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은둔형 영상제작자가 앞뒤 안 보고 드론을 질러버렸다. '드론을 사버렸다' 두번째 이야기.

▲ 박재묵 모즈 크리에이티브비쥬얼스튜디오 대표. 출처=본인 제공

나를 꿈꾸게 했던 물건

영화감독을 꿈꾸던 어린 시절이 있었다. 스필버그의 영화에 빠져있던 그 시절, 그의 자서전을 읽으며 꿈을 키워갔다. 스필버그는 어렸을 때 부터 동네 아이들을 배우 삼아 슈퍼 8mm 카메라로 영화를 찍고 유료 상영회를 했던 떡잎부터 다른 상업영화감독이었다.

그리고 나에겐 ‘손희’와 ‘샘숭’ 비디오카메라가 있었다. 손희와 샘숭은 내게 말했다. 나도 스필버그 같은 감독이 될 수 있다고. 잘 만들어진 기술은 이렇게 사람을 꿈꾸게 한다. 비록 그 꿈이 허망할지라도. 사실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는 비디오 카메라가 아닌 그것을 넣는 가방, 그리고 이 가방의 새로운 주인에 대한 이야기이다.

▲ DJI 휴대용 드론 매빅 프로를 접은 모습. 출처=DJI

 

휴대용 드론을 말하는 기준

2016년 9월 액션캠 제조업체인 고프로의 신제품 발표회. 당시 한창 주가가 떨어지고 있던 고프로가 던진 회심의 카드는 드론이었다. 그것도 액션캠을 장착할 수 있는 핸드짐벌을 끼우는 게 가능한 드론. 카메라를 빼면 100만원 정도의 가격도 착한 드론. 그의 이름은 카르마. 왠지 이름에서부터 운명적 기운이 느껴진다.

카르마는 내 마음에서 일주일동안 떠나지 않았고, 너와 나의 운명적 맺음을 위해 빠른 구매방법을 알아보았다. 하지만 그 순간 내 마음을 완전히 돌려버린 물건이 나타났다. DJI가 내놓은 매빅 프로는 카르마보다 작고, 카르마보다 가볍고, 카르마보다 멀리 날고, 카르마보다 오래난다. 무엇보다 카르마보다 예뻤다. 고민은 끝났다. 이렇게 난 드론을 사버렸다.

매빅 프로가 나의 첫 드론이 됐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고프로의 카르마를 보았을 때 드론을 사기로 결심했다. 이전에도 DJI 팬텀이나 유닉(Yuneec)의 타이푼과 같이 가격과 성능을 모두 만족시키는 제품들이 상당히 많이 있었지만, 카르마와 매빅프로는 휴대성의 관점에서 이전의 드론들과 맥을 달리한다. 나같은 은둔자도 드론을 구매하게 되는 가장 큰 요소는 바로 그 휴대성이다.

DJI가 신제품 발표회에서 매빅 프로를 소개할 때 그 사이즈를 물병 크기에 비교했다. 나름 객관적인 비교 기준을 찾으려 했겠지만, 처음에 들었을 땐 가늠이 잘 되지 않았다. 1리터 물병도 있고, 텀블러도 있고, 약수터에 들고 가는 큰 물병도 있는데 도대체 어떤 사이즈를 말하는 것인가. 아, 편의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500ml 사이즈의 생수병을 말하는 것이었다. 한국에서 이 드론을 발표했다면 아마 소주병에 비교하지 않았을까.

 

가방의 새 주인

아무리 휴대용 드론이라고 해도 나의 소중한 매빅을 아무 가방에서 굴러다니게 할 순 없는 노릇이다. 일단 DJI 공식 스토어를 확인했다. 육중해 보이는 숄더백과 연약해 보이는 기체 슬리브밖에 없었다. 기체만 쏙 들어가는 가방이 있으면 좋겠는데, 그런 가방은 어디서도 팔지 않는다. 집구석에 적당한 가방이 없을까 뒤져봤다.

그러다 나의 옛 추억이 담긴 물건 하나를 발견했다. 리틀 스필버그를 꿈꾸던 시절에 나의 동반자나 다름없던 샘숭 디지털 비디오 카메라. 아니, 카메라는 온데간데 없고 빈 가방만 덩그러니 남았다. 그리고 매빅 프로는 이 가방에 자로 잰듯 쏙 들어갔다. 휴대용 드론의 사이즈를 대변할 만한 새로운 기준이 여기에 있다.

▲ 비디오카메라 가방에 매빅 프로를 수납한 모습. 출처=본인 제공

당신이 옛날에 쓰던 휴대용 비디오카메라. 딱 그 사이즈다. 이것은 우연이 아니다. 나는 이것을 감히 휴대성의 철학이라 부른다. 필름의 개발이 35mm에서 멈췄다면, 비디오카메라의 개발이 커다란 VHS테이프 포맷 전용에서 멈췄다면, 스필버그도 나도 꿈을 꿀 수 없었을 것이다. 한 손에 잡히는 가벼운 기계. 그래서 휴대용 드론은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꿈을 꾸게 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졌다.

 

휴대용 드론의 시대가 열렸 다

카르마와 매빅 프로 발표 이후 예전보다 많은 일반 소비자들이 드론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이는 분명 드론이 가진 휴대성 때문이며, 앞의 두 제품이 휴대용 드론시장을 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상에서의 다양한 활용을 위한 더 간편한 드론이 나오기 시작했다. 바지 주머니에 넣을 수 있는 셀카용 드론도 나왔다. 앞으로 드론은 더 작아지고 가벼워질 것이다. 좀더 많은 사람들이 상상하는 바를 이룰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