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켓몬 덕후’가 들려주는 포켓몬 이야기. 포덕노트 2화.

속초 붐이 일었던 시즌에는 주변 이들이 나에게 속초로 안가냐고 물어보곤 했지만 그다지 내키지 않았다. 분명 나는 자칭 타칭 포덕이었거늘, 포켓몬GO 만큼은 마치 런치타임이 막 지난 2시5분의 맥도날드처럼 어딘가 거부감이 드는 것이었다. 2015년 포켓몬GO 첫 영상을 보고 흥분을 감추지 못했던 당시를 생각해보면 이해가 가지 않을 정도로 당시의 나는 포켓몬 GO에 관심이 없었다. 사실 솔직히 말하자면 속초로 가는 것보다도 다른 데에 정신이 팔려있었기 때문이다.

속주로 가자!(오버워치에서 루시우가 분위기 전환을 사용했을시의 대사) 포덕 이전에 겜덕이었기에 나도 여타 사람들처럼 고급시계(오버워치) 삼매경에 정신이 없었다. 중학생 시절 ‘카운터 스트라이크’에서 내 헤드를 작살내던 친구 덕에 FPS(1인칭 슈팅게임) 장르를 싫어하는 나였지만, 다양한 역할군의 개성 있는 캐릭터들은 에임고자인 나도 반겨주는 것이었다. 나도 총게임하고 싶어! 롤(리그오브레전드)을 그만두고 새로운 게임을 찾던 나에게는 너무나 치명적인 타이밍이었다. 굳이 변명을 하자면 1년이라는 시간은 포켓몬GO에 대한 관심이 짜게 식어버리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내 관심에서 멀어진 포켓몬GO의 잘못이다.

▲ 그림=니트남

올해 1월24일 포켓몬GO 한국 정식 서비스에 관심이 없던 건 조금 다른 이유다. 나는 멀티를 못한다. 일을 동시에 처리 못하는 것만이 아니라 덕질도 멀티가 안된다. ‘마치 오늘 저녁은 파스타다!’ 하고 각인된 위장에 다른 음식을 넣지 못하는 고독한 푸드 파이터와 같다.

마침 1월쯤은 포켓몬 썬·문 도감을 다 채우고 실전 포켓몬을 꾸린다고 밥만 먹고 포켓몬만 붙잡던 때였다. 노력치니 개체값이니 하면서 5v 운운하는 포켓몬 헤비 유저인 내가 과연 포켓몬GO에 만족할 수 있을까? 기술배치가 자유롭지도 않고 포켓몬 잡는 것 말고는 할 게 없다던데 깔았다가 얼마 안되서 지우는 거 아니야? 그래도 이제 곧 2세대 포켓몬이 추가된다던데. 2세대에 좋아하는 포켓몬 참 많은데.

지금의 나는 혹여 대세와 유행에 뒤처지는 것이 두려워 흘러가는 부평초마냥 스리슬쩍 탑승 하는건 아닐까. 하지만 용량이 많으면 안해야지. 어라? 용량을 별로 안차지 하잖아? 그럼 어떤 느낌인지 직접 해보고 판단해야겠군, 조금만 해야지. 결국 나는 2월 20일 야심한 새벽에 포켓몬GO와 타협했습니다. 쟌넨!

앞서 츤츤거렸던 거에 비해 막상 포켓몬GO에 몰입하는 속도는 LTE가 따로 없었다. 뭐라하던 결국 포켓몬은 포켓몬인 것이다. 특히 1세대에서 2세대에 속하는 포켓몬들은 포켓몬 올드비 유저들 중에서도 호불호가 그다지 갈리지 않는 귀여움을 자랑하니만큼 사랑스럽지 않을 리가 없다. 포켓몬들은 졸리지도 않은지 스팟에서 꺄륵꺄륵 뛰놀고 있었고 나는 두말하면 서러운 올빼미족 미대생이었다.

▲ 그림=니트남

마침 나는 학교에서 야작(야간작업) 중이었던 나는 오늘 하루 새하얀 종이를 여백의 미로 남겨두겠다 결심하며 작업실을 뒤로했다. 첫 스타팅으로 나온 포켓몬은 포켓몬의 시작이자 귀여운 외모와는 달리 1세대 스토리 난이도를 숨쉬기 운동처럼 만들어버리는 이상해씨지만 포켓몬GO에서는 그저 귀엽기 만한 풀 때기일 뿐이지.

포켓스팟은 미대에만 해도 3개가 몰려있었고 학교 내에 전부 합치면 대충 8~9개가 존재했다. 추운 겨울, 한손에는 몬스터볼 보조배터리를 들고 두리번거리며 간만에 산책나온 개마냥 학교부지를 방황하는 모습은 낮이었다면 이상한 사람, 밤이었다면 수상한 사람이라 수군거리기에 충분했을터. 여러분 전 이상한 사람이 아니에요, 그저 평범한 포덕일 뿐이랍니다.

처음에는 장난삼아 뛰쳐나왔건만 어느새 진심이 되어 포켓스탑순례를 도는 내 모습을 알아차린 건 숨이 턱까지 차오르게 만드는 빌어먹을 언덕을 5바퀴째 돌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하면서다. 어느새 조금씩 밝아오는 하늘에 나의 현자타임은 조용히 눈뜨고 있었다. ‘첫차타고 집에 가서 잠이나 자야지,’ 계획에 없던 기나긴 수렵의 시간이 끝났다. 화면에서는 브케인과 치코리타, 그리고 이브이가 해맑게 웃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