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복 입기 열풍이 시작된 2014년 이후로 매년 한복의 진화는 현재진행형이다.

2016년도에는 다양한 한복 브랜드에서 폭넓은 소재의 옷감을 사용해 제작한 한복을 출시했다. 차이 김영진 한복은 일찍이 리넨이나 리버티 원단을 이용해 한복을 지었다. 단아한 전통한복으로 잘 알려진 ‘담연’ 한복에서도 오간자, 레이스와 같은 재질로 저고리를 지어 색다른 한복의 느낌을 완성했다. 최근 몇 년 새 남성 생활한복으로 유명세를 타고 있는 ‘천의무봉’의 경우 위에 언급한 옷감들과 니트 원단 등으로 신축성 있는 당의핏 저고리와 코트를 선보였다. 독특한 스타일의 한복을 이야기하면 한복을 빈티지 패션으로 해석하는 ‘이노주단’을 빼놓을 수 없다. 스펀지밥 프린트의 저고리와 흰색 한복치마, 여기에 빨간 스타킹을 함께 코디한 모습은 한복의 특성을 그대로 가지고 있으면서도 재치와 유머가 넘쳤다. 보기만 해도 행복하고 아름다운 한복계의 다양한 결과물들은 많은 이들로 하여금 한복 산업과 전통문화계의 확장, 발전을 점치게 했다.

그러나 패션 업계의 고질적 관행은 한복 산업계에 그대로 나타났다. 전통한복을 오랜 기간 지음으로써 전통과 현대의 시대적 흐름, 변화에 맞는 한복을 치열하게 고민하고 연구해온 디자이너들과는 달리, 돈이 된다는 이유로 무조건 카피해 판매하는 업체들이 줄지어 나타난 것이다. 언뜻 보면 비슷한 형태와 모습이지만 옷감이나 바느질, 옷의 핏 등 두 번 입기 힘든 정도의 질 낮은 상품이 ‘한복’이라는 이름을 걸고 시장에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아직 세분화되지 못한 디자인 저작권의 영역은 매우 협소해 디자이너들의 재산권을 지켜주지 못했다. 법적인 기준의 애매함을 파고든 이후, 상도덕 같은 것들은 아무도 들춰보지 않는 유물이라도 된 것 같았다. 하루가 멀다 하고 기존 한복 디자이너들이 연구 개발한 한복 디자인과 배색, 스타일을 그대로 카피해 더 낮은 가격으로 판매하는 상품들이 인터넷에 올라왔고 유명세를 탔다. 그것을 지적하는 한복 디자이너와 구매자들은 오히려 비난을 받았다.

전통한복을 주로 제작하는 ‘한복린’에서는 작년, 아이들을 위한 ‘깔롱바이린’이라는 브랜드를 론칭했는데 움직임이 많은 아이들이 편하게 입을 수 있도록 재미나고 다양한 시도를 했다. 실용성과 활용성을 극대화한 리넨, 자수 원단, 패브릭 같은 재질을 다양하게 사용하는 것은 물론 전통 속옷 중 하나인 ‘단속곳’에 힌트를 얻은 상품은 치마바지와 같은 형태이지만 어른인 필자가 입고 싶을 정도로 편해 보였다. 단순히 원피스 형태로 만들어 판매하고 있는 기존의 저렴한 성인 생활한복에 비해 밴딩과 단추로 치마 길이와 사이즈를 조절할 수 있도록 디테일에 신경 쓴 모습은 인상적이다. ‘차이 김영진’의 세컨 브랜드인 ‘차이킴’은 작년, 방수 원단을 사용한 철릭원피스, 트위드 소재의 액주음포 제품을 출시했다. 양털처럼 포실한 니트 소재로 만든 순천 김씨 저고리 재킷은 이미 한복이 아니라 하나의 스타일이었다. 적당히 돈 될 만한 상품을 적당히 만들어 판매하는 수많은 업체들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모습이다.

 

대충 팔릴 만한 것을 만들어 소비자에게 내놓은 모습과는 확연히 다르다. 무거운 이념과 복잡한 가치를 담아, 생각만 해도 머리에 쥐가 날 것 같은 느낌을 옷에 투영하라는 것이 아니다. 단지 어떤 업계에 몸을 담고 있다면, 더군다나 시장을 형성하는 한 사람이라면 끊임없는 통찰과 자기반성, 그리고 공부가 필요하다. 단순히 만들어 팔면 그만이 아니라는 의미다. 아무 생각 없이 카피해 판매하면, 아무런 배경지식 없이 그것을 만나는 소비자는 그저 그런 단면을 보고 산업 전체를 판단하게 된다.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이득이 될 리 없다. 어쩌면 한복산업에 대해 누군가는 열심히 노력해 새로움을 만들어내지만 또 다른 이는 그 새로움을 계속 받아 쓰기만 하는 것 같아 보인다. 결국 끊임없는 이미지 소비는 소비자들로 하여금 지루함과 식상함을 안겨줄 뿐이다.

아무리 일상 속의 옷, 패션 속의 옷이라고 부르짖으면 뭐하겠는가, 그렇게 말하면 마치 최근 유행하고 있는 한복계의 흐름을 선도하는 것 같은 착각이 들겠지만, 그 안에는 텅 비어버린 허울 좋은 스타일만 있는 것을. 자신이 판매하고 있는 상품의 출발점이 ‘한복’이라면 책임감을 가질 필요가 있는 것이다. 전통이나 문화 같은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면 더더욱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