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실리콘밸리는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만을 둘러싼 반도 초입 일대의 첨단기술 연구단지를 말합니다. "실리콘밸리는 지는 해"라는 말을 꽤 오래전부터 들었던 것 같은데 그곳의 태양은 24시간 뜨나 봅니다.

맞아요. 실리콘밸리는 이제 특정 지역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반도체에서 시작된 기술의 혁신 최전선. 그러니까 기술이 인류를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진 천재들의 집합체를 의미합니다.

그런데 최근 실리콘밸리의 기업들이 묘한 파열음을 일으키고 있어 눈길을 끕니다. 기술 및 서비스의 실패와 같은 핵심적 가치가 붕괴되는 소리가 들려요. 스타트업 거품이 빠지며 환상의 유니콘들이 저렴한 가격으로 기존 대기업에 인수될 것이라는 말까지 나옵니다. 테라노스의 비극도 그렇고, 의혹의 안개가 피어오르는 매직리프도 마찬가지며, 야후의 몰락과 트위터의 어정쩡한 스탠스, 마이크로소프트에 인수된 링크드인까지.

하지만 냉정하게 말해서 이는 '어쩔 수 없는 수순'으로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맞아요. 인생은 실전이니까요. 그런데 문제는, '차근차근 기술의 발전을 지향하며 나름의 성장을 거듭하는 실리콘밸리의 대표기업'들이 기술 및 서비스 외적인 영역에서 생각하지 못한 악재를 만나는 경우입니다. 예상하지 못한 악재를 말합니다. 고의든, 고의가 아니었든 그들의 한숨소리가 태평양을 건너 여기까지 들려오는것 같습니다. "이게 아닌데..."

 

내가 악질단체에 돈을 댄다고?
인터넷 세상이 펼쳐지며 많은 ICT 기업들은 풍부한 플랫폼 사업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장터를 열어주면 허가받지 않은 장사치들도 꼬이기 마련이에요.

테러단체의 선전도구로 사용된 케이스가 대표적입니다. IS를 중심으로 지구촌 테러경보가 발령된 가운데, 주요 테러단체들이 SNS를 통해 자신들을 홍보하고 조직원을 모으는 행태가 발견되어 논란이 일었습니다. 당장 페이스북과 트위터 등 주요 SNS 기업들이 지탄을 받았습니다.

논란이 커지자 페이스북과 마이크로소프트, 트위터와 유튜브 등은 고유한 디지털 지문을 통해 이미지를 식별하는 공유 데이터베이스를 생성, 이를 바탕으로 테러단체의 콘텐츠를 삭제하겠다는 뜻을 밝히며 진화에 나섰습니다. 하지만 완전한 믿음을 심어주는 것에는 실패하는 분위기입니다. 지금도 잊을만 하면 SNS를 이용한 불법 테러단체의 홍보 콘텐츠가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최근에는 유튜브가 이와 관련된 논란으로 맹폭을 당했습니다. 유튜브에 테러단체가 올린 콘텐츠에 자동으로 광고가 붙는 상황에서, 광고를 집행한 대기업들이 크게 반발했기 때문입니다. 유튜브의 광고정책은 콘텐츠 생성자에게도 일정정도 이윤이 돌아가는 방식이기 때문에, 테러단체 콘텐츠에 자사의 광고가 올라간 대기업들은 크게 반발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왜냐? 자신들이 집행한 광고비가 테러단체에 일부 지원되는 격이기 때문입니다.

당장 유튜브에 광고를 집행한 영국정부와 대기업, 대학, 비영리단체가 반발하고 나섰고 무려 250개의 대기업이 무기한 유튜브 광고중단을 선언했습니다. 통신사 AT&T는 유튜브의 구글이 확실한 재발 방지 대책을 내놓지 않으면 검색광고를 제외하고 모든 광고를 중단하겠다는 강졍책을 펴기도 했습니다.

지난해 3월 말레시아에서는 페이스북이 블랙마켓 플랫폼으로 활용되고 있다는 소식이 알려져 세상이 발칵 뒤집힌 적이 있었죠. 야생동물 불법 거래를 모니터링 하는 영국의 비영리단체 트래픽(TRAFFIC)에 따르면 말레이시아 페이스북에서 거래가 금지된 희귀 동물들과, 멸종 위기의 야생 동물들이 불법적으로 거래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트래픽 소속 연구자들은 5달이 넘는 기간 동안 14개의 페이스북 그룹을 하루에 30분씩 모니터링한 결과 페이스북에서 300마리가 넘는 희귀 야생동물이 ‘애완동물’로 거래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희귀동물들 중엔 멸종위기에 몰린 말레이곰, 긴팔원숭이, 사향고양의과의 빈투룡등이 포함되어 있었어요. 당장 페이스북은 성명을 통해 “우리는 트래픽과 협력해 말레이시아의 야생동물 온라인 밀매를 막기 위해 헌신할 것”이라며 “우리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야생동물 밀매를 조장하는 내용의 포스트를 삭제할 것”이라고 강조했지요.

▲ 블랙마켓으로 활용된 페이스북. 출처=캡처

"기업이 혁신이면 뭐하나, 내부가 엉망인데"
혁신적인 서비스로 온디맨드 업계의 신성으로 부상하고 있는 우버. 하지만 요즘 분위기가 심상치 않습니다. 각지에서 벌어지는 불법논란은 어차피 넘어야 할 산이라고 생각해도, 내부에서 벌어지고 있는 의외의 불협화음은 심각한 분위기에요.

지난 1월 트럼프 대통령의 반이민 행정명령이 떨어질 당시 이민자 중심으로 판을 짠 실리콘밸리 기업들은 큰 우려를 보였습니다. 하지만 우버는 약간 달랐어요. NBC 뉴스 등에 따르면 트럼프 행정부의 행정명령이 떨어지자 이에 반발한 뉴욕 택시 노동자 연대가 존 F. 케네디 공항에서 반대 시위에 나섰는데, 이런 상황에서 우버는 택시 이용이 어려워진 현지 사정을 악용해 요금을 올려 호객 행위를 했기 때문입니다.

▲ 출처=위키디피아

분노한 시민들이 SNS를 통해 '우버를 지워라'는 글을 공유하며 경쟁사인 리프트를 이용하자는 캠페인을 펼쳤고, 트래비스 칼라닉 CEO는 부랴부랴 "우버 기사들도 행정명령의 영향을 받은 사람이 많다"며 "택시 연대의 파업을 막으려 한 의도는 전혀 없었다"고 해명 했습니다. 나아가 트래비스 칼라닉은 황급히 트럼프 경제자문단에서 탈퇴하기에 이르렀지요. 하지만 이미 물을 엎질러진 후였습니다.

우버 전 직원이던 수전 파울러의 성추행 폭로도 나왔죠. 우버의 실적주의가 조직을 갉아먹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강압적인 성추행이 있었다는 충격적인 발언입니다. 여기가 끝이냐고요? 아닙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논란은 현재 진행형입니다. 제프 존스 사장은 사퇴했고 핵심임원들은 줄줄이 회사를 나갔습니다. 기업이 혁신적이면 뭐합니까. 내부가 엉망인데.

지금은 잠잠해졌지만 구글의 모회사 알파벳의 인력유출도 이슈였죠. 알파벳 경영진과 잦은 충돌을 빚었던 토니 파델의 퇴사 후 지난해 7월 최고인적자원책임자인 라즐로도 회사를 떠났습니다. 또 구글의 기술 책임자이면서 구글 자율주행자 전 디렉터인 크리스 엄슨도 나갔고 약 300개 스타트업을 대상으로 24억달러(약 2조6000억원) 투자를 주도해 막대한 이윤을 남긴 투자의 전설, 빌 메리스 GV(구글벤처스) 창업자의 퇴사도 눈길을 끌었습니다. 최근에는 구글의 웨이모에도 인력이탈 러쉬가 있었죠.

이들이 알파벳을 떠난 이유는 명확하게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몸집이 커지면서 관료화된 조직에 염증을 느낀 자유로운 천재들이 속속 알파벳을 떠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 토니 파델. 출처=픽사베이

"아! 정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되면 실리콘밸리가 어려울 것이라는 것은 누구나 예상했을 겁니다. 그리고 언제나 슬픈 예감은 틀리는 법이 없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 테크서밋을 열어 실리콘밸리 기업들과 스킨십을 강조하나 싶더니, 이내 강경 일변도로 돌아서 눈길을 끕니다.

반이민 행정명령은 전초전에 불과했어요. 자국기업은 자국에, 외국기업도 장사를 미국에서 한다면 미국에 공장을 두어야 한다는 막강한 보호 무역주의의 등장으로 실리콘밸리 기업들은 큰 고민에 빠졌습니다. 구글은 집회도 열었고, 각 CEO들은 노골적으로 트럼프 행정부와 날을 세웠습니다.

또 반독점, 잊혀질 권리 등등. ICT 기업 입장에서 자극적이고 치명적인 소재들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유럽연합은 왓츠앱 인수 당시 반독점 규정을 위반한 혐의로 페이스북에 벌금폭탄을 준비하고 있으며 유럽과 구글의 전쟁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가짜뉴스가 범람하며 이에 대한 책임을 ICT 기업에 지우는 행보도 감지되고 있어요.

▲ 구글 행사. 출처= 캡처

"그들의 위기, 그 이면의 행간을 읽어라"
페이스북을 통해 생중계된 성폭행 동영상과 살인사건. 백도어 논란을 둘러싼 치열한 논쟁과 CIA의 정보탈취 논란까지. 기술이 발전하며 이를 인류의 진보로 체화한 실리콘밸리의 앞에 놓인 험난한 산맥입니다. 이러한 고민들은 기술의 발전으로 인한 필연적인 현상으로 여겨지지만, 기업 입장에서는 다소 억울할 수 있는 지점이기도 합니다. "내 기술과 상품은 끝내주게 만들 수 있어! 그런데 이런 문제들은 어떻하라고!"

사실 유튜브의 테러단체 광고 논란은 플랫폼 사업자인 구글과, 이에 종속된 콘텐츠 기업의 신경전이라는 주장도 나옵니다. 나아가 인력유출도 조직적인 문제가 아닌, "새로운 기회를 잡으려는 괴짜들의 모험"으로 이해하는 분위기도 있지요.

하지만 잔혹사는 잔혹사입니다. 순수한 기술과 서비스로 승부하는 것이 아닌, 기업이 커지며 영향력이 확대되자 자연스럽게 부상하는 내외부적인 리스크. 어쩌면 이 문제는 실질적인 비즈니스 모델만큼 중요한 현안일 수 있습니다. 그들의 행보를 팝콘 먹으며 흥미롭게 지켜보렵니다.

[IT여담은 취재과정에서 알게된 소소한 현실, 그리고 생각을 모으고 정리하는 자유로운 코너입니다. 기사로 쓰기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한번은 곰곰히 생각해 볼 문제를 편안하게 풀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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