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이 50여일 앞으로 다가 왔다. 수 차례 모의고사를 치르던 주자들은 이제 경선이라는 중간테스트를 통과해 본선에 진입하게 된다. 각 당마다 셈법이 다르고 국가 권력 구조에 대한 관점이 다르다. 자연히 국정을 운영해 나가기 위한 관점도 다를 법 하다.

그러나 이번 대선에서는 각 후보들의 정책 공약을 찾아보기가 매우 어렵다. 4차 산업 혁명에 대한 획일적 수용, 교육 개혁에 대한 애매한 수준의 공감, 약속을 지킬 수 있을 리 만무한 복지 공약 등이 난무할 뿐이다. 2012년 대선 때보다 무엇이 특별히 나아졌는지 파악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대통령 탄핵사태로 인해 다음을 준비하기 어려운 국면이라고 하지만 준비가 안돼도 너무 안 된 사람들을 국정 최고 지도자로 모셔야 하는 우리의 운명은 어떻게 봐야 할까.

누가 되더라도 다음 번 정부는 상당히 어려운 경제 상황을 목도해야 할 것 같다. 우선 경기가 너무 안 좋다. 경제성장률은 둔화되고, 민간소비는 감소세가 됐고, 가계부채는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는 상황이다. 2017년 호황 산업은 거의 없다시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박근혜 정부는 일련의 지표들이 나빠지고 있는 국면에서도 경제사령탑들이 이렇다 할 만한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평가를 자주 받았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을 제외하면 경제정책 과정에서 분명한 선(線)을 보여준 지도자가 많지 않았다는 비평이 관가와 재계에서 팽배하다. 국정의 최고지도자 역시 실물경제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가 없는 상태에서 ‘창조경제, 문화융성’을 앵무새처럼 외쳐댔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적어도 다음 대통령은 경제에 대해서 상당히 깊게 아는 사람이어야 할 것 같다.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전 대통령은 경제 이해도가 높은 지도자였다.

2017년 5월 대선에서는 각 캠프 별로 몇 가지 공약이 발표되긴 했지만 누가 이 사업들을 주도해 나갈 것인지 밑그림이 보이지 않는다. 문재인 캠프는 경제 원로들을 ‘10년의 힘’이라는 명목으로 규합하고 있으나 이들이 실제 정책을 주도해 나갈 만큼 열정이 있는지 미지수고, 안희정 캠프와 안철수 캠프는 그마저도 보이지 않는다.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 후보들은 탄핵 사태 이후를 변명하기에 급급하다. 대선주자가 명쾌하게 일자리, 복지, 금융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겠다는 말을 내놓지는 못하고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내가 그래서 대통령 하겠다는 것 아닙니까’ 식의 접근법을 취하고 있다. 지겹다. 그 표현은 옛날 박근혜 前 대통령도 무수하게 써먹었던 수사다.

대통령은 슈퍼맨이 아니라는 것을 이번 탄핵 사태를 통해 여실히 겪지 않았던가. 경제정책을 운영할 때 가장 현명한 방법은 제대로 된 사령탑 한 사람을 고르는 것이다. 다양성과 복잡성이 중요한 시대에 기획재정부 장관 한 명 뽑는 일, 경제수석 한 명 뽑는 일이 뭐 대수냐 할 수 있겠지만 정말 중요하다. 그 자리에 갈 후보군을 선정하는 작업도 차기 대통령의 몫이다. 미시와 거시를 폭넓게 아우를 수 있으면서 일 잘 하는 인물을 뽑아야 한다. 겉으로는 홍보가 잘 되지만 내부를 들여다 보면 ‘일 못한다. 게으르다’는 중평이 나 있는 박근혜 정부 장관들처럼 되어서는 안 된다. 저질러 놓고 책임 안 지는 사람, 경제수석으로 뽑아 놨더니 집사 역할에 충실하며 비리 핵심이 된 사람이 득실득실 했다. 김영한 비망록을 쳐다 보면 대통령은 마켓 트렌드 관련 책에서 봤을 법한 단어들을 읊는 데 바빴다. 사실상 대리(代理) 지도자였던 김기춘 전 비서실장은 노태우, 김영삼 때 장관과 국회의원을 역임하며 습득했던 경험과 지식을 ‘강의’식으로 지도편달하는 데 여념이 없었다. 제대로 된 캐비닛과 청와대가 될 리 없었다. 대통령 자신이 잘 모르면 전문가에게 제대로 위임할 줄 알아야 하고, 위임을 했으면 성과로만 판단해야 한다.

좋든 싫든 다음 대통령은 상당히 힘든 5년(개헌에 정치권이 합의한다면 3년)을 보내야 할 것이다. 특히 전략적으로 대처하기 힘든 위기가 여러 번 닥칠 것 같다. 이번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의 기저에도 경제 불황으로 인한 국민들의 불만이 누적되어 있다는 각계의 평가가 있다. 제대로 된 경제 운영을 하지 못하고 ‘말’만 하는 정치가 계속 된다면 또 다른 파탄이 예상된다. 당장 각 후보들이 앵무새처럼 마켓 트렌드를 따라가는 공약을 내 놓는 것을 보면 상당히 우려스럽기도 하다.

정치는 기류라고 한다. 수많은 대선 후보들이 그 기류에 붕 떠서 현실감을 찾지 못하고 있다. 촛불의 곁을 쬐고, 태극기 곁바람을 타고 정치에 임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그런데 그 기류보다 더 심각한 ‘퍼펙트 스톰’이 기다리고 있다. 이 사태를 대비하려면 제대로 된 대선 후 경제사령탑의 마련이 절실하다. 부디 제2의, 제3의 최순실이 뽑은 경제수석이 나오지 않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