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정부와 채권단이 대우조선해양에 2조9000억원대의 신규자금을 투입하는 방식의 자구안을 내놓았다. 신규자금을 투입하는 조건으로 금융채권자와 사채권자들에게 대우조선 대출금의 출자전환, 대출기간 연장에 대해 합의해줄 것을 요구했다.

산업은행이 제시한 조건으로 우선, 일반채권자들이 보유하고 있는 2019년까지 만기 도래 회사채와 CP(1조5500억원)의 50%는 출자전환하고 나머지 50%는 만기연장하자는 것이다.

또 시중은행이 갖고 있는 무담보 채권 7000억원의 80%인 5600억원을 출자전환하고 나머지 20%에 대해 만기연장하자는 내용이다. 이에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은 자신의 무담보 채권 1조 6000억원을 100% 출자전환하겠다는 계획이다. 출자전환은 채권을 주식으로 바꿔 채권자의 지위를 주주의 지위로 변경한다는 의미다.

이와 같은 자구안에 대해 채권단은 2019년 만기에 도래하는 5건의 회사채에 대해 오는 4월 열리는 사채권자 집회에서 사채권자와 협의할 예정이다.

신규 지원 자금 2조 9000억원에 대해서는 산은과 수은이 1대 1비율로 부담한다. 사채권자 등 채권자의 합의가 되지 않을 경우 산업은행은 회생계획안 사전제출제도(프리팩키지드 플랜) 절차를 통해 강제력있는 채무조정을 법원에 요청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프리팩키지드 플랜이란?

프리팩키지드 플랜은 채무자 기업이 채권단의 합의하에 회생계획안을 미리 작성, 회생절차에 돌입하는 채무조정절차이다. 일반적 회생절차가 우선 회생신청을 하고, 법원이 기업의 채무 및 자산규모를 파악한 뒤 회생계획안을 작성해 채권단의 동의를 받는 것과 차이가 있다.

회생계획안이라는 꾸러미(Package)를 미리 짠다고 해서 프리팩키지드 플랜(Prepackaged-Plan)이라고 한다. 법률적 의미에서 ‘회생계획안 사전제출제도’라고도 한다.

▲ <사진=회생계회안>

일반적인 회생절차에 의할 경우 소요되는 기간은 8개월에서 1년이다. 몸집이 큰 기업은 그 이상 시간이 소요되기도 한다. 대우조선이 프리팩키지드 플랜에 의할 경우 그 소요기간은 3개월이 넘지 않을 전망이어서 신속한 회생절차가 가능해진다.

채무조정에 대해 동의하지 않는 금융채권자들과 사채권자들이 있다면, 이들이 대우조선에 대한 소송 등 강제집행으로 주거래은행 통장 등을 압류할 가능성이 높다. 이렇게 되면 대우조선은 사업을 영위하기에 필요한 자금 집행을 하지 못한다. 인건비 등 통상적인 지출을 할 수 없게 돼 경영상황이 악화돼 고사지경에 이를 수 있다.

산업은행은 프라패키지드 플랜 방식이 아닌 일반 회생절차를 밟을 경우 이같은 최악의 시나리오가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한 것으로 보인다.

산업은행은 오늘 밝힌 구조조정안에 대해 일반 채권자들의 합의가 이루어지 않을 경우, 동의하는 채권자들이 50%를 넘어서면 곧바로 회생계획안을 수립해 회생절차에 돌입할 것으로 보인다. 

일단 회생절차에 돌입하면 채무조정에 동의하지 않는 채권자들도 일체의 법적 조치를 할 수 없다. 프리팩키지드 플랜의 효용성이 여기에 있다.

프리팩키지드 플랜 이후...채권단 더 큰 고통 감내해야

대우조선이 프리팩키지드 플랜으로 회생절차에 돌입한다면 일반 채권자들의 희생은 더욱 커질 수 있다. 

사전회생계획안 수립은 대우조선이 계속기업가치가 청산가치를  높을 것을 전제로 한다. 즉, 대우조선이 파산해서 청산했을 때보다 영업을 유지시켰을 때 그 가치가 더 높아야 된다는 것이다.

현실은 녹록치 않다. 우선 회생절차에서는 선주들이 계약취소 가능성이 있다. 조선산업의 외부환경 또한 그리 좋지 않다. 수주절벽 등으로 매출상황이 증대되기 어려운 상황에서 대우조선이 장래 얼마만큼 기업가치를 낼 수 있을지 낙관할 수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프리팩키지드 플랜 절차를 밟더라도 파산으로 전환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대우조선이 파산할 경우 약 59조원의 경제적 손실이 있을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공포마케팅이 아니냐는 반박에도 불구하고 파산의 가능성은 분명 존재한다.

대우조선이 파산으로 청산될 경우 채권단이 회수할 채권은 미미하다. 만 명 가까운 근로자도 일자리를 잃는다. 정부 또한 그간 회계부정과 횡령, 배임 등으로 얼룩진 대우조선을 관리하지 못한 정치적, 정책적 책임추궁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상적인 방법은 신규 자금지원을 통해 대우조선을 안정시킨 후 채권단과 노·사·정의 협력으로 기업가치를 상승시키는 일이다. 그게 여의치 않다면 신속하고 채권단의  일사분란한 고통분담을 전제로 한 회생절차를 통해 회생 시키는 일이다. 대우조선해양이 프리패키지드 플랜의 첫 적용 대상 기업이 될지 주목된다.  

법원, 기업구조정 주도권 가져가나

서울회생법원이 29일 '프리팩키지드 플랜(Prepackaged-Plan) 회생절차'에 대한 간담회를 개최한다. 이 자리에는 금융위원회를 비롯하여 12곳의 금융기관과 보증기관, 자문사 등이 참석한다.

권창환 서울회생법원 공보판사는 “부실징후가 있는 기업에 대해 피플랜회생절차를 활용하면 신규자금을 유치할 수 있다. 이 때문에 빠르고 실효성 있는 재건이 가능하다”며“제도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고 강화하는 것이 목적”이라고 간담회 개최이유를 밝혔다.

종래 이 제도의 활용도는 그렇게 높지 않았다. 오수근 교수(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는 “P-Plan 회생절차는 50%비율이상 채권자가 신규자금을 지원하고 회생계획안을 동의해 주는데, 자금의 압박을 받는 과정에서 이 채권자들의 협조를 이끌어 내는 것이 어렵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중소기업은 이 절차를 이용하기 어렵다.

사례가 많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일부 전문가 집단을 제외하고는 기업과 금융기관이 잘 알지 못한다는 것이 권판사의 설명이다. 이번 간담회는 개원당시부터 계획되었다고 밝혔다. 대우조선이 P-Plan절차를 밟는다면 이 제도의운용과 관련하여 법원이 시험대에 오른다.

법원의 프리팩키지드 플랜은 금융권이 이해하는 그것과 차이가 있다. 금융권의 P-Plan은 워크아웃과 연계하는 프리팩키지드 플랜이다. 채권단이 채무조정을 주도할 경우 대우조선의 프리팩키지드 플랜는 워크아웃과 접목될 가능성이 크다.

법원이 프리팩키지드 플랜은 워크아웃과 반드시 연계하지 않는다. 용어도 “프리팩키지드 플랜 회생절차” 라고 구분해서 사용한다. 일각에서는 법원이 이번 간담회를 통해 기업구조정에 대한 주도권으로 가져오는 것이 아느냐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금융기관 주도의 프리팩키지드 플랜가 아닌 법원주도의 프리팩키지드 플랜 회생절차를 활성화시키려는 포석이라는 것이다.

향후 대우조선의 채무조정을 기점으로 금융권과 법원이 프리팩키지드 플랜 모델을 어떻게 적용할 것인지 귀추가 주목되는 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