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무자가 갚지 못한 채 5년을 넘겨 시효가 끝난 채권 4400억원 어치를 신한은행이 소각키로 했다. 국내 시중은행권에서 일반 개인채무자들의 시효완성채권을 소각해주는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다른 시중은행들이 동참할 지 주목된다.

이같은 결정에 대해 가계부채 대책에 대해 연구를 꾸준히 해온 제윤경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즉각 환영의사를 표시하는 등 정치권에서도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시효가 완성된 채권이란 연체된 대출금, 카드채권에 대해 은행이 일정기간 법적 회수조치를 하지 않아 권리가 없어진 채권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이런 채권은 지급명령및 압류, 가압류 소송없이 5년이 넘으면 시효는 소멸하고, 소송을 한 적이 있어도 채무상환이  이뤄지지 않은 채 10년이 넘으면 시효는 소멸한다.

이런 시효가 완성된 채권은 오랫동안 추심을 해도 회수되지 않는 채권이다. 시중은행은 그동안 이런 채권을 대부업체에 매각해왔다. 

이를 매입한 대부업체는 추심을 다시 강하게 진행하고, 이마저 여의치 않으면 또다른 추심업체에 매각한다. 이 때문에 장기 연체 채무자들은 자신의 채무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상황이 온다.

일부 시민단체는 이러한 채권을 매입하기도 한다. 시민단체 주빌리은행 백미옥 사무국장은 “시효가 완성된 채권들이 대부업체 사이에서 유통되면 주빌리은행은 이들 채권을 싼 값으로 매입해서 소각한다”며“일부 저축은행이 시효완성된 채권을 주빌리은행에 기부하면 이를 주빌리은행에서 자체적으로 소각한다”고 설명했다. 시민단체가 시효완성 된 채권을 매입해서 소각하는 것은 채무자를 구제해 정상적인 경제적 시민으로 복귀하도록 유도하고있다. 

은행이 시효 완성된 채권을 매각하지 않고 자체적으로 보유하기도 하는데,   추심을 위탁하는 방법으로 채권 회수를 진행하다가 시효가 완성되면 전산관리 기록대상으로 두게 된다.  이 때 채무자는 특수기록자로 신용정보기록에 등재된다.

신한은행의 이번 조치는 시중 제도권 은행중 시효가 완성된 채권을 유통시키지 않고 자율적으로 소각한 첫 번째 사례라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시효완성된 채권의 채무자는 일정부분 경제생활이 가능하더라도 특수기록자로 등재되어 금융거래가 되지 않는다. 채권을 보유하고 있는 은행은 이미 시효가 완성돼 법률비용이 지출되지는 않지만 불건전여신관리를 위한 보존비용을 감당하게 된다는 것이 금융전문가의 설명이다.

이런 점에서 은행이 장기채권을 보유하는 것은 채권자, 채무자 모두 효율적이지 않다. 비효율적이지만 은행들은 신한은행의 이번 조치와 같이 전향적인 결정을 미루어왔다. `채무를 갚지 않아도 된다`는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가 조장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업계 1위 신한은행이 시효완성된 채권에 대해 소각을 단행한다면 다른 금융기관도 정책적으로 불가능하지 않다고 보는 것이 시민단체 관계자들의 의견이다.

한편, 신한은행의 이번 감면으로 혜택을 보는 채무자는 개인사업자를 포함해 1만9424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이번에 소각하는 채권 중에는 1998년도부터 은행이 보유해 온 채권도 있다"고 말했다. 또다른 관계자는 "이번 결정은 무익한 채권을 포기한다는 의미보다는 시효완성 채권의 채무자에 대해 신용제재를 해제함으로써 금융거래가 가능하도록 한 점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로 인해 신한은행이 사회취약계층과 금융소비자 보호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신한은행은 사회적 배려가 필요한 기초생활 수급권자, 장애인, 고령자등 회수가능성 없는 채권도 일괄 감면하기로 했다. 감면 대상 채권은 전체 소각 채권 규모인 4400억원안에 포함되어 있다.

신한은행은 2주동안 등록 기간을 두고 감면에 관한 채무자 등록절차를 밟고, 그 다음 해당 채무자들에 대해 계좌지급정지, 연체정보 등을 해제하거나 삭제해 정상적인 거래가 가능하도록 할 방참이다. 또 법적절차도 중단한다.

다만 다중채무자인 경우 신한은행의 채권이 소멸된다고 해서 거래가 재개되는 것은 아닌 점에 유의해야 한다.

이와 더불어 신한은행은 "채무자의 알 권리를 강화하기 위해 채무자 본인이 시효가 완성된 채권인지 확인할 수 있도록 조회서비스를 신한은행 홈페이지 내에 만들 계획"이라고도 밝혔다.

신한은행의 이 같은 결정에 대해 제윤경 더불어 민주당 의원은 환영 논평을 냈다. 

제 의원은 논평에서 "이번에 감면되는 특수채권은 소멸시효가 도래했으나 소멸시효를 연장하지 않은 ‘소멸시효 포기 특수채권’으로, 회수가 불가능해 이미 은행 재무제표상 지워진 채권"이라며 "이미 채권자들의 장부에서 사라진 이러한 채권들은 채권자들이 ‘결정’만 한다면 채무자들의 채무기록에서도 완전히 없앨 수 있다"고 주장했다.  

제 의원은 이어 "490만명중 대다수는 은행 등 금융기관의 연체채권으로 구성된 국민행복기금 채무자들"이라며 "채권자들이 이번 신한은행처럼 결단한다면 490만명 채무 탕감은 정부 재정이 한 푼도 들지 않고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이어 "아직도 은행권에 남아있는 소멸시효 완성채권은 약 5조원에 달한다"며 "서민들의경제적인 새 출발을 돕는 ‘따뜻한 금융’을 실천하는 은행에는 더욱 많은 고객들의 신뢰가 함께할 것이며, 더 많은 은행들의 따뜻한 동참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

제윤경 의원은 그동안 채권자들을 만나 이같은 방식을 제시해 현재까지 약 15만명(2조 규모)의 채무를 탕감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