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창기의 사진에서 재현의 문제는 이미지가 생성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그 속도가 너무 느리다는 데 있었다. 사진의 밝기를 조절하는 장치에는 조리개, 셔터, 감도가 있는데 조리개와 셔터 장치가 발전하기 이전에는 오로지 감도가 이미지 생성의 핵심이었다. 빛을 받아들이는 속도가 낮으면 촬영하는 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기에, 이 속도를 높여 노출시간을 줄이는 것이 초기 카메라의 관건이었다. 정확히는 카메라 메커니즘, 즉 기계공학적 차원에서 해결해야 할 것이 아니라 화학적 차원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였다.

요즘 처음 카메라를 배우는 대부분의 사람은 디지털카메라를 사용한다. 필름카메라가 쓰이지 않는 것은 필름을 넣어 찍는 것이 불편하기도 하지만 필름의 공급이 줄었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그냥 카메라라고 알아왔던 장비들이 앞에 ‘필름’이란 접두사를 붙이지 않으면 안 되는 지경까지 시간이 흘러버렸다. 간혹 아이들에게 필름카메라를 보여주면 카메라 뒷면을 보면서 ‘찍은 것 어떻게 봐요?’라고 한다.

‘필카’ 시절에 감도(ISO)는 카메라의 성능이 아닌 오로지 필름의 성능이었다. 필자가 사진을 배우던 시절 사진잡지에는 후지필름에서 나온 감도 200의 필름을 광고하면서 자동카메라용이라고 홍보했다. 흔히 똑딱이 카메라라고 하는 자동카메라는 일안반사식(SLR) 방식의 카메라에 비해 보통 조리개 값이 어둡기 때문에, 보다 높은 감도의 필름을 사용하는 것이 흔들림이 없는 촬영에 유리했다. 후지 오토오토 필름은 이후 감도 400의 필름도 판매했다.  

▲ 지금은 생산하지 않는 미국 코닥(Kodak)의 필름들. 필름 겉면의 숫자가 그 필름의 감도(ISO)이다.

감도가 높아질수록 어두운 환경에서 적당한 노출을 확보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는데 문제는 입자가 거칠어진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고운 입자가 필요한 광고 사진가들은 조명과 삼각대를 이용해서 부드러운 이미지를 주로 만들었고 현장에서 스냅숏 방식으로 빨리 촬영하는 기자나 다큐멘터리 작가들은 보다 높은 감도의 필름(주로 감도 400인 코닥의 트라이-엑스(Tri-X) 필름이 사랑받았다)을 사용해 거친 입자임에도 보다 흔들림 없는 사진을 만들 수 있었다. 때로는 감도 400이 부족하면 증감현상(Push Processing)이라는 현상기법을 활용해 1600이나 3200의 감도로 올려 사용할 수도 있었다. 물론 셔터스피드를 더 올리는 대신 거친 입자가 따라오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런 이미지들은 주로 실내나 어두운 밤의 거리사진에서 많이 볼 수 있었는데 거친 입자가 그런 풍경과 꽤 잘 어울려 보였던 것 같다.

지금의 카메라는 앞에 ‘디지털’이란 접두어를 붙이지 않더라도 대부분이 디지털카메라다. 디지털카메라는 처음에는 필름을 사용하지 않고 메모리 카드에 저장돼 컴퓨터로 바로 이송된다는 점이나, 찍은 사진을 카메라 뒷면에 달린 액정 화면으로 바로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부각됐다. 지금도 필름카메라에 비하면 그것이 큰 장점이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디지털카메라의 가장 큰 장점은 감도에 있다고 본다. 그러니까 상황에 맞추어 감도를 조절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 감도가 시간이 지나 기술이 발전할수록 이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경지’까지 올라가 버렸다는 것에 있다.

디지털카메라도 초기에는 감도를 1600정도까지 올릴 수 있었다. 그러나 감도100에 비해서 화질은 눈에 띄게 저하됐다. ‘컬러 노이즈’라는 현상인데 입자가 거칠다기보다는 픽셀이 뭉개지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또한 색감도 떨어져서 감도를 높이면 칙칙하게 색이 변했다. 그런데 디지털카메라는 카메라 이전에 0과 1로 이뤄진 디지털 세상의 제품이었다. 해가 다르게 발표되는 카메라마다 최고 감도가 올라갔다. 필름 시절 감도 3200은 올릴 수 있는 감도의 저 극단에 있는 숫자였다. 최근 발표된 니콘의 D5 카메라는 최고 감도가 10만2400이다(필자는 처음에 0을 하나 빼고 읽었다). 3200의 ‘극단’에서부터 무려 5스탑이 더 올라간 것이다(1스탑 올릴수록 빛의 양이 두 배가 되는 것과 같은 효과). 현재까지 그런 초고감도의 카메라들은 주로 올림픽과 같은 스포츠 사진에서 두각을 나타낸다. 육상경기나 수영경기에서 빠르게 움직이는 선수들을 낮이 아닌 야간이나 실내경기에서도 세밀화로 그린 것과 같은 정지화면을 만들어 낸다. 혹은 어스름한 저녁 먹이를 사냥하는 맹수의 움직임도 조금의 떨림이 없는 순간포착 화면이 된다.

필름이 센서로 대체되면서 카메라에서 화학의 역할은 완전히 사라졌다. 이전의 기술이 사라지는 것에는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았지만 그 자리를 대체하고 다시 대체하는 속도는 너무나 빠르다. 그 기술들 즉 테크놀로지가 보여주는 경이로운 장면들은 이전에 볼 수 없었던 것을 더 분명하게 보여준다. 반면 너무 빠른 속도는 우리의 눈이 ‘멋진 그림’에 무감각해지게 만들었다. 이미지를 생산하는 이들은 앞으로 이미지 소비자들의 이런 무감각과 경쟁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