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대한상공회의소

연기금 등 주요 기관투자자가 기업 의사결정에 적극 참여하도록 유도하는 의결권 행사지침인 스튜어드십 코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이는 한국 기업들의 지배구조 및 경영의 투명성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상당히 중요하다. 또 국내 기업들의 지배구조 문제는 그간 한국 증시의 디스카운트 요소로 지목됐다는 점에서 스튜어드십 코드의 활성화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전망이다.

그러나 행동주의 투자자들이 스튜어드십 코드를 등에 업고 국내 기업들을 ‘약탈’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우려’도 반드시 씻어 내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스튜어드십 코드는 선택이 아닌 필수다. 이를 통해 기관투자자들은 기업의 지속가능경영을 도모하고 투자자들과의 믿음을 다져나가야 한다.

스튜어드십 코드가 도입됐지만 기관투자자들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하지만 기관투자자들은 고객의 투자금을 받은 수탁자다. 이를 생각하면 눈치를 볼 이유가 없다. 이 시대의 투자자들은 ‘투명성’을 원하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으로 외국계 헤지펀드들의 국내 기업들에 대한 공세가 강화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분명한 것은 국내 기업들이 지배구조 개편 및 주주권리 강화 등을 위해 더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헤지펀드의 ‘공격’ 우려는 핑계에 불과하다.

기관투자자의 적극적인 의사결정을 유도하는 스튜어드십 코드가 지난해 12월 19일 시행됐다. 하지만 스튜어드십 코드에 가입한 기관은 없다. 법적 구속력 등 강제성이 없는 탓에 일부 운용사들이 참여 의사 정도만 밝힌 상황이다. 그렇다면 스튜어드십 코드를 선택의 문제로 남겨야 하는 것일까.

2000년대 들어 전 세계적으로 기업지배구조의 질적 향상을 위해 주주 관점에서 논의가 확대되기 시작했다. 고객으로부터 투자금을 수탁받은 기관투자자가 고객에 대해 수탁자로서 신인관계에 근거한 수탁자 책임을 이행하는 문제가 관심의 대상이 된 것이다.

한국도 일반인들의 펀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었으나 당시는 오로지 수익률에 대한 관심이 높았을 뿐 기업지배구조 등은 생소한 단어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소버린 사태’는 기업지배구조와 경영투명성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지난 2003년 SK그룹의 경영진은 검찰 수사 및 재판을 받고 있었다. SK글로벌이 1조5000억원에 이르는 분식회계를 한 사실이 적발됐으며 JP모건과 옵션 이면계약 체결을 통해 회사에 1000억원 이상의 손해를 끼친 배임행위 혐의를 받았기 때문이다.

이에 SK(주)에 대한 매도 공세가 이어졌고 주가는 연일 곤두박질쳤다. 그러나 모두가 주식을 파는 상황에서 크레스트증권(소버린자산운용의 100% 자회사)은 SK(주)의 주식을 오히려 대량으로 사들이고 있었다.

최종적으로 크레스트증권은 SK(주) 지분 14.99%를 보유해 1대 주주가 됐으며 당시 최태원 회장 일가의 직접 지분은 1.39%에 지나지 않았다. 이후 크레스트증권은 SK(주)를 한국에서 기업 지배구조의 모델 기업으로 바꾸도록 경영진과 건설적으로 작업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크레스트증권은 2005년 6월 주식 보유목적을 ‘경영참여’에서 ‘단순투자’로 바꿨고 한 달 후 주식을 전량 처분했다. 약 2년 3개월의 투자기간 동안 주식매매 차익과 배당금, 환차익은 모두 9000억원에 이른다.

이 사건으로 국내에서는 해외 자본에 대한 경계심이 높아지고 헤지펀드는 ‘하이에나’와 같은 약탈자로 묘사되기 시작했다.

 

왜 헤지펀드는 하이에나인가

소버린 사태는 헤지펀드가 국내 기업을 공격해 수익을 챙겼다는 점에서 헤지펀드가 국내 투자자들에게 좋은 기억으로 자리 잡기 어렵다. 특히 주식 보유목적이 바뀌고 차익을 노리는 등 초기의 약속과는 전혀 다른 행동을 보인 것이 그 원인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헤지펀드가 공격을 할 수 있는 빈틈을 제공한 것은 기업 측이다. 당시 SK그룹의 지배구조가 우수했다면 이러한 사태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란 뜻이다.

또 헤지펀드뿐만 아니라 모든 펀드의 최종 목적은 최고의 수익이라는 점에서 ‘저평가’라고 판단되는 자산을 매입하는 것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다만, 헤지펀드는 일반펀드 대비 전략 자체가 조금 더 공격적이고, 특히 이슈를 만들어 시장의 관심을 끌어 모으는 등 다양한 전략을 구사한다는 점이 다르다.

한편, 이러한 투자방식을 ‘행동주의 투자’라고 부르기도 한다. 지난 2015년 구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과정에서 미국계 헤지펀드인 엘리엇매니지먼트는 구 삼성물산의 주식을 기습적으로 사들여 우리를 놀라게 했다. 이뿐만 아니라 ‘기업 사냥꾼’ 칼 아이칸이 KT&G의 경영권을 위협했던 사건도 있었다.

이 사건들의 공통점은 ‘경영권’ 측면에서 빈틈이 있는 기업들이 헤지펀드의 표적이 됐다는 점이다. 헤지펀드의 기본 투자전략은 ‘가치투자’에 있다. 여기서 자신들이 원하는 수익을 달성하기 위해 특정 행동을 하는 주체들은 ‘행동주의 펀드’라 불린다. 정확히 말하면 헤지펀드는 전통 가치투자의 진화된 형태라고 할 수 있으며 행동주의 펀드 또한 가치투자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렇다면 ‘왜 헤지펀드는 하이에나인가’에 대한 물음에 섣불리 대답하기 어렵다. 이들이 우량한 기업을 ‘약탈’했는가. 그래서 정부와 금융당국이 손도 못 쓰고 국익을 빼앗기는 상황을 넋 놓고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가.

한 헤지펀드 매니저는 “기본적으로 헤지펀드는 상대적 가치의 괴리를 노리기 때문에 ‘틈’이라는 것이 상당히 중요하다”면서도 “시장에 미치는 요인이 많아 이 ‘틈’만 노리고 들어가는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경제는 물론 정치·문화 등 다양한 요소를 고려해 투자전략을 짜게 되는데 행동주의 펀드는 ‘보유하고 있다’ 등의 직접적인 표현을 통해 투자부터 회수까지 걸리는 시간을 단축시키는 것이 주 전략”이라고 설명했다.

일반적으로 펀드들은 자신이 투자한 대상을 숨기기 마련이다. 자신의 포지션이 노출될 경우 이를 노리는 또 다른 성향의 펀드들로부터 공격을 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헤지펀드는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이러한 충격을 상쇄하기 위한 전략을 짠다. 더 나아가 행동주의 펀드는 자신의 포지션을 과감히 노출함은 물론 시장에 자신들의 행동을 설득시키려 한다.

그만큼 행동주의 펀드도 ‘포지션 노출’이라는 리스크를 감수하는 것이며 이는 큰 틀에서 또 다른 전략인 셈이다.

일각에서는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으로 외국계 헤지펀드들이 국내에서 더 활발히 활동하게 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러나 스튜어드십 코드의 목적은 기관투자자의 적극적인 의사결정을 통해 고객의 자산을 보호하고 기업가치 저하 등의 문제를 야기하는 사건에 효율적으로 대응하기 위함에 있다.

스튜어드십 코드의 도입으로 외국계 헤지펀드들이 활동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국내 상장기업들의 비효율적인 의사결정을 방증하게 되는 것이며 분명히 개선돼야 하는 사안이다. 또, 기업은 상장을 통해 ‘기업공개’(IPO)를 하는 만큼 주주들과 시장의 의견을 충분히 받아들일 의무가 있으며 이를 통해 주주환원 및 이익극대화를 추진해야 한다. 헤지펀드를 ‘하이에나’로 묘사하며 기피의 대상으로 삼을 것만은 아니다.

즉, 스튜어드십 코드는 경영의 불편함 혹은 선택의 대상이 아닌 기업의 긍정적인 발전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