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튜어드십’은 영국 성의 식당에서 음식을 나르며 저녁 만찬을 준비하는 등 하인의 의무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이후 집안일의 대부분을 담당하는 집사의 개념으로 확대됐으며 더 나아가 산업 전반에서는 고객들의 서비스 요구에 대응 및 책임의 수용 개념으로 일반화됐다.
기관투자자의 적극적인 의사결정을 유도하는 ‘스튜어드십 코드’는 지난 2010년 영국에서 처음 도입됐다. 그 어원을 보면 기관투자자들이 왜 이 제도를 받아들여야 하는지 분명해진다.
스튜어드십 코드가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국민연금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실제로 영국, 일본 등에서는 공적연금이 선두적으로 스튜어드십 코드에 가입하고 여타 기관투자자들이 이를 뒤따르는 선순환 구조를 이루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분위기에 휩쓸려 국민연금이 스튜어드십 코드 규정을 따르게 되면 자산운용사 등에게 사실상 강제적 성격을 띨 수 있다. 스튜어드십 코드의 가장 큰 장점은 법적 강제력이 없는 연성규범이라는 점이다.
과거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에 반대하는 쪽의 주장은 규제에 따르는 인력 충원, 내부통제 시스템을 갖추기 위한 비용 측면에서 결국 투자자에게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스튜어드십 코드가 지닌 연성규범의 특징인 규제에 따른 비효율 최소화 등의 측면에 부정적일 수 있다.
스튜어드십 코드, 지속가능경영을 위한 약속
스튜어드십 코드는 기관투자자의 수탁자 책임을 강조하는 것이다. 이러한 수탁자의 책임은 해마다 변해왔는데 지난 2008년 금융위기 이후에는 기관투자자가 주주로서 기업경영에 관여하고 의결권을 보다 적극적으로 행사해야 한다는 데 무게가 실렸다.
스튜어드십 코드를 제일 먼저 도입한 영국은 2008년 금융위기의 책임이 기관투자자의 단기투자성향에 있다며 이들의 장기투자를 유도해 위험성을 줄이는 데 초점을 뒀다. 일본은 2014년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하고 ‘잃어버린 20년’을 극복하기 위한 방안 및 자본생산성 향상을 중점에 뒀다.
이에 비해 한국은 기업의 지배구조와 경영상의 문제 등에 있어 기관투자자들이 감시자의 역할을 해야 한다는 취지로 출발했다.
나라마다 그 취지는 달라 보이지만 각국의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한 목적은 ‘단기’가 아닌 ‘장기’의 관점에서 투자한 회사의 지속가능한 성장, 중장기 투자수익 보호, 자본시장의 지속적 발전으로 모아진다.
따라서 스튜어드십 코드 자체도 재벌 기업들의 반감 등에 기인해 감정적이고 막무가내로 추진돼서는 안 된다. 그 근본적 목적은 ‘지속가능경영’을 위함이며 지배구조개선은 지속가능경영을 위해 뒷받침돼야 하는 요인이기 때문이다.
스튜어드십 코드 7개 원칙이 지키기 어려운 내용이 아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단타매매에 몰두했던 기관투자자의 입장에서 이를 지키기란 상당히 어렵다. 또 기업에 목소리를 높이며 문제 해결을 요구한 기관투자자도 전무하다. 이를 보면 장기투자를 지향한다는 금융투자업계의 말은 거짓으로 들린다.
스튜어드십 코드는 기관투자자에게도 장기투자를 지향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게 된다. 기관투자자가 투자대상 포트폴리오를 변경하기보다는 해당 기업의 문제점을 제시해 개선하고 기업과 투자자가 윈윈(Win-Win)하는 것이다.
이는 국민연금 입장에서도 긍정적이다. 500조원에 달하는 자금을 운용하기 위해 매번 새로운 투자처를 발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발전 가능성이 높은 기업의 비효율성만 줄이더라도 수익성 안정에 기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스튜어드십 코드는 ‘누가 먼저 나서야 한다’는 개념이 아니다. 기관투자자는 고객 투자금의 수탁자로서 그 의무를 충실히 하고 기업 경영의 효율성을 높인다. 또 기업은 기관투자자와 충분한 대화를 통해 조력자로서 그들을 받아들여야 한다. 즉 모두가 함께 나서야 하는 것이다.
그만큼 스튜어드십 코드가 국내 자본시장의 건전한 밑거름이 될 수 있도록 모든 주체가 힘을 합쳐야 한다. 이는 결코 ‘잘못된 것’을 지적하기 위함은 아니기 때문이다.
스튜어드십 코드, 한국 증시에 한줄기 빛 될까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 이후 불거질 이슈는 국내 기업들에 대한 외국계 헤지펀드의 공격이다.
남기윤 동부증권 연구원은 “해외 행동주의 투자자 입장에서 국내 기업의 포커스 리스트는 대기업 집단이 될 것”이라며 “우리나라 대기업은 견제와 균형이라는 자본주의 원리에 노출되지 않았고 외국인이 대기업 집단의 지분을 많이 보유하고 있는 데 반해 최대주주는 상대적으로 지분율이 낮은 편”이라고 설명했다.
대주주의 지분율이 낮은 만큼 행동주의 투자자들이 활동하기 쉽다는 것이며 그만큼 국내 대기업들의 지배구조가 탄탄하지 못함을 말한다. 현재 국내 그룹사들의 지배구조 개편이 한창인 가운데 약점은 더욱 드러나기 마련이다.
반면,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이 증시에 활력을 불어넣을 것이란 견해도 많다. 가까운 일본의 경우 지난 2014년 2월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 후 작년 말 기준 총 214개의 기관투자자가 참여했다. 기관투자자들의 활발한 주주활동에 힘입어 일본 기업들은 자사주 매입, 배당 확대 등 주주환원정책을 적극적으로 펼침에 따라 주식시장으로의 자금이 유입됐다.
한편, 코스피 증시는 지난 2011년 이후 여타 주요국 증시와는 다르게 박스권을 탈피하지 못하고 있다. 그 이유로 가장 많이 지적되는 부분 중 하나가 국내 기업들의 불안정한 지배구조다.
최근 코스피 증시는 본격적으로 박스권을 탈피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물론 대내외 불안한 요인들로 인해 코스피가 추세적 상승을 보일 수 있을지 의문이다. 그러나 스튜어드십 코드를 통해 한국 기업들의 지속가능경영과 발전이 이뤄진다면 한국 증시의 긍정적 전망을 기대할 수 있다. 스튜어드십 코드는 기업과 기관투자자 그리고 고객의 ‘믿음’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