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홍조 마리몬드 대표(사진=이코노믹리뷰 노연주 기자)

봄비 내리는 3월, 서울시 성동구 성수동에서 윤홍조 마리몬드 대표를 만났다. 마리몬드는 스마트폰 케이스, 의류, 잡화, 팬시 등을 제조·판매한다. 우산을 접고 약속장소인 마리몬드 라운지에 들어섰다. 마리몬드 라운지는 마리몬드의 직영 판매점이다. 손님 4~5명이 매장을 둘러보고 있었다.

제품마다 자리 잡고 있는 수많은 플라워 패턴이 우중충한 바깥 날씨와 대조를 이뤘다. 매장 안에서는 커피, 꽃차 등 가벼운 음료도 판매하고 있었다. 팬시점·의류매장과 찻집 중간 정도의 모습이랄까. 마리몬드가 특별한 이유는 외형만이 아니다. 이들은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을 위해 영업이익의 절반 이상을 기부한다. 마리몬드 고유의 플라워 패턴은 위안부 할머니들에게서 영감을 얻어 제작됐다. 위안부 할머니에 의한, 위안부 할머니를 위한 브랜드인 셈이다.

윤 대표가 먼저 와 있었다. 커다란 꽃무늬가 돋보이는 티를 입고 있었다. 마리몬드 제품이다. 그는 위안부 할머니들을 ‘피해자’로만 바라보는 시선에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는가.

군대를 제대했을 때 이야기다. 누구나 열심히 하려고 하는 시기 아닌가. 나 역시 이런 저런 것들을 살펴봤다. 학회나 고시에는 관심이 가지 않았다. 그러다 찾은 단체가 ‘인액터스’였다. 인액터스는 대학생들이 비즈니스 프로젝트를 통해 지역 사회문제를 해결한다. 기업으로부터 펀딩(투자)을 받거나 교수들이 멘토링을 해주는 프로그램이었다.

인액터스 활동 일환으로 비영리단체인 ‘나눔의 집’과 함께 위안부 할머니를 위한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됐다. 그 과정에서 할머니들을 만나 뵙고,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도 처음 방문했다. 직접 경험해보니 역사책에서 읽었던 3~4줄 문장으로는 이해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간 이 문제를 왜 방치했을까’ ‘우리 친할머니, 외할머니 같은 분들을 왜 피해자로만 봤을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이후 위안부 할머니들을 위한 활동을 확대했지만 부채의식은 축적되고, 늘어났다. 본격적으로 해봐야겠다는 생각에 학교를 마치고 창업에 도전하게 됐다.

마리몬드 하면 플라워 패턴을 빼놓을 수 없다. 위안부 할머니들이 만든 작품에서 착안했다고 들었다.

심달연 할머니와 김순악 할머니의 작품에서 시작됐다. 지금은 두 분 모두 돌아가셨다. 당시 심리치료의 일환으로 말린 꽃을 눌러서 작품을 만들었다. 압화라고 부른다. 처음 작품을 봤을 때는 너무 예뻐서 놀랐다. 인사동 거리 갤러리에 전시된 예술작품과 견줘도 손색이 없었다. 이런 예쁜 작품을 (더 많은) 사람들이 알 수 있게 하려면 일상 소품에 녹여내야 했다. 압화 작품을 (디자인) 패턴으로 변형하는 작업에 돌입한 이유다.

그러다 보니 예상치 못한 문제에 직면했다. 작품을 만드는 할머니 사연만 소개하게 되더라. 더 많은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싶었다. 더 많은 사람들이 할머니들을 기억해주길 바랐다. 브랜드 네이밍과 리뉴얼 과정에서 다양한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다. 그러던 중 할머니마다 고유한 꽃을 부여해서 소개해주면 할머니들에 대한 편견도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피해자로만 기억되지 않고 그 인생을 살아낸 존경스러운 모습들을 (사람들이) 기억해주지 않을까라는 기대감에 플라워 패턴을 유지하게 됐다. 더불어 소비자들이 선호하는 디자인인 만큼 일상에서도 무리 없이 사용할 수 있다.

▲ 윤홍조 마리몬드 대표(사진=이코노믹리뷰 노연주 기자)

위안부 할머니로부터 플라워 패턴 콘셉트를 착안하는 만큼 일반 디자인 회사와 작업방식이 다를 것 같다.

매 시즌마다 할머니를 선정한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 같은 비정부기구(NGO)로부터 모을 수 있는 정보를 수집한다. TF(테스크포스)를 꾸려서 그 할머니만의 이야기를 공부하는 시간을 1개월 정도 갖는다. 거기서 도출된 키워드와 가장 어울리는 꽃을 찾아내는 작업이 진행된다. 그 이후는 다른 디자인 회사들처럼 그래픽 작업에 들어간다.

스토리텔링을 할 수 있는 에디터, NGO와 소통하는 커뮤니케이터 등도 디자인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2012년 이후 매출과 영업이익이 급성장하고 있다. 처음부터 탄탄대로를 달렸나.

어려운 과정은 항상 있었다. 처음 시작한 미션으로 유지하면서 버티다 보면 다양한 사건들이 벌어진다.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그런 사건들이 도약의 발판이 됐다. 예를 들어 수지 씨가 스마트폰 케이스를 공항패션으로 활용했을 때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그 사건을 계기로 물류시스템이 잡히고 매출이 올랐다. 고객들과 소통하는 창구도 그때부터 강화했다. 반면 나의 실수를 통해 내부 시스템을 재조정하는 일도 많았다. 운 좋게 좋은 투자자를 만났고, 할머니들과 소통을 이어가고, 잘못된 점을 발견하면 고쳐나가는 과정을 통해 마리몬드는 성장해왔다.

마리몬드는 유명인사들을 통해 유명세를 타게 됐다. 의도된 마케팅이었나.

수지 씨는 본인이 직접 (마리몬드) 제품을 구매한 걸로 알고 있다. 우리가 보상을 제공하거나 제안을 한 적은 없다. 박보검 씨도 마찬가지다. 물론 향후에 관계자와 연락이 닿으면 감사 인사를 전달하고는 있다. 본인들이 직접 구매했거나, 팬들로부터 선물을 받았기 때문에 파열음 없이 입소문을 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간 유명인들과 그들을 닮고 싶어 하는 고객들조차 선호하는 소품은 고가의 명품이었다. 그런 소비를 통해 외모나 경제력이 뛰어난 사람임을 드러냈다. 이런 (물질적인) 면 외에 사람들은 ‘내가 꽤 괜찮은 사람’ ‘사회문제에 관심 있다’는 사실을 대외적으로 알리고 싶어 한다. 이 같은 성향의 소비자들과 유명인사들이 마리몬드에 관심을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