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서구 문물들을 받아들이기 시작한 1876년 이후 갑오경장을 거친 근대화 시기에는 매우 많은 것들이 변화했다. 특히 한복의 경우, 시대의 변화에 따라 복장 개량이 시작되어 치마저고리와 개량한복 두 가지의 형태가 나타나게 된다. 한복의 변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1910년대에 나타나는 통치마저고리 형태의 한복을 개량한복이라 지칭했다. 이후 전통한복을 현대화하고 일상생활에서도 입을 수 있도록 재해석한 실용적인 옷으로 1984년 생활한복이 만들어졌고, ‘우리 옷 입기 운동’이 시작됐다. 당시 생활한복은 민중운동의 이념적 가치에 비중을 두어 확산됐으며 실제로 대학가 풍물패들이 입던 옷을 기초해 만들어졌다. 이러한 정치적 이념이 생활한복에 묻기 시작하면서 1989년 당시 문교부가 일선 교육청에 ‘전교조 교사 식별법’을 내리면서 ‘생활한복을 입고 풍물패를 조직하는 교사’라는 표현을 사용하기도 한다. 당시 한복은 이러한 이념적 색채를 가지고 여러 용어로 나타났는데, 개량한복, 생활복, 우리옷, 겨레 옷 등의 표현이다. 또한 평상복, 현대한복, 실용한복, 변형한복이라고도 표현했다.

최근 3년 새 한복을 이르는 표현은 새롭게 생겨났다. 바로 ‘신한복’이라는 표현이다. 이는 1980년대 생활한복이 일상적 한복 입기 운동으로 모습을 드러냈던 것처럼, ‘전통한복의 재해석’이라는 같은 관점에서 출발했다. 2014년 문화체육관광부에서 한복진흥사업을 주관, 추진해온 (재)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의 부설기관으로 한복진흥센터가 새로이 출범했다. ‘입어야 하는 우리 옷’, ‘입고 싶은 우리 옷’, ‘세계가 입는 옷’이라는 비전으로 한복진흥센터가 역점을 두고 있는 부분은 일상생활에서도 입을 수 있는 한복이었다. 더 정확히 표현하면 한복의 모티브를 두고, 현대적으로 디자인한 일상복을 ‘신한복’이라고 명명했다.

이 ‘신한복’은 역시 명확한 기준 없이 디자이너의 재량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나타났다. 한복의 원단과 전통적 기법에서 원단이나 형태만 조금 달리한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전통적인 남녀의상이 새롭게 제시된 옷, 전혀 한복 같아 보이지 않은 옷 등 참신한 시도가 이어졌다. 그러나 이로 인해 또 다시 새로운 한복을 지칭하는 명칭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생활한복이나 개량한복이라는 용어를 그대로 사용하는 업체들이 있는가 하면 패션한복, 실용한복, 생활 속 한복, 모던한복, 2014년 한복 등으로 각기 다르게 표현하기 시작했다.

가끔 한복계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면 무엇이 ‘신’한복이고 ‘구’한복인지 구분하기 어렵다는 의견을 내놓는다. 최근 만들어지는 신한복이 아니면 다 오래되고 낡은 구한복이라는 것인지와 같은 용어적 혼란스러움을 토로하기도 한다. 온고지신의 입장에서 새로움과 나아감과 같은 진취적 표현을 위해서는 나쁘지 않지만, 반대 위치에 있는 또 다른 한복들은 그에 밀려 좋지 않은 이미지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이 공통된 우려들이었다. 이렇다 보니 전통한복은 어디까지가 전통이고 전통이 아닌지에 대해서 한복계 사람들뿐 아니라 한복을 입고 즐기는 일반인들도 혼란에 빠졌다. 또한 한복을 ‘민족 고유의 조선 옷’으로 분류한 백과사전이 있는가 하면 치마저고리와 같이 한복의 종류를 몇 가지 제시한 경우도 있다. 외국인들에게 한복을 소개할 때도 마찬가지다. 전통한복과 생활한복이라는 임의의 기준을 세워 나름대로 애써 설명해보지만 아무리 찾아도 명확한 한복 명칭의 기준은 찾아보기 힘들다.

한복을 생활 속에서 보다 가까이 접하고자 시작한 한복 입기 운동은 수십 년을 거슬러 현재 우리 곁에 다행히 ‘아직’ 남아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것이 한복인지 아닌지, 어떤 경계로 나누어 볼 것인지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한다. 이는 진짜 한복의 범주로서 봐야 하는 경계가 모호해, 본래 가지는 전통적 정체성이 흐려지고 있는 것이다. 이미 이렇게 흘러가고 있는 이상 명확한 기준을 세워 구분하는 것이 어렵다면 전통한복이 가지는 요소별 특징을 기초로, 변화하고 있는 특성을 구별하고 범주화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그것이 신한복이든 패션한복이든, ‘전통한복’을 모티브로 다양한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복의 일상화, 대중화도 좋지만 우리가 가지고 있는 본래 가치를 되새겨 용어를 확립하는 것은 무엇보다 시급한 문제다. 아쉽게도 이러한 명칭에 대한 논란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