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여름 내내 서초동 대검찰청을 들락거렸다. 6월부터 8월까지, 무척이나 더웠던 여름이었는데, 주말 빼고 60일간을 거의 매일 방문했다. 정확히 말하면 대검찰청 기자실이었다.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검찰 조사를 받는 기간 내내 대검 기자실에서 매일 오후를 보냈다. 초기에는 대검 기자실 기자들과 친하게 지내고 싶어도 대화를 나누기조차 쉽지 않았다. 한꺼번에 너무 많은 사람들을 만난 데다가 바쁘고 시크한 사람들뿐이라 얘기를 이어나갈 건덕지가 없었다. 인사 외에 몇 마디 이상 주고 받기가 어려웠다. 속으로는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관심 받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뿐이었다.

 

내 뱉은 말은 주워담지 말고 실행으로 옮겨라

이름도 몰랐고, 개개인에 대해 알지를 못하니 모처럼 담배를 나눠 피우는 시간에도 날씨 이야기, 휴가 이야기처럼 겉도는 얘기밖에 할 것이 없었다. 어느 날 점심 때가 조금 지났을 무렵 비슷한 연배의 기자들이 모여 함께 이야기가 시작됐다. 마침 휴가 시즌이라 자연스레 휴가 이야기가 오갔다. 사실은 매일 기자실에 가긴 했어도 누가 휴가를 갔다 왔는지도 알지 못했기에 그냥 눈치껏 대화를 해 나가는 수밖에 없었다.

 

“휴가는 잘 다녀오셨나요?”

“예, 모처럼만에 바닷가로 다녀왔어요.”

“가족들과 즐거운 추억 많이 만드셨겠네요. 부럽습니다.”

 

더 대화를 이어가고 싶어도 얘깃거리가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다 담배를 끄고 사무실로 들어갔고, 다른 기자가 담배를 피우며 다가왔다. 좀 전의 레퍼토리대로 대화를 시작했다.

 

“휴가는 잘 다녀오셨습니까?”

“예, 다녀왔습니다.”

“가족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셨겠어요. 모처럼만에 애들이 즐거워했겠어요.”

 

두어 마디 대화가 오갔을 때 주위의 다른 기자들 안색이 달라졌다. 옆에 있던 기자들이 눈짓을 보내는 듯 싶기도 했다. 순간 ‘아, 뭔가 잘못됐구나’ 하는 마음에 대화는 잠시 끊겼고, 어색한 분위기가 연출됐다. 휴가를 다녀왔다는 그 기자 역시 뭔가 말을 할까 말까 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마침 옆에 있는 넉살 좋은 기자가 말을 받았다.

 

“이 친구 아직 솔로라, 하하”

 

1968년생으로 알고 있었기에 당연히 결혼했고 애도 있을 것이라 생각했지 솔로일 수 있다는 것은 생각지도 못했다. 어색함을 깨기 위해 무슨 말이라도 던져야 했다. 그런데 한 마디 더 했던 것이 분위기를 더 이상하게 만들고 말았다.  엉겁결에 ‘제가 소개팅이라도 주선해 드릴께요.’라고 말을 뱉었던 것이다. 그 기자는 이미 예상 했다는 듯이 담배 한 모금을 더 빨아들이고는 말을 이었다.

 

“지금까지 수 많은 커뮤니케이션 담당들을 만났는데, 미팅을 주선하겠다, 소개를 시켜주겠다고 말들은 많이 했는데, 그 약속 지킨 사람이 없었어요.”

 

그 말에 더 당황스러웠다. 나도 그저 그런 사람들과 동급으로 패대기 쳐지는 느낌이었다. 그 순간 ‘내 뱉은 말을 주워 담을 수는 없고, 그렇다고 다른 사람과 다르다고 길게 설명해봐야 건질게 없다’는 생각뿐이었다.

 

“하하, 말보다 행동으로 보여드려야죠. 조만간 제가 어떻게 해 보겠습니다.”

 

대화는 거기서 끝이었다. 그로부터 일주일이 넘게 지인들에게 진지하게 부탁을 했다. 살면서 한 번도 그런 말은 꺼내본 적이 없었기에 어떻게 주선해야 하는 지도 몰랐다. 다행이 몇몇이 고민을 해 주었고 주위에서 소개팅 후보자 감을 함께 찾았다.

깐깐한데다가 검찰청을 출입하는 기자였기에 걸맞는 후보자 찾기가 여간 고민스럽지 않았다. 주위의 도움 덕에 세 명의 여성 후보자를 찾았다. 고민 많이 하고 추천해준 티가 역력했다. 직업과 커리어가 장난이 아니었다. ‘대기업 직장인, 큐레이터, 그리고 홍대 근처 영어학원 강사’였다.

세 명의 간단한 인적사항을 외워서 그날 오후 기자를 조용히 찾아갔다. 세 후보에 대해 간략한 소개를 전했다. 처음엔 반신반의 하던 기자는 세 후보자의 프로필을 듣더니 놀라는 눈치였다. 싫지는 않아 보였다. 세 명 중에서 본인보다 키가 훨씬 더 큰 큐레이터는 부담스럽다며, 영어학원 강사를 선택했다.

그 뒤엔 내가 모든 것을 준비해야 했다. 날짜와 시간, 장소 예약까지 해놓고 친구의 새 자동차까지 동원했다. 왕자와 공주처럼 모실 작정이었다. 미리 예약한 레스토랑과 테이블을 둘러보고, 담당 지배인에게도 세심한 배려를 부탁했다. 그리고는 합정역으로 마중을 나가 기자를 픽업해 모셨다. 여성분의 성격과 스타일에 대해서도 브리핑했다. .

커플이 미팅을 하는 동안 나와 친구도 근처에서 저녁 식사를 하며 대기했다. 궁금했지만 일부러 연락하지는 않았다. 괜히 전화해서 분위기 깰까 싶어 기다렸다. 10시쯤 친구와 자리를 파하기 직전에야 전화를 했는데 결론은 허무했다. 저녁만 먹고 일찍 헤어졌다는 것이었다.

“미팅 자리 주선 해 준 건 너무 감사해요. 식사하며 이런 저런 얘기도 나누었는데, 아무래도 서로 직업과 환경이 너무 달라서 생각 차가 많다고 느꼈어요.”

크게 기대는 않았지만 밥만 먹고 헤어졌다는 데에는 아쉬움이 컸다. 하지만 그 이후로 그 기자는 내게 무한 신뢰를 보냈고 돈독한 관계로 이어졌다. 나도 허튼 말 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줄 수 있어 다행이었다. 책임질 수 없는 말을 해서는 안 된다. 남들은 다 겉치레로 그냥 그렇게들 말 한다고 할지라도 말이다.

 

돈이 할 수 없는 일을 신뢰가 한다

근무한 회사들마다 광고나 행사 후원 같은 예산집행은 엄두도 낼 수 없었다. 많지 않더라도 형편에 맞게 광고 예산을 운영하는 타사 사람들을 보면 부러웠다. 한번은 모 경제 매체에서 큰 행사를 하는데 담당 데스크가 내게는 행사 관련 얘기를 아예 꺼내지도 않았다. 죄송한 마음에 돈 들어 가는 것은 빼고 뭐든 하겠다며 우스개 소리로라도 데스크의 환심을 사고 싶었다.

얼마 뒤 신라호텔에서 대규모 행사가 열렸다. 개막식에 참여해서 데스크와 기자들에게 축하 인사도 전했다. 그런데 행사 둘째 날 데스크가 전화를 걸어왔다. 전체 행사는 잘 진행되고 있는데 맡고 있는 세션이 비인기 주제라 세션 행사장에 사람들 숫자가 너무 적으니 도와줄 수 있겠느냐는 것이었다.

농반진반으로 뭐든 하겠다고는 했지만 전화를 받고 보니 덜컥 부담이 됐다. 세션까지 남은 시간도 두어 시간 남짓 밖에 안 되는 데다가 업무중인 사람들을 동원해야 했다. 곧바로 상황을 보고해 허락을 받고 급한 업무가 없는 사람들 위주로 SOS를 보냈다. 옆 부서, 다른 층과 사무실을 가리지 않고 뛰어다니며 짬을 낼 수 있는 사람들을 모았다. 얼추 스무 명이었다. 곧바로 택시 몇 대에 나눠 타고 행사장으로 향했다.

행사장은 북새통이었는데, 담당 데스크가 있는 세션장만 썰렁했다. 50-60명 정도를 수용하는 룸이었는데 절반 정도만 채워져 있었다. 행사장 문을 열고 나를 선두로 이십여 명의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려들었다. 그때 행사장 앞에서 입꼬리가 귀에 걸린 데스크의 미소를 아직도 기억한다. 덕분에 행사가 잘 마무리 됐다. 직원들도 모처럼 바람도 쐬고 유익한 강연도 들을 수 있어서 좋았다고 했다. 그 일이 있은 뒤로 담당 데스크는 나를 준부서원으로 대했다. 한동안 부서 회식에도 빠뜨리지 않았다. 설령 우리 회사에서 큰 돈 들여 행사 후원을 했다 하더라도 그런 대접은 없었으리라 생각한다. 돈은 그런 마법을 부릴 수 없다.  

아무리 적은 양이라 하더라도 쏟아진 물을 함부로 담을 수 없듯이 사소하고 허투루 한 말이라도 내뱉은 이상 지켜야 하는 것이 커뮤니케이터의 기본이다. 너무도 당연한 말 같지만 살다 보면 허투루 하는 말들이 너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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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위 사람들의 신뢰는 그 사람의 말이 아니라 행동에서 얻어진다.

2. 남들처럼 행동하면 남들 이상 될 수 없다.

3. 돈으로 할 수 없는 일에서 얻는 신뢰가 더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