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가 50달러대를 회복했음에도 주요 산유국들이 재정적자를 면치 못해 채무불이행 위기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이에 향후 유가의 향방에 산유국들과 투자자들의 관심이 모이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산유국들은 저유가가 이어지며 무역수지에 큰 타격을 입었고, 아직까지도 국제유가가 반등하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대규모 국채발행에 의존하고 있다. 지난해 사우디아라비아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부채비율은 13%이며 특히 부채는 2014년 보다 619% 급증했다. 작년 사우디의 국가부채는 3160억 리얄(약 843억달러)였으며 GDP는 6378억달러였다.

자료=Ministry of Finance, Saudi Arabia. (단위: SAR billion)

카르멘 라인하트(Carmen Reinhart) 하버드대 교수는 지난달 말 프로젝트신디케이트지에 기고한 글에서 "18개 주요 산유국의 무역수지와 재정상태는 이들 나라가 겪는 경제적 고통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며 "국제유가 급등 전인 2011년 무역흑자와 재정흑자 등 막대한 흑자를 기록하던 산유국들은 지난해부터 180도 뒤바뀐 상전벽해를 겪고 있다"고 분석했다.

출처=TRADING ECONOMICS (단위: SAR billion)

한편 국제금융시장은 대규모 적자를 겪고 있는 산유국들의 국채발행을 두 팔 벌려 환영하고 있다. 저금리 기조에서 산유국들이 상대적으로 높은 국채금리를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이같은 상황에서 산유국들이 국채발행을 늘리고 국제유가가 회복되지 않는다면 대규모 채무불이행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는 가능성도 제기하고 있다.

산유국 입장에서 그나마 다행인 것은 최근 들어 글로벌 원유 공급과잉이 해소될 조짐이 보이고 있고 석유 수요도 살아나고 있다는 점이다.

◇산유국 한 숨 돌리나? 미국 재고 증가세 감소, 감산합의 연장 기대감↑

3월 초 WTI 국제유가가 배럴당 50달러를 하회한 이유는 미국 원유 재고가 예상보다 빠른 속도로 늘어나면서 감산 효과에 대한 우려가 높아졌고, 사우디가 감산 합의 연장에 대해 애매모호한 입장을 표명하면서 감산 합의 연장에 대한 기대감이 낮아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가를 둘러싼 상황들이 단기에 긍정적으로 바뀌면서 유가는 다시 배럴당 50달러를 회복했다.

먼저 리비아의 공급 차질이 발생한 이후 발표된 미국 원유 재고는 전주 대비 87만 배럴 증가하면서 시장의 전망치였던 140만 배럴 증가보다 작은 상승폭을 기록했다. 이처럼 미국 원유재고 증가세가 감소한 이유는 최근 들어서 미국 정제시설들의 가동률이 상승세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연 초 가파른 상승세를 보였던 미국 원유 재고의 증가세가 둔화되면서 공급 과잉에 대한 우려가 일부 해소됐다.

<미국 정제시설 가동률 추이>

자료: EIA, 한국투자증권

감산 합의 이행 및 연장에 대한 기대감도 높아지고 있다. 최근 알렉산더 노박 러시아 석유 장관은 현재까지 20만배럴를 감산했으며 추가적으로 10만배럴을 감산해 감산 목표인 30만배럴을 달성할 것이라고 공언했다.

OPEC내 산유량 3위 국가인 아랍에미리트연합(U.A.E.)는 현재 감산 이행률이 76% 수준에 불과하지만 5월까지 20만배럴을 감산할 것이라는 목표를 발표했다. 비잔 잔가네 이란 석유장관은 감산 합의 연장을 위한 논의의 시간이 필요하다면서도 감산 연장 합의가 성사될 가능성에 무게를 둔다고 밝혔으며 쿠웨이트 석유장관 또한 하반기에 생산량을 줄이자는 논의를 다른 나라들과 함께 지지한다고 언급했다.

<주요 산유국 인사들 감산 합의 연장 관련 발언>

자료: 각종 언론, 한국투자증권

또한 유럽과 일본 등의 석유재고가 상대적으로 낮다는 점, 북미 소비자들이 SUV와 트럭 등 대형자동차에 대한 구매를 늘리고 있다는 점 등이 유가회복의 긍정적 요인으로 꼽히고 있다.

◇유가 향방 결정 요인, 美원유 재고‧OPEC감산합의 연장‧셰일오일 증산 추세

향후 유가의 향방은 ▲미국 원유 재고 증가세, ▲감산 합의 연장 여부, ▲미국 셰일오일 산유량 증가세가 될 가능성이 높다. 일단 미국 원유 재고는 최근 들어서 OPEC과 비OPEC 감산 효과의 바로미터로 작용하고 있다. 정유시설의 정기보수가 종료되고 가동률이 높아지면서 미국 원유 재고의 증가세는 갈수록 둔화될 전망이다.

게다가 정제시설들의 정기보수로 인해 미국 원유 재고가 급증하면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던 시기에 휘발유와 증류유 재고는 오히려 꾸준히 감소세를 보였다. 이처럼 수요가 견고한 가운데 드라이빙 시즌에 접어들면서 정제시설들의 가동률이 높아질 경우 미국 원유재고는 과거와 같이 완만한 하락세를 보일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

<미국 휘발유 재고 추이>

자료: EIA, 한국투자증권

감산 합의 연장 여부 또한 유가에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초만 하더라도 미국 셰일오일 업체들의 무임승차에 대해 경고했던 사우디는 여전히 감산 합의 이행과 유가 부양에 대한 의지를 드러냈다. 게다가 지난달 20일에는 사우디 석유장관이 다시 한 번 감산 합의 연장에 대한 의지를 드러냈으며 다른 OPEC 회원국들 역시 감산 합의 연장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아직 공급 과잉에 대한 우려가 완전히 불식되지 않은 상황에서 감산합의 연장 실패는 곧 유가 급락을 의미하는 만큼 사우디를 비롯한 감산 참여국들이 이와 같은 선택을 할 가능성은 낮을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다만 최근 미국 원유채굴장비(rig)수는 3주 연속 두 자릿수 증가세를 보이면서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셰일오일 업체들의 생산량 증가세가 더욱 가팔라 질 것인지 여부에 대해서는 시간을 두고 관찰할 필요가 있지만 단기적으로 rig수의 증가세는 유가에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미국 셰일오일 생산량 추이>

자료: EIA, 한국투자증권

한국투자증권 서태종 연구원은 “4월에는 ▲미국 원유 재고가 4월 중순부터 감소세를 보일지 여부, ▲4월 중에 열릴 OPEC 공동감시위원회에서 OPEC 감산 합의 연장에 대해 산유국들이 긍정적인 입장을 피력할 것인지 여부, ▲4월 17일에 발표되는 미국 셰일오일 생산량의 증가세가 가팔라졌는지 여부에 따라 향후 유가의 향방이 결정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상반기 유가 관련 주요 이벤트>

자료: 한국투자증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