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인양으로 모든 지면이 뒤덮인 3월 23일자 온라인 뉴스 한 구석에서 황당한 기사 하나를 발견했다. ‘중국, 안중근 의사 추모식 축소’. 중국 라오닝성 다롄시 뤼순에서 개최 예정인 안중근 의사 추모식(3월 26일)을 앞두고 중국 정부가 돌연 행사 축소를 요구했다는 내용이다. 바로 전날, 한국 국방부는 대한민국을 침략했던 중국군 유해 28구를 중국에 인도했다. 국방부는 송환식 행사까지 열어 정중하게, 최대한 예우를 갖춰 넘겨줬다. 결국 중국은 주는 건 받고, 하던 짓은 계속 한다는 식이다. 치졸한 일이다.

중국은 덩치가 크지만 매우 이기적이며 속 좁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중국 공산당 정부가 원래 그런 식이라고 꼬집을 정도다. 괘씸하다고 보는 국가들을 겨냥해 반감을 부추기고, 상품 불매운동을 조장하며, 정부 입김에 의해 움직이는 관영 언론들을 내세워 거친 독설을 싣고, 중국 당국들이 나서 해당국 기업들을 괴롭히는가 하면 중국 관광객의 여행을 중단시키고, 심지어는 어린이들을 시위와 불매운동에 동원한다는 것이다. 다만 이번에는 한국 차례였다는 얘기다.

물론 중국 정부는 반한 시위와 정부 당국의 한국 기업에 대한 가혹한 조치들이 단순히 중국인들의 여론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둘러댄다. 눈 가리고 아웅 식이다. 외국 언론들조차 중국에서는 당 지도부가 불편해하는 적들을 상대로 벌어지는 관제 시위를 제외하고는 시위 자체가 금지돼 있다고 지적한다.

중국도 나름 내세우는 이유가 있긴 하다. 미국의 레이더망이 중국 군사시설을 감시하게 될 것이란 우려다. 한국에 배치된 사드가 중국이 발사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요격하는 능력까지는 갖추지 않았지만 레이더 시스템은 문제가 된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미국은 카타르와 대만에 중국의 미사일 실험을 주시하는 레이더 시스템을 갖고 있다. 일본에도 두 개의 레이더 시스템이 있다.

그럼에도 중국이 사드보복을 지속하고 있는 이유는 두 가지로 보인다. 첫 번째 이유는 국제정치적 파워가 부족한 가운데 아시아 지역 내 정치·경제적 패권을 장악하기 위해 주변국 길들이기 목적이다. 두 번째는 중국이 5월 대선에서 선출될 한국의 차기 대통령이 사드 문제에 양보토록 미리 압박하겠다는 속셈이다.

우리의 대응은 국제적인 여론을 동원한 대중국 압박에서 시작하는 것이 맞다. 특히 WTO 규정 위배 여부를 집중 공략하는 것은 유효한 전술이다. 사드 부지를 제공한 롯데를 집중적인 목표로 삼아 이 회사가 중국에서 운영하는 99개 점포 가운데 87개 점포에 영업 중지 조처를 내린 것은 세계무역기구(WTO) 규정에 위배될 수 있다는 해외전문가 분석도 여럿 있다.

실제로 중국은 우리 정부가 WTO 서비스 이사회에 중국의 관광·유통 분야 조처에 대해 WTO 협정 위배 가능성을 정식 제기하고 중국 측이 의무를 준수해달라고 요구한 것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했다. 겉으로는 WTO 규정과 관련 약속을 지키고 있다고 강변하지만, 국제사회에서 설득력을 얻지 못했다. 직접적인 증거는 없더라도 개연성은 충분하므로 WTO 등 국제사회에 지속적으로 중국의 잘못된 처신을 지적해야 한다.

우리 정부도 중국을 공격할 비장의 무기를 갖지 못한 것은 아니다. 중국은 2001년 WTO에 가입했다. 하지만 당시 가입조건이 향후 15년간 ‘비시장경제국가’(Non-Market Economy) 지위를 유지한다는 것이었다. 이는 중국 경제체제가 시장이 아니라 국가 주도로 움직인다는 판단 때문이다. 이럴 경우 반덤핑 판정 시 중국 제품은 저렴한 중국 내 가격을 인정받지 못한다. 그보다 비싼 제3국의 가격을 기준으로 덤핑 여부를 심사한다. 이렇다 보니, 중국은 늘상 WTO 회원국들로부터 반덤핑 제소를 당하면서 ‘덤핑국가’라는 낙인이 찍혀 왔다.

이제 그 족쇄의 만기가 도래한 상태다. 그렇지만 미국을 비롯해 일본, EU 등이 이를 반대한다는 입장이다. 한국은 서둘러 중국의 시장경제국가 지위를 인정해준 상황이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중국이 지금처럼 눈 가리고 아웅 식의 ‘실질적’ 규정위배 행위를 지속할 경우 우리 정부도 중국에 대해 ‘시장경제국가 지위 불인정’ 쪽으로 선회할 필요도 있다고 주장한다.

어찌됐든 중국의 사드보복이 확산되기는 어렵다는 지적도 잇따라 나온다. 한국이 중국에 수출하는 소비재는 전체 무역 규모의 5%에 불과하며, 중국에서 제조되는 TV 수상기, 핸드폰 등에 들어가는 집적회로의 25%는 한국산이고, 중국은 한국의 원재료와 부품, 장비 등을 수입해 가공수출을 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2300년 전 중국인 맹자가 이런 말을 했다. “부끄러운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며,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은 옳음의 극치이다(無羞惡之心 非人也, 羞惡之心 義之端也).” 맹자가 인간의 선한 본성이라고 말한 ‘수오지심’을 스스로 대국이라 일컫는 중국의 언행에서는 찾아볼 길이 없다.

그런 덩치 큰 군사‧경제대국을 머리 위에 이고 있는 만큼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파이낸셜타임스>는 “대선에서 누가 이기든 당선자는 중국의 경제 압력에 굴복해 일방적으로 사드 문제에 양보한다면 실책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조공국으로 전락하지 않으려면 귀담아 들어야 한다. 지금은 무엇보다 결기와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