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센스> 제이미 홈스 지음, 구계원 옮김, 문학동네 펴냄

이 책은 우리가 혼란에 빠졌을 때, 앞으로 나아갈 길이 분명하지 않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설명한다. 전화가 울리면 전화를 받고, 빨간 신호등이 켜지면 멈추면 된다. 이런 일상사들은 대처법이 단순명료하다. 대학·직장·거주지·배우자 선택은 어렵다. 이 책은 이런 양극단의 상황 사이에 있는 흐릿한 중간지대, 즉 어떤 상황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정보가 빠져 있거나 지나치게 복잡하거나 모순되는 경우를 집중적으로 살핀다. 이른바 ‘모호성’의 영역이다.

현대 사회의 ‘역설’은 교통, 통신, 생산 부문의 지속적 발전으로 ‘자유시간’이 늘어난 것이 아니라 선택할 때 참고해야 할 ‘옵션’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우리가 ‘삶의 속도’를 아무리 높여도 홍수처럼 쏟아지는 정보와 옵션의 속도를 따라갈 수가 없다. 단칼에 판단해 선택할 수 없는 모호한 영역들이 급증하는 셈이다.

모호성에 대한 관심이 늘면서 ‘종결욕구’라는 개념이 등장했다. ‘칼로 무 자르듯’ 어떤 주제에 대한 확실한 대답, 혼란과 모호성을 없애주는 명쾌한 답변을 원하는 욕구를 뜻한다. 이러한 종결욕구에는 나름대로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종결욕구가 지나치게 강해지면 반드시 최선이라고는 할 수 없는 ‘첫 번째 해답’을 고수하게 된다. 그로 인해 잘못된 곳에서 의미를 찾을 우려가 있다. 예를 들어 직장에서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에 처했을 때, 가장 간단하고 빠른 선택인 ‘퇴사’를 결정한다거나, 연인과의 관계에서 다툼이 반복될 때 복잡하고 인내가 필요한 대화와 화해보다는 ‘이별’을 선택해버리는 것이다. 종결욕구는 편견이나 선입견과도 긴밀한 연관을 맺고 있다. ‘그 사람은 원래 저렇지’ ‘이건 처음부터 잘될 수가 없는 일이야’ 같은 생각은, 해법을 고민하는 ‘불필요한 수고’를 덜어준다. 이처럼 결론을 서두르다 보면 새로운 것을 배우거나, 까다로운 문제를 해결하거나, 세상을 색다른 관점에서 바라볼 소중한 기회를 놓치고 만다.

저자는 종결욕구를 제대로 다스림으로써 불확실성을 정확히 통제하는 방법을 제시한다. 그는 혼란스럽고 불편한 상태, 즉 ‘난센스’에도 숨겨진 장점이 있다고 강조한다. 책에는 스파이 작전, FBI 협상가가 이중적 태도를 보이는 사이비 교주를 다루는 방법, ‘앱솔루트’의 보드카 광고 캠페인과 실패함으로써 성공한 기업 ‘픽사’와 ‘두카티’ 사례가 등장한다.

흥미로운 개념도 나온다. 뛰어난 협상가들은 상충되는 정보에서 섣불리 결론을 이끌어내지 않는다고 한다. 이를 소극적 수용력(Negative Capability)이라고 칭한다. 불확실하고 이해할 수 없으며 의심스러운 상황에서도 성급하게 사실과 이유를 추궁하지 않고 견딜 수 있는 능력인데, 달리 말하면, 선택에 대한 스트레스가 심한 상황에서도 종결욕구가 낮은 것이다. 이는 우유부단과는 다르다. 소극적 수용력은 복잡하고 끊임없이 변화하는 현실의 한 가지 측면만을 고수하거나 그에 집착하지 않음을 의미한다. 이것은 특별한 형태의 자제력이다.

책 속에는 물건을 미리 만들어 두거나, 구입해두는 ‘재고’에 대한 심리학적 해석도 나온다. 저자는 모든 유형의 구매는 다양한 정신적 갈등으로 인한 불안을 잠재우는 역할을 한다고 해석한다. 취사선택하기 힘든 골치 아픈 상황에서 경제력을 동원해 상황을 모면하려는 것이 바로 재고충당이라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