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야기는 소통의 수단이자, 정보의 공유이며 혹은 즐거움의 요소다. 출처= 픽사베이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을 다른 이들과 이야기하면서 공유하고자 한다. 미국의 영문학자 존 닐(John Niels)은 글을 통해 “인간은 이야기를 통해 사회를 이해하는 존재인 호모나랜스(Homo-Narrans)”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그만큼 이야기는 인간의 삶과 밀접한 존재이며, 이제는 소위 ‘콘텐츠’라고 불리는 결과물의 원천이 되면서 경제적 가치를 다시 평가받고 있다. 그러면서 ‘이야기’라는 용어는 전문가들 사이에서 엄연한 산업으로 여겨지거나 법적인 개념으로  정리되는 움직임이 진행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이야기 산업’은 과연 어떤 가치와 방향성을 가지고 있으며 그로 인해 기대되는 경제적 효과는 무엇일까?

이야기 산업의 범위와 구분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은 콘텐츠진흥원에 제출한 ‘이야기산업 활성화를 위한 법제도 연구’ 보고서를 통해 이야기 산업은 원천소재의 조사·발굴, 이야기의 창작·기획·개발·유통·소비 및 관련된 서비스 등을 제공하는 산업과 그 밖에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산업으로 정의할 것을 제안했다. 아울러 본 연구에서는 이야기 산업을 활용 대상에 따라 기초/콘텐츠/일반 등 3가지로 구분했다. 

▲ 이야기 산업의 범위. 출처=한국콘텐츠진흥원

기초 이야기산업은 ‘이야기 기획, 개발 및 창작’, ‘이야기 유통과 거래’ 등의 영역을 포함하며 이야기 그 자체가 하나의 독자적인 상품으로 유통 및 소비되는 것을 말한다. 여기에 속하는 것은 이야기 자체, 출판원고·만화원고·시나리오·희곡·극본 등이며 생산의 주체는 작가, 출판전문가 및 이야기 에이전트 등이다. 

콘텐츠 이야기산업은 콘텐츠와의 연계로 산업화되는 분야를 말하며 이야기가 콘텐츠에서 차지하는 비중에 따라 핵심 콘텐츠 이야기산업, 활용 콘텐츠 이야기산업으로 구분한다. 소재로서 사용되는 이야기는 콘텐츠로 구현되고 유통되는 동시에 의도에 따라 얼마든지 수정과 변형이 가능하다.

일반 이야기산업은 콘텐츠를 제외한 산업분야에서 이야기가 상품과 서비스의 기획 및 마케팅에 활용되는 분야다. 역시 활용되는 이야기가 차지하는 비중에 따라 핵심 일반 이야기산업과 활용 일반 이야기산업 등으로 구분한다.

경제규모 12조원, 고용유발효과 14만1072명

이야기 산업은 어느 정도의 경제적 가치를 포함하고 있을까? 문화관광연구원은 국내의 산업별·사업체 규모별 419개 기업체 표본을 대상으로 조사를 실시해 이야기의 비중을 파악하고 가치를 도출했다. 그 결과 기초·콘텐츠·일반 이야기산업의 범위에 따른 추정 결과 이야기산업의 규모는 약 12조5560억 원 규모로 산출됐다.  

▲ 출처= 한국콘텐츠진흥원

각 유형별로 구분 하면, 기초 이야기산업의 규모는 약 1조8047억원(이야기산업 종사자 수 7만7889명× 평균 소득 2317만원), 콘텐츠 이야기산업의 규모는 6조2893억원(콘텐츠 당기 총 제조비용× 이야기 비용 비중 + 광고선전비 × 이야기 비용 비중), 일반 이야기산업의 규모는 4조4620억원(경상연구개발비 × 이야기 비용 비중 + 광고 선전비 ×이야기 비용 비중)으로 나타났다.

일련의 경제규모와 각 산업군의 연관을 고려한 유발 계수를 분석한 결과, 이야기산업의 생산유발 효과는 24조3400억원, 부가가치유발효과 9조5900억원, 취업유발효과는 18만7516명, 고용유발효과는 14만1072명을 창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성공적 적용 사례, 제이에스티나·IBM·이천쌀  

이야기는 영상이나 활자 콘텐츠의 스토리로 활용되는 것 말고도 수많은 적용이 가능하다. 기업의 제품 마케팅 전략, 혹은 대외 커뮤니케이션으로 활용되는 사례들은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상품 기획과정에 이야기가 활용된 대표적인 사례로는 시계브랜드 로만손의 제이에스티나(J.ESTINA)가 있다. 

▲ 제이에스티나의 조반나 공주 브랜드 스토리. 출처= 제이에스티나

제이에스티나가 로만손의 대표 브랜드로 성공한 것에는 런칭을 위한 상품 기획단계에서부터  활용한 이야기가 큰 역할을 했다. 제이에스티나 브랜드명은 이탈리아 공주 조반나(Jovanna)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그녀는 이탈리아 사보이 왕가의 셋째 공주로 태어나 불가리아 왕비가 된 실존인물이다. 로만손은 조반나처럼 특별한 존재가 되고 싶어하는 현대 여성들의 꿈 실현을 브랜드 전략으로 세우고 제이에스티나의 모든 제품 기획 과정에 조반나 공주의 이야기를 활용했다.

▲ IBM의 사내 커뮤니케이션용 삽화 ‘How it Works(왼쪽)’, ‘Napkin Stories(오른쪽)’. 출처= 한국콘텐츠진흥원

이야기는 기업 내 커뮤니케이션을 원활하게 하는 수단으로도 활용됐다. 미국의 전자업체 IBM은 조직원들의 아이디어를 수집하고 이를 회사 전략으로 실현한 사례를 직원들에게 다시 배포하는 전 과정에 이야기를 활용했다. ‘하우 잇 웍스(How it Works)’는 IBM이 직원들에게 전달하려는 메시지를 만든 시리즈물 삽화다. 아울러 IBM은 짧은 이야기가 있는 만화 ‘냅킨 스토리즈(Napkin Stories)’를 통해 자사의 기술과 프로그램을 내부 직원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 임금님표 이천쌀 브랜드 스토리. 출처= 임금님표 이천 브랜드관리본부

국내의 적용 사례로는 경기도 이천시 쌀 브랜드 ‘임금님표 이천쌀’이 있다. 브랜딩의 출발점은 조선 성종 때 지은 <동국여지승람>이었다. 서적에서 이천은 ‘땅이 넓고 기름진 곳으로 백성들이 부유하고 밥맛 좋은 쌀을 생산해 임금님께 진상하는 쌀의 명산지’로 기록돼있다. 이에 착안한 이천시는 임금님표 이천쌀을 만들었다. 여기에 이천시는 이천지역 전래민요, 국학연구 결과, 농업기술서 등 이천지역에서 생산하는 쌀이 우수함을 알 수 있는 역사적 이야기들을 활용해 브랜드의 기반을 만들었다.

이외에도 스포츠 선수들이 프로가 되기 위한 자신즐의 노력에 대해 이야기를 광고로 활용한 독일 스포츠 브랜드 아디다스(ADIDAS)의 ‘Impossible is Nothing’, 대한항공의 각 취항 노선들을 이야기를 통해 소개한 ‘도시이야기’ 등 다양한 이야기의 적용 사례들이 있다.    

가치는 충분, 산업에 대한 인식은 아직...

콘텐츠 산업이 미래 산업으로서 가치가 있다는 다양한 검증들이 나옴에 따라 이는 자연스럽게 이야기 산업에 대한 관심으로도 이어졌다. 그러나 당장의 경제적 효과나 가시적 성과가 도출되는 콘텐츠 제작물과 달리, 그 가치를 쉽게 측정하기 어려운 이야기의 특성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는 산업화에 대한 인식이 일반화되지는 않고 있다.      

콘텐츠진흥원 관계자는 “이야기는 창의성의 산물로 활용과 가치창출의 가능성이 무한에 가까운 대표적 무형 자원”이라며 “현대 사회의 경쟁력 있는 상품과 서비스의 대부분은 이야기의 힘을 통해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있다”고 말했다. 
  
문화관광연구원 이용관 연구위원은 “가치 측정의 어려움, 창작과 유통을 저해하는 요소 및 이해도의 부족으로 등으로 이야기 산업에 대한 우리나라의 인식은 상당히 낮은 수준”이라며 “경쟁력 있는 이야기산업 생태계를 조성을 위해서는 정부의 체계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