 숫자라는 결정적인 취약점이 숨어있다. 국민의당 홈페이지에서는 어느 덧 경선 참여자 수나 득표 수는 실종됐다. 꼼수다!

안철수의 총 득표수는 13만3900표지만 문재인은 7배인 93만6400표다. 득표의 양뿐 아니라, 질을 따져 보자. 안철수는 호남 득표가 5만 9700표로 전체 득표의 44%를 차지한다. 호남보다 인구가 훨씬 많은 충청과 영남에서는 겨우 8900표와 1만5700표에 그쳤다. 인구 2천만명으로 선거 판세에 결정적인 수도권 득표가, 호남 득표보다 1만표나 적다.

그에 반해 문재인은 호남 득표가 14만2300표로 전체 득표수의 15%에 불과하다. 수도권 득표수는 안철수의 12배나 된다. 현재 상태라면 안철수는 전국적으로는 문재인의 상대도 되지 않고, 호남 지지층도 문재인에 비해 매우 엷다.

거기에 보수 후보 홍준표의 무자비한 안철수 공격이 시작될 것이다. 착시 현상이든 뭐든, 안철수의 지지율이 30%대에 진입하고 보수층에 본격 구애하면서, 홍준표는 당면 주적을 문재인에서 안철수로 바꿀 가능성이 높다. 원래 홍준표의 전략은 문재인과의 1 대 1 구도로 몰고 가는 것이다. 친문, 친노를 직접 공격하면서 1 대 1 프레이밍을 시도했고 일정한 성공을 거뒀다.

그러나 당장은 선결 과제가 생겼다. 진보 대 보수의 1 대 1 구도로 몰고 가려면 홍준표 본인이 반문 대표임을 인정받아야 한다. 자칫하면 자신이 흡수 통합당할 수도 있다. 이제 홍준표는 깨달은 듯 싶다. 유승민이 뭐라 하든 상대하지 않는다. 반문의 중심에 서기 위해 당장은 안철수를 타깃으로 삼아야 한다!

2017년 대선, 지금까지 안철수에게는 즐거움만 있었다. 호남의 반문 정서를 자극하는 틈새 시장 공략으로 쏠쏠한 재미를 봤다. 자신은 공격받지 않으면서 남을 공격하는 편안한 캠페인이었다. 마음대로 공격 대상을 바꾸고 발언 내용도 바꿀 수 있었다. 박근혜 탄핵을 주도해 진보의 지지를 얻었지만, 이제 박근혜 사면 논쟁으로 보수의 지지를 노린다.

그러나 세상은 그리 녹록하지 않다. 전략은 특정인의 전유물이 아니며, 한번 재미본 전략으로 영원히 성공할 수는 없다. 안철수가 당내 경선에서 성공한 ‘반문’과 ‘호남 우선’ 전략으로는 본선에서 고전을 면치 못할 것이다. 훨씬 인구가 많은 영남과 충청을 잃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맷집 약한 안철수가 홍준표의 무자비한 공격을 견뎌낼 수 있을까? 정치 멘토를 줄줄이 쫓아낸 안철수가 손학규의 체면을 살려줄 수 있을까? 적당히 문재인을 공격하며 선거전을 즐기던 안철수가 제대로 수비를 해낼 수 있을까? 앞으로 한 주의 관전 포인트는 '안철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