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어가 인격이다> 배상복 지음, 위즈덤하우스 펴냄

이 책을 고른 이유는 세 가지다. 첫째, “3000원이세요” “저희는 딱 좋은 3살 터울 부부입니다” 같은 잘못된 말이 제발 좀 사라졌으면 좋겠다. 둘째, 이 책은 ‘너무’ 재밌다. 언제 웃음이 터져 나올지 몰라 버스나 지하철에서 볼 때는 조심해야 할 정도다. 셋째, 누구든 읽으면 도움이 된다. 특히 가정과 학교, 군대와 직장에서 야단맞으며 언어 예절을 배운 적 없는 이들에겐 필독서다. “능력은 있지만 교양이 없다”거나 “가정교육을 제대로 못 배웠다. 무례하다”는 오명을 벗을 수 있다.

우선, 요즘 대학생들이 자주 저지른다는 맞춤법 실수를 보자. “무리(물의)를 일으켜 죄송합니다”, “어의(어이)가 없네요”, “임신(인신)공격하지 마세요”, “이 정도면 문안(무난)하죠”, “들은 예기(얘기)가 있는데요” 등이다. 환자에게 “빨리 낳으세요(나으세요)”라고 출산독려 문자를 보내는 경우도 잦다고 한다.

신입사원들이 직장 상사에서 흔히 저지르는 잘못으로는 “식사하세요”가 있다. 입에 붙지 않더라도 “진지 드세요”라고 해야 한다. 행사 때 “회장님 말씀이 계시겠습니다” 대신에 “회장님이 말씀하시겠습니다”라고 해야 맞다. 퇴근하면서 윗사람에게 “수고하세요”라고 하면 “힘을 들이고 애 좀 쓰세요”라는 지시어처럼 들린다.

단어의 오용이 가장 심한 것은 한잣말이다. 희귀(稀貴)병은 ‘드물고 귀한’ 병이란 뜻이다. 세상에 그런 병이 있을 리 없다. 희소병 정도로 쓰면 될 일이다. 일본식 표현을 오역한 간(間)절기는 원래대로 환절기로 바로 잡아야 한다. “‘마음적’으로 고생이 많았고 몸적으로 힘들었다”는 연예인은 아마도 “마음 고생이 많았고, 몸이 힘들었다”고 말하려고 했을 것이다. 흔히들 “옥석을 구분해야 한다”는데, 여기서 구분(俱焚)은 ‘함께 불 탄다’는 뜻이다. 정확히 쓰려면 “옥석을 구분해선 안 됩니다”라고 해야 맞다. 신용카드 대금은 결재(決裁)하는 것이 아니라 결제(決濟)를 해야 연체되지 않는다.

‘공항장애(공황장애)’를 앓고 있다는 최순실의 ‘게이트’ 때문에 번갯불에 콩 구워 먹는 듯한 화급한 대선판이 벌어지고 있다. 아무리 정신없더라도 TV대선토론회에 나와 “저는 평화를 지양(止揚, 하지 않고 피함)합니다”라고 열변을 토하는 대선후보가 있다면 경계함이 마땅하다. 그는 무식하거나 전쟁예찬론자일 가능성이 크다. 전쟁을 지양하고 평화를 지향(志向, 어떤 방향으로 나아감)하는 후보를 뽑자.

우리말은 어휘가 다양하고 섬세해 무엇을 강조하느냐에 따라 다르게 표현한다. ‘해의 빛’을 뜻하는 단어도 빛 자체를 표현할 때는 ‘햇빛’, 뜨거운 기운을 말할 때는 ‘햇볕’, 광선을 이야기할 때는 ‘햇살’이다. ‘가능성’은 ‘크다’ ‘작다’와 잘 어울린다. ‘완전 사랑합니다’보다는 ‘정말 사랑합니다’, ‘진짜 사랑합니다’ 등이 어울리는 짝이다.

누군가를 차별하고 냉대하는 의미가 담긴 단어들도 있다. ‘처녀출전’, ‘안사람’, ‘파출부’, ‘미혼’, ‘미망인’ 등 단어는 성차별적이다. ‘서울에 올라간다’, ‘촌스럽다’ 등에는 지방에 대한 하대와 편견이 담겼다. ‘잡상인’, ‘하청업체’ 등은 특정 직업군을 비하한다. 맹인, 소경, 절름발이 등에는 장애를 부족하고 모자란 것으로 취급하는 편견이 실려 있다.

이 책에서 갸우뚱하게 되는 대목도 있다. 국립국어원의 보고서를 인용하여 여성 과학자·여성 산악인·여경·여성 대변인 등 ‘여성’이 들어간 단어들은 여성을 차별하는 용어라고 지적한다. 하지만, 어떤 직업에 특정 성이 유난히 많은 경우 소수의 다른 성을 구분해주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것은 성차별이 아닌 성구분이다. 남녀 표현을 무조건 기피할 경우 산부인과 진료 시 남자 간호사가 들어올지 모르고, 가사도우미가 온다고 하여 무심코 문을 열다가 남자 도우미의 모습에 질겁할 수도 있다.

서평이 독자들에게 ‘일해라 절해라(이래라 저래라)’ 잔소리 하는 것처럼 됐다. 하지만, “맞춤법을 틀리는 이성에게 호감이 떨어진다(여자 78.3%)”는 조사도 있고, “서류전형에서 오타가 발견되면 응시자에 대해 부정적 인상을 갖게 된다(인사담당자의 79%)”고 하니, 연애와 취업을 위해서라도 이번 기회에 맞춤법 공부를 해둬야 한다.

참, 형제 간에나 쓰는 ‘터울’이란 단어를 쓰는 바람에 근친혼처럼 들리지만, 내게 주례를 부탁했던 부부는 중매로 만나 아이 셋 낳고 행복하게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