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HGI

“임팩트투자 전문가로서 시작은 자연스러웠다. 대학 시절 사회적 기업가들을 접하면서 그들을 돕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효율적인 방법을 찾다 임팩트투자에 다다르게 됐다.”

정경선 대표가 설립한 에이치지아이(HGI, Holistic Growth Initiative)는 임팩트 투자 전문기관 중 한 곳이다. 지난 2014년 4월 문을 연 후 닥터키친, 트리플래닛, 두손컴퍼니, 마리몬드, 째깍악어 등 소셜벤처 10개 사에 투자했다. 그는 헤이그라운드를 운영하는 비영리단체 ‘루트임팩트’도 이끌고 있다. 현대가 3세라는 타이틀 덕분에 성수동은 물론 재계의 이목까지 끌고 있다. 서울시 성동구 성수동 한 커피가게에서 그를 만나봤다.

 

“재벌에 대한 선입견 자연스러운 일”

정 대표가 본격적으로 사회적 기업가들과 인연을 맺기 시작한 것은 대학 시절부터다. 그는 “당시 동아리를 만들고 사회적 기업가들의 강연을 기획했다”며 “강연자 중 한 명이 내게 책 한 권을 추천해줬다. 사회적 기업 이야기를 다룬 <보노보 혁명>이었다. 책을 읽으며 지속가능하고 혁신적인 방법으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사람들을 동경하게 됐다. 그들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는 지난 2012년 루트임팩트를 시작한 배경이기도 하다.

루트임팩트는 사회혁신가(체인지메이커)를 발굴하고 지원하는 비영리기관이다. 이후 효율적인 지원방안을 찾다 보니 임팩트 투자에 다다르게 됐다. 정 대표는 “루트임팩트를 운영하면서 잠재력 있는 사회적 기업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됐다”며 “기업이니 만큼 투자라는 지원방법으로 (사회적 기업을) 빠르게 성장시킬 수 있다고 판단했다”고 HGI 설립 과정을 설명했다. 그가 보유한 경제력이라는 가용자원을 활용하기로 한 것.

집안에 대한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었다. 그는 정몽윤 현대해상화재보험 회장의 외아들이자 고 정주영 회장의 손자다. ‘현대가의 이미지 쇄신을 위한 전략’ ‘재벌 3세의 유희’ 같은 정 대표를 향하는 부정적인 시각도 있다. 그는 “그런 선입견은 자연스러운 일로, 나라도 그럴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경제적 자원(돈)은 가치중립적이다. 그만큼 어떤 식으로 활용하느냐가 중요하다. 진정성 있는 행보를 이어가면 편견은 자연스럽게 사라질 것”이라고 밝혔다.

임팩트투자는 재무적 가치와 사회적 가치를 동시에 추구한다. 사회적 파급력을 평가해 투자처를 고르기는 쉽지 않다. 재무적 가치의 경우 경제·경영적 수치들을 따져보면 투자자 입장에서 객관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다. 사회적 가치는 다르다. 투자처가 내세운 성과는 기준에 따라 유의미할 수도, 유의미하지 않을 수도 있다. 이에 대해 정 대표는 “HGI는 다양성, 포용성, 웰빙 등 3대 핵심가치에 무게중심을 두고 투자처를 선정한다”며 “△다양성. 하나의 답안만이 정답을 인정받는 사회를 지양한다. △포용성. 소외된 이웃과 취약계층에 관심을 두고 이들에게 보다 많은 기회를 제공한다. △웰빙. 육체적, 정신적으로 건강한 삶을 위해 필요한 제품과 서비스를 생산하는 기업에 관심을 둔다”고 답했다.

정 대표는 “핵심가치를 기반으로 회사(투자처)별로 추구하는 미션에 대한 결과물을 살핀다”며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를 지원하는 마리몬드는 얼마나 많은 금액을 기부했는지, 노숙인 고용에 초점을 맞춘 두손컴퍼니는 몇 명에게 일자리를 제공했는지 등을 확인한다”고 설명했다.

▲ 출처=HGI

특별히 기억에 남는 투자처에 대해 묻자 그는 난감한 표정을 보였다. “모든 투자처가 각각의 의미를 갖고 있다. 굳이 꼽으라면 최근에 투자했던 째깍악어가 떠오른다”고 말했다. 째깍악어는 대학생인 돌봄 교사와 어린 자녀를 둔 소비자를 연결해주는 모바일 플랫폼을 운영한다. 그는 “이 업체는 휴학생을 중심으로 교사를 채용한다. (비즈니스) 아이템만 두고 봤을 때는 특별함을 느끼기 어려울 수도 있다”면서도 “고용된 교사들에게 제공되는 혜택이 인상적이었다. 취업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멘토링과 진로상담을 진행하고 있다. 아이뿐 아니라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는 교사들도 성장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최근 이탈리아에서는 ‘육아휴직은 곧 커리어 공백’이라는 관념을 전환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며 “리더십에서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공감능력이나 커뮤니케이션 스킬을 향상시킬 수 있는 만큼 ‘육아연수’로 접근해야 된다는 주장들이 나오고 있다. 육아에 대한 기존 패러다임을 바꾸려 째깍악어의 노력을 높이 평가했다”고 설명했다.

 

HGI 평균 투자금액 2억3000만원

HGI가 그간 투자한 금액은 투자처마다 평균 2억3000만원에 달한다. 적게는 5000만원에서 많게는 7억원까지 투자했다. 초기에는 정 대표의 개인자본을 조달했다. 최근에는 외부 투자자 비중 확대에 공을 들이고 있다. 투자성과를 묻는 질문에는 “투자처들의 급격한 성장세에 만족”하고 있다고 답했다. 재무적 가치와 사회적 가치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는 까닭에 투자처들이 본궤도에 오르기까지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부연이다. “HGI는 홀딩스 모델을 추구하고 있다. 우량기업으로 성장한 투자처들과 시너지를 통해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낼 계획”이라며 “사회문제에서 니즈를 발견하고 수익사업으로만 접근하는 사회적 기업도 있다. 이 같은 기업에는 투자를 지양한다”고 말했다. 이어 “당장 수익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믿을 수 있는 파트너사를 찾고 있다”며 “파트너사가 성장할 때까지 인내심을 갖고 기다리는 것도 HGI가 해야 할 일 중 하나”라고 덧붙였다.

수년 사이 성수동은 사회적 기업들의 둥지가 됐다. 비슷한 성향의 사람들이 모여들면서 다른 지역에서는 찾기 어려운 이색적인 음식점이나 매장들도 늘게 됐다. 동네가 입소문을 타면서 일반 소비자들도 찾아오고 있다. 과거 마포구 홍익대학교 일대처럼 말이다. 소위 땅값이 높아지면서 홍대 문화를 만들었던 예술가와 음악가들은 현재 외곽으로 밀려난 상황이다. 정작 알맹이는 빠져버린 채 외형만 존재하고 있는 꼴이 된 것. 성수동도 이 같은 문제에 자유로울 수는 없다. 정 대표가 헤이그라운드 운영을 결정하게 된 이유기도 하다. 헤이그라운드는 약 6000㎡(1800평) 지하 2층, 지상 8층 규모다. 2~5층은 성장기 기업 대상 사무실이다. 6~8층은 개인이나 소규모 그룹 대상 오픈형 협업 공간이다.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 기업들인 만큼 거대 자본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며 “헤이그라운드는 사회적 기업들이 (경제력을 확보할 수 있을 때까지) 버틸 수 있는 공간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 대표는 HGI의 내실을 다진 후 해외로 눈을 돌릴 계획이다. 그는 “우선 HGI 안정화에 무게 중심을 둘 예정”이라며 “‘그간 우리가 해온 방법이 소셜벤처를 돕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인가’를 테스트하는 작업이 향후 2~3년간 이뤄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국내 소셜벤처 모델 중 해외시장에서도 경쟁력 있어 보이는 게 있다”며 “국내 소셜벤처의 해외 진출을 적극적으로 준비하고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