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장에 나온 아내는 자신을 둔기로 내려쳤던 남편의 선처를 빌고 또 빌었다. 빚에 시달리던 가장이 처자식을 살해하려 한 혐의로 구속된 상태였다. 그는 2008년 금융위기가 오기 전 대출을 받아 경기도 화성의 아파트를 샀다. 은행 이자는 계속 올랐지만 집값은 떨어지기 시작했고 사채에 손을 댈 만큼 극심한 ‘하우스푸어’가 된 평범한 회사원은 가족을 죽이고 자살하기로 결심하기에 이른다. 단란했던 가정의 ‘내 집 마련’이란 꿈이 비극의 서곡이 될 줄은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2010년 이후 수도권을 중심으로 부동산 가격이 하락하기 시작했다. 거래도 멈췄다. 2006년 9월 3만건에 육박하던 아파트 거래량은 2012년 10월에는 3000건을 기록, 10분의 1로 떨어진 것을 알 수 있었다. 은행 대출로 집을 샀다가 가격 하락의 타격을 입은 가계를 중심으로 대출 연체율도 급증했다. 2010년 0.5%였던 가계대출 연체율은 2012년 1%로 증가했다.

부동산 시장의 무자비한 오르내림을 경험하면서 ‘하우스푸어’는 이제 사회 초년생부터 중년의 가장까지 한국인 공통이 가진 공포가 됐다. 하루에도 신문 기사, 온라인 커뮤니티, 서점 등에서 수천 명이 질문하고 답하는 문제는 여전히 ‘아파트 값이 폭락할까?’ ‘집 사도 되나?’다. 누구라도 선뜻 대답하기 어려운 문제다. 부동산은 입지나 규모마다 특성이 상이하고 어제와 오늘의 시장이 결코 같을 리 없기 때문이다.

 

“부동산 부양은 ‘정권의 보도(寶刀’인가?”

2015년과 2016년 한국 주택 시장에선 ‘분양 광풍(狂風)’이 불었다. 견본주택만 열면 수만개의 청약통장이 쏟아졌다. 수백 대 1의 청약경쟁률과 최단시간 계약마감 등 신기록은 매주 새로 세워졌고 서울 대부분의 지역에서 아파트 매매가가 연일 기록을 경신했다.

박근혜 정부는 출범 이후 줄곧 부동산 관련 금융 규제를 완화하고 재건축 연한 단축, 분양가 상한제 폐지, 청약 제도 완화 등 적극적으로 시장 부양에 나섰기 때문이다. 최경환 전 경제부총리의 ‘초이노믹스(Choinomics)’는 단기 시장조절 효과가 큰 주택담보대출비율(LTV), 총부채상환비율(DTI) 등 금융 규제를 2014년 7월 완화했다. 담보인정비율은 70%로 총부채 상환비율은 60%로 확대됐다.

한국은행도 기준금리를 낮추기 시작했다. 2011년 7월 3.25%였던 기준금리는 2012년 7월 3.00%, 10월 2.75%, 2013년 5월 2.50%, 2014년 8월 2.25%, 10월 2.00%, 2015년 3월 1.75%, 6월 1.50%, 2016년 6월 1.25%로 인하됐다. ‘토건정부’란 비판을 받았던 전 정권인 이명박 정부보다도 적극적인 시장 지원책이었다.

그렇지만 실물경기 악화를 막으려는 박 정부의 노력은 결국 ‘언 발에 오줌 누기’가 되고 말았다. 뒤늦게 청와대 안종범 전 경제수석은 ‘빚내서 집 사라’고 한 적은 없다고 해명했지만 그 게 말 뿐이란 것은 누구라도 알 일이었다. 가계부채는 하루가 다르게 급증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취임한 해인 2013년 2분기 기준 980조원이었던 가계부채 규모는 현재 사상 최고치인 1344조원(한국은행 기준)에 이르게 됐다.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도 세계 최고 수준이다.

2013년 주택기금을 재원으로 한 수익·손실공유 모기지대출을 통해 주택수요자에게 연 1~1.5%의 초저금리로 대출하는 상품을 출시했다. 세금으로 주택 구입을 지원한 것이다. 가계대출이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고 이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주택담보대출이다. 부동산경기가 급락하거나 부동산 침체가 장기화될 경우 은행부문 역시 심각한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전세가격 상승과 급격하게 진행된 월세 전환에 따라 주택수요자들이 빚을 내 주택을 매입한 결과 주택가격도 상승했다. 서울지역 아파트 가격은 2014년 평균 2.41%, 2015년 6.09%, 2016년 7.5% 상승을 기록했다. 부동산 114 조사에 따르면 2016년 서울 지역 아파트 가격은 2008년 수준을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시장에는 단기 매매차익을 노리는 투기수요가 유입됐다. 드디어 가계부채 증가속도가 사상 최고를 기록한 지난해 11월 정부는 일부 지역에 대한 분양권 전매제한을 사실상 금지하고 1순위 청약조건을 강화한 부동산 대책을 발표했다. 이어 12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기준금리를 인상하고 계절적 비수기가 겹치면서 주택시장의 열기는 식기 시작했다.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이 본격화되면 한국에서도 단계적인 금리 인상이 이뤄질 것이고 가계부채에 대한 부담이 급증할 것이라는 우려가 시장에 나타난 것이다.

 

박근혜 정권 이전에도 한국 정부는 투기 억제나 경기 활성화라는 명목을 번갈아 가지고 나와 시장에 개입해 왔다. 한국의 부동산은 시장이 자율적으로 작동하는 시장이라기보다는 정권의 정치 성향과 후행적 대처에 의해 좌우돼 왔던 것이다. 임기 5년짜리 정부는 인위적인 주택 가격 조정으로 문제를 덮어버렸다.

이들은 부동산 투기를 통해 부를 축적할 수 있고 전문 투자자가 아니더라도 집 값이 떨어지면 ‘큰 일’이라는 국민적 인식을 갖게 했다. 심지어 무주택자에게도 집은 주거의 대상이 아닌 투자의 대상이라는 것이 상식처럼 여겨지고 있다. 전문가들이 한 목소리로 다음 정권의 부동산 정책이 보다 신중하면서도 인기에 편승하지 않는 장기적 계획으로 수립돼야 하고 또한 선제적이고 유연한 대응으로 시장을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다.

 

길어진 관망… 불확실성 커진 2017년 부동산 시장

시장 비관론자들이 유독 많은 한국 부동산 시장에서도 올해처럼 부정적 전망이 득세한 때는 없었다. 입주 물량 과잉, 미국의 금리 인상, 조기 대선, 대출 규제 등의 변수가 예년보다 더한 불확실성을 가져왔다는 것이다.

송인호 한국개발연구원(KDI) 박사는 서울 부동산 시장은 올해 상반기부터 상승폭이 줄어들고 있다고 했다. 그는 “올해 말부터 하락할 가능성도 있고 내년에는 하락폭도 넓어질 것”이라고 관측했다. 한국감정원 기준 지난해 전국 주택 매매가격은 주택이 0.7%, 아파트 0.8% 상승해 고점을 기록했다. 다만 지난해 11.3대책 전후로 상승폭이 줄어 올해 2월 기준 4개월 연속 상승폭이 축소됐다.

강남 이외 지역에서 국지적 하락도 있을 것이라는 그는 이 같은 공급 과잉 현상은 우리의 선분양 제도 때문이라면서 선분양 제도가 주택시장 변동성을 확대한다는 단점이 있다고 지적했다. 송 박사는 “부동산이 전체 경기를 선도하는 시대는 지났다. 지금 당장은 어려울지라도 시장 정상화를 위해 당분간의 침체기를 감내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입주대란’은 올 하반기에 가시화될 예정이다. 3월 국토교통부가 발간한 ‘2017 주거종합계획’에 따르면 올해 전국과 수도권 아파트 입주(예정) 물량은 각각 39만1000여가구, 18만여가구로, 이 중 상반기 전국 15만4729가구(수도권 5만4094가구)를 제외하면 전국과 수도권 입주물량은 각각 23만6000여가구, 12만6000여가구에 이른다. 하반기 전국과 수도권 입주물량이 상반기와 비교해 각각 53%, 132% 증가할 것이라는 뜻이다.

 

손정락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연구위원은 올해 시장에 대한 판단을 유보하고 있다. 그는 “올해 악재는 더 많다. 금리나 정책 불확실성으로 관망세가 더 길어져 4월까지는 분양 추이를 더 지켜봐야 윤곽이 나올 것 같다”면서도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동결했지만 연말 대비 시중금리가 0.5% 상승했고, 공급 물량이 많다. 현재 분양시장에서 가장 큰 이슈는 중도금 대출로, 1금융권 대출이 어려워지며 2금융권, 3금융권의 고이자 대출로 떠밀리고 있는 상황이다”고 우려했다.

그는 올해 전체 시장은 보합일 것으로 전망했다. 다만 안전자산으로 평가받는 서울 부동산은 소폭 상승할 가능성이 있다. 특히 재건축 아파트가 전체 가격을 견인하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라는 부연이다. 재개발·재건축 이주가 본격화되면서 전세가와 매매가 모두 오를 것이라는 손 연구위원은 다만 남은 호재가 있는 경기도 동탄과 평택이 수도권 시장의 지표가 될 것이라고 했다.

광역시 이외의 지방은 이미 침체기인데 올해 입주가 몰리면서 폭락 가능성이 있는 곳도 있다. 물론 외환위기 수준은 아니다. “지방 중에서는 부산은 선방하고 있지만 부산 시장이 전체 주택시장의 10%에 해당하고 수도권은 30%에 달해 수도권 시장의 향방이 올해 전체 부동산을 가름할 것”이라고 평했다.

 

“작년과 재작년 분양장은 ‘과열’ 시장, 올해는 ‘정상’ 시장”

시장의 하락과 장기 침체에 대한 우려가 기우에 가깝다는 낙관론도 있다. 이상우 유진투자증권 건설·부동산 연구위원은 서울 주택공급이 전년 대비 감소 전환되고 있다는 점에 관심을 둘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올해 2월 준공한 전체 주택은 4만815호로 전년 대비 26.1%가량 증가했지만, 서울은 5178호로 전년에 비해 8.3% 감소했다.

그는 “미국 금리인상, 대선 등 시장이 말하는 변수가 실제 주택시장에 미칠 것이라는 근거가 확인되지 않았다. 주택시장이 이들 변수 때문에 어려워질 것으로 보는 것은 옳지 않다. 현재 한국 기준금리는 계속 동결 중이다. 은행들의 가산금리 부과가 시장 금리를 소폭 끌어올렸을 뿐이다”고 했다. 이 연구위원은 비수도권 지역도 청약경쟁률과 분양가 상승 등의 지표로 확인했을 때 대체로 양호하다고 했다. 반면 중소도시의 중소단지 분양 성적이 저조하나 이는 비단 올해만의 현상이 아니었다고 했다.

 

유진투자증권 보고서에 따르면 2월 기준 전월세 거래량은 전국15만8238건(12.7%)으로 증가했고, 서울은 5만6283건(19.5%)으로 전년 동월 대비 큰 폭으로 증가했다. 설 연휴를 고려하더라도, 2015년 3월(16만1696건) 이후 처음으로 15만건 이상의 거래량을 기록할 정도였다. 이 연구위원은 이는 올해 주택수요가 강함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주택매매에 주저하는 잠재수요들이 결국 주택임대를 이용하고 있다는 것이며 주택매매 잠재수요자들이 여전히 시장에 많다.

한편 현장 반응도 긍정적이다. 건설사들은 주택 소비심리가 살아났다고 판단하고 있다. 이미 올 초부터 7개 단지를 분양한 GS건설의 관계자는 “소비심리가 회복됐다. 전통적 비수기인 1~2월을 지나면서 현장 분위기가 살아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시장에서 가수요가 빠져나가고 실수요 위주로 재편돼 청약경쟁률이 떨어진 건 맞지만 계약률은 예상보다 나쁘지 않다”고 평했다.

이 관계자는 올해 시장에 대해서도 “지난해와 지지난해가 ‘버블’이 낀 호황장이었다고 할 수 있고, 올해는 침체가 아니라 ‘정상’으로 돌아가는 모습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사실 정상적인 시장에서는 정당계약기간을 포함한 초기에 50~60%만 분양이 되고 6개월~1년 사이에 판매가 완료되면 성공적이라고 생각한다. 같은 단지에서도 방위나 조망에 따라 ‘못난이’(비선호 세대)가 나오지 않나. 업계에서는 준공 전까지만 분양 완료하면 된다고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앞으로도 GS건설은 대규모 단지 분양을 앞두고 있다. 5월 대선 이후 경기도 김포에서 ‘한강메트로자이’ 4229가구를, 경기 안산에서 ‘그랑시티자이 2차’ 총 3370가구를 분양할 예정이다.

다른 대형 건설사인 대우건설 관계자도 올해 시장을 낙관적으로 본다. 그는 “베이비부머의 이주 수요와 이들 자녀의 분가 수요 등 새 집에 대한 수요가 충분하다”면서 “금리인상과 정책 변화에 아직은 소극적이지만 실수요 계층이 두텁다. 공급 대란이라고 했지만 공급도 예상보다 많지 않아 지난해 수준으로 보인다”고 주택사업에 대한 자신감을 내비쳤다.

실제로 3월 26일 금융결제원 기준 3월 분양한 총 26개 단지의 1순위 평균 청약 경쟁률은 19.34대 1로 1월(7대 1) 2월(1.67대 1)과는 확연히 달라진 모습이었다. 11.3부동산 대책 발표 전인 지난해 9월(23.02대 1), 10월(20.51대 1) 수준까지 돌아온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