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현실 회사 대표 인터뷰를 한 적이 있습니다. 인터뷰가 얼추 마무리 되었을 무렵 중국과 관련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길래 "사드 배치에 따른 후폭풍을 느낀 적이 있나"라고 물었어요. "있다"고 하더군요. "어떤 부분에서?"라고 재차 물으니 "위안화 결제로 거래를 하면 돈 흐름이 약간 막힌다"고 하더군요. 흥미로웠습니다. 이 부분은 다음 기회에.

사실 더 흥미로운 문답이 있습니다. 물었습니다. "가상현실의 강점이 뭐냐? 요즘 약간 어렵지 않냐?" 그러자 대표는 이렇게 말하더군요. "선사시대부터 인류는 2차원에 익숙해져 있다. 구석기 시대의 동굴벽화부터 최근의 미술작품을 보면 대부분 2차원이 아니냐. 소통 자체도 2차원에 매몰되어 있었다. 하지만 가상현실은 3차원의 생동감 넘치는 인사이트를 인류에게 처음으로 선사했다. 여기에 가치가 있다"

 

3D 맵핑 전성시대
갑자기 가상현실 대표와의 인터뷰를 떠올린 이유는, 27일 네이버랩스의 3D 기술 기업 에피폴라 인수 소식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나아가 당일 제가 애플의 증강현실 기술력에 대한 기사를 썼기 때문이기도 해요. 더 들어가면, 네이버 PC 메인 화면 변경에 따른 기술 기반 플랫폼 기업의 가치와 3DTV의 오래된 흑역사가 뇌리를 스쳤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3DTV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저는 방송기술과 관련된 정책지에서 근무했기 때문에, 어느정도 지상파 중심의 3DTV 역사를 잘 알고 있습니다. 영화 아바타에서 시작된 열풍이 오롯이 시대의 감성으로 체화되는 현장을 목격했어요.

1년에 1회 개최되는 방송장비전시회(KOBA)에서 한 때 3DTV가 대세였던 시기가 있습니다. 지금 전자 및 IT 전시회가 열리면 모든 부스에 가상현실 기기가 존재하는 것처럼, 2010년 초반에는 3DTV를 체험하려는 인파가 북적였지요. 하지만 결론적으로 말하면 3DTV는 실패했어요. 콘텐츠가 없는 상태에서 제조사 중심의 마케팅이 불을 뿜어 '속 빈 강정'이 되었고 착용에 따른 불편함, 나아가 지속가능한 생태계 창출에 실패했기 때문입니다.

3DTV를 구입해 체험을 하겠다고 여름날 땀 뻘뻘 흘리며 시청하다가 "너무 더워!"라고 외치며 안경을 집어던진 기억이 있습니다.

그런 이유로 가상현실이 부상했을 무렵, 3DTV의 역사를 밟을 것이라는 우려가 많았습니다. 지금도 그 우려는 충분하다고 생각하지만, 그나마 생태계의 조성과 초연결의 인프라로 대표되는 시대의 흐름이 어느정도 맞아떨어진다는 생각입니다. 모든 기술은 시대가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야 빛을 발하는 법이니까요. 안타깝지만.

▲ 3D 맵핑 기술. 출처=네이버

누가누가 잘하나
여기에서 최근 각광받고 있는 3D 맵핑에 집중할까요. 지금까지 제가 말한 것은 말 그대로 3D를 이용자가 직접 체감하고 소비하는 서비스였습니다. 하지만 3D 기술을 바탕으로 삼아, 그러니까 일종의 도구로 삼아 고차원의 기술을 키우는 방식은 약간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맞습니다. 가상 및 증강현실은 물론 자율주행차와 엔터테인먼트의 영역까지. 3D 기술의 인프라를 초연결 사업의 다양한 영역에 자연스럽게 스며들도록 유도할 수 있다면?

3D 맵핑은 자율주행차 운행에 필요한 3D 정밀지도를 구축하거나 증강현실 화면 구현을 위해 평면 이미지, 주변 환경 등을 3차원으로 전환하는데 활용되는 핵심 기술입니다. 그리고 지금은 공간 정보를 기반으로 한 신산업 분야가 확산되면서 3D 기술이 플랫폼 경쟁력 강화에 필수 요소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3DTV는 머리에서 떨치십시요. 이제 이를 바탕으로 다양한 '판'을 벌려야 합니다.

애플과 구글을 보겠습니다. 지난 20일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애플은 별도의 대규모 팀을 꾸리고 증강현실 기술을 활용한 새로운 제품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플라이바이미디어(FlyBy Media), 메타이오(Metaio) 등을 연이어 인수한 상태에서 2013년 인수한 이스라엘 회사 프라임센스의 기술력도 꾸준히 빛을 발하고 있어요. 아이폰8에 3D 안면인식기술이 탑재될 가능성이 높다는 말도 나왔고 자체적인 증강현실 글래스를 제작한다는 루머도 있지요.

오큘러스와 매직리프, MS, 아마존, 돌비 등 여러 경쟁사에서 전문 인력들을 영입하기도 했습니다. 수장은 돌비 임원 출신으로 2015년 애플에 합류한 마이크 록웰입니다.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는 “가상현실을 스마트폰과 같은 근본적이고 혁명적인 기술로 본다”며, “사람들이 언젠가 하루 3끼를 먹는 것처럼 매일 AR을 경험하게 될 날이 멀지 않았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당장 애플이 증강현실 기업이 되지는 않겠지만, 애플카에 대한 미련을 일부 남긴 상태에서 포스트 플랫폼의 가치를 증강현실에서 찾을 가능성은 여전합니다.

구글은 프로젝트 탱고가 있어요. 지난해 레노버 스마트폰을 시작으로 ‘모든 세상을 3D로 스캔하겠다’는 포부를 실현하고 있어요. 탱고에서는 3D 센싱 카메라를 스마트폰에 장착해 눈 앞에 있는 물건이나 공간을 실시간으로 3D 데이터로 변환할 수 있는 증강현실 스마트폰을 개발하는데 주력한 바 있습니다.

탱고는 스마트폰과 태블릿과 같은 기기들이 GPS나 다른 외부 신호에 의지하지 않고 주변 세계의 상대적인 위치를 감지할 수 있게 했어요. 프로그램 개발자들은 프로젝트 탱고를 통해 실내 내비게이션, 3차원 매핑, 물리 공간 측정, 환경 인식, 증강현실, 가상 세계로의 창을 포함하는 사용자 체험 콘텐츠를 제작할 수 있습니다.

일본항공은 비행훈련 시 승무원에게 홀로렌즈를 제공하고 있으며 티센크루프(thyssenkrupp) 엘리베이터는 자사의 유지 보수 및 수리 업무에 있어 홀로렌즈를 활용하고 있습니다. 인텔의 프로젝트 알로이도 중요하죠. 칩 설계 및 기타 다양한 영역의 인프라를 연결하는 방식으로 전개되고 있어 특히 재미있게 보고 있습니다. 컨트롤러를 사용하지 않고 사용자의 손을 인식하는 색다른 접근법을 보여줬어요. 페이스북은 일단 가상현실입니다. 20억 달러에 인수한 오큘러스를 중심으로 3D 기술 개발에 나서고 있지요. 요즘 약간 어렵다는 말이 나오지만.

3D 맵핑을 수단으로 삼아 위치기반서비스, 지식재산권, 증강현실의 삼위일체로 엮은 포켓몬고의 성공은 두 말 하면 입이 아픕니다.

3D 맵핑 기술은 자율주행차 업계도 관심이 큽니다. 3D를 활용한 지도는 스스로 운행하는 자율주행 자동차의 핵심 기술로 중량감이 상당하죠. 네이버랩스의 에피폴라 인수 배경에는 자율주행차 경쟁력 강화가 핵심으로 보여요. 보겠습니다.

지난 1월 인텔이 지도 서비스 업체 ‘히어(Here)’의 지분 15%를 인수했다는 소식이 전해져 신선한 충격을 안겼습니다. 참고로 인텔은 BMW, 모빌아이와 함께 자율주행차 삼각동맹을 결성한 상태였어요. 지난 2016년 1월 인텔과 BMW, 모빌아이는 독일 뮌헨에 위치한 BMW 그룹의 본사에 모여 2021년 완전 자율주행차 실현을 위한 협력에 나선다고 발표한 바 있지요. 협업의 목표는 운전자가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없는 단계(레벨3 - eyes off)를 지나 운전에 대해 전혀 생각할 필요가 없는 단계(레벨4 - mind off)입니다.

여기에서 인텔이 모빌아이를 153억달러에 인수한다고 합니다. 퀄컴이 자동차 반도체 업계 1위인 NXP를 인수하고, 엔비디아가 자율주행 및 플랫폼 기술력을 크게 키우는 상황에서 칩 제조회사의 외연을 자율주행차로 넓히는 한편, 히어 지분 인수로 확보한 지도 역량을 더욱 강하게 풀어내겠다는 의지가 느껴집니다.

▲ 삼각동맹. 출처=인텔

일본에서도 지난해 3월 도요타, 닛산, 혼다 등 6개 자동차 회사와 덴소, 파나소닉 등의 부품회사가 연합해 3D 지도 제작 기술의 공동 개발을 위해 회사를 설립하기도 했어요. 개인적으로 도요타의 무자비한 인프라 투자에 관심이 많습니다.

애플은 2010년과 2011년, 3D 맵핑 기술 업체인 캐나다의 폴리9(Poly9)과 스웨덴의 C3 테크놀로지(C3 Technologies)를 연달아 인수한 바 있습니다. 2012년부터 네덜란드 내비게이션 업체인 톰톰과의 지도 공급 계약을 맺기도 했어요. 절정은 중국 디디추싱에 10억달러를 투자한 지점. 우버차이나를 밀어낸 디디추싱에 투자를 단행한 것은 결국 '데이터 확보'입니다. 유럽은 물론 중국에서도 3D 지도 데이터를 안정적으로 확보해 애플카 프로젝트에 대한 미련을 보인 지점입니다.

이미 구글어스 및 스트리트뷰로 지도 데이터에 관심이 많은 구글은 2004년 3D 지도 기술을 보유한 키홀(Keyhole)을 인수한 상태에서 2013년에는 이스라엘의 소셜 기반 GPS 기술 업체인 웨이즈(Waze)를 10억 달러에 인수하기도 했습니다. 구글 지도를 기반으로 성장한 차량공유 사업자 우버도 지난해 8월, 5억 달러를 투자해 전 세계 지도 구축에 나서겠다고 공표했어요. 구글과 묘한 신경전을 벌이는 와중에서 자체적인 역량 확보에 나선 배경입니다.

▲ 팹 2 프로. 사진=이코노믹리뷰 김기림 기자

"Z축을 인식하다"
3D 맵핑 기술은 현재 거론되고 있는 굵직굵직한 IT 인프라에 대부분 적용됩니다. 초연결 시대가 도래하며 생활밀착형 플랫폼이 각광을 받으며 말 그대로 오프라인과 온라인이 연결되고 있기 때문이에요. 이제 인류의 두뇌는 X축과 Y축을 넘어 Z축으로 뻗어갑니다.

이 지점에서 새로운 공감각 개념이 증강 및 가상현실, 나아가 자율주행차와 인공지능 및 로봇에 미치는 파괴적인 영향은 시간이 갈수록 거세질 것으로 보입니다. 3D는 새로운 시대의 훌륭한 도구이자 무기가 되고 있습니다. 네이버가 추구하는 기술 기반 플랫폼 기업의 비전에 에피폴라의 경쟁력이 어떤 위력을 발휘할까. 흥미로운 관전 포인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