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장기 불황은 집단이 아닌 개인 구성원들의 의식에도 영향을 미쳐 일종의 불안감을 조성했다. 여기에 60~80년대에 이르는 일본의 호황기를 경험하지 못한 1989년 이후 출생한 젊은 세대들은 전반적으로 침체된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성장해야 했다. 이들이 청소년기와 청년기를 맞이하는 90년대 말~2000년대에 접어들면서 일본에서는 다른 나라에서 전례를 찾기 어려운 독특한 문화 코드들이 대두되기 시작했다. 아울러 점점 빨라지는 일본의 고령화, 1인 가구의 증가 등은 새로운 산업의 발전을 이끌기도 했다.

 

▲ 수많은 오타쿠들을 보유하고 있는 일본 애니메이션 <러브라이브>.출처= 러브라이브 공식 홈피

오타쿠(オタク) 문화

오타쿠(オタク)는 타인의 집을 존댓말로 칭하는 ‘댁(宅)’이라는 뜻의 일본어다. 본래 의미는 일상 언어에서 흔히 사용되는 단어지만 일본에서 ‘오타쿠’는 한 가지 의미가 더 있다. 그 의미인 즉 ‘관심 분야를 제외한 그 어떤 문제에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 관심 대상에 대한 순수한 호기심으로 깊게 파고드는 사람들’을 지칭한다. 오타쿠는 ‘팬(Fan)’이나 ‘마니아(Mania)’과 같은 긍정적인 개념과는 거리가 있다.

일본에서 오타쿠가 현재의 의미로 통용되는 배경에는 1989년 발생한 끔찍한 연쇄 살인사건이 있었다. 자신의 성적 만족을 위해 4명의 어린아이를 살해한 범인 미야자키 쓰토무(宮崎 勤)가 자신이 속한 비디오 동호회의 멤버들을 서로 ‘오타쿠’라고 불렀던 사실이 언론을 통해 알려졌다. 그러면서 ‘오타쿠’는 일본인들 사이에서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애니메이션이나 만화, 비디오 게임에 몰입하는 이들을 말하는 부정적 의미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의미 자체에는 늘 부정적인 시선이 고정된 말이지만 최근에는 다양한 선호 대상에 대한 몰입을 하나의 ‘문화’처럼 여기는 분위기가 조성되면서 오타쿠는 일본 젊은이들 사이에서 나타난 독특한 문화 코드로 자리 잡았다. 흥미롭게도 오타쿠 문화는 만화와 비디오 게임으로 대표되는 일본의 콘텐츠 산업이 국내(일본)를 넘어 전 세계적인 인기를 끌게 만든 원동력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반려동물‧아웃도어 시장의 성장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 일본의 급속한 고령화와 1인 가구 증가는 실버(개호, 介護)산업과 간편식 시장의 비약적 성장을 이끌었다. 일련의 2가지 현상들이 복합된 형태로 나타나 발전하게 된 산업이 바로 일본의 반려동물 산업이다.

업계의 추산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으로 일본의 반려동물 관련 산업은 1조4000억엔(약 1조원) 규모의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특히 일본은 반려견‧묘들을 위한 미용‧패션‧호텔‧장묘‧보험 등 수백 가지가 넘는 반려동물 전용 서비스들이 발달했다. 최근에는 산업의 발달과 함께 관련 서비스와 제품군이 점점 세분화되는 추세다.

한 가지 사례로 일본에서는 노령 반려동물을 위한 특화 서비스들이 선보여지고 있는데, 대표적으로는 도쿄 소재의 노인 요양업체 생활과학운영주식회사(生活科学運営株式会社)는 요양원운영과 더불어 나이 든 반려동물을 키우는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 본 업체가 운영하는 27개소의 요양원 중 18개소의 콘도 25채는 반려동물을 키우는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한편, 아웃도어 산업도 대표적인 불황기 산업으로 많은 주목을 받았다. 경기 침체로 일본 내 대부분의 레저 산업이 부진을 면치 못하는 가운데서도 일본의 아웃도어 관련 산업은 지속적인 성장세를 나타냈다. 야노경제연구소에 따르면 일본 아웃도어 용품(의류, 신발 포함)시장은 수년간 꾸준히 확대돼 2008년에는 전년 대비 4% 증가한 1292억엔 규모로 확대됐다. 여기에는 경기 부진과 더불어 고속도로 톨게이트 이용비 할인 등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상대적으로 돈이 덜 드는 레저활동인 아웃도어 스포츠를 즐기는 인구가 늘어난 것이 반영됐다.

이에 대해 일본 오토캠프협회는 ‘경기 침체로 인한 경제적 부담이 적은 아웃도어 레저를 시작하는 소비자가 늘어남과 더불어 건강관리에 대한 소비자들의 인식이 높아진 것이 산업의 성장요인’이라고 분석하는 의견을 내놓았다.

 

대행산업

일본 경제산업성의 조사에 따르면 2012년 약 1000억엔(1조원) 규모였던 가사대행 서비스 산업이 지난해 약 6000억엔(6조원) 규모로 성장했다. 같은 기간 약 3%에 불과했던 가사대행 서비스 이용객 비율은 63%로 크게 늘었다. 일본의 가사대행 서비스에서 가장 인기를 끄는 분야는 청소다. 대행 서비스 이용자의 절반이 청소 서비스를 이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흐름은 아베 정권의 불황기 여성 경제활동 확대를 위한 가사 부담 줄이기 기조에 따라 대행업에 대한 규제가 완화되면서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 오사카, 그리고 카나가와현은 2015년부터 정부가 인정한 가사대행 서비스업체에 취업하는 외국인에 대한 노동비자 발급 절차를 대폭 간소화하면서 해당 산업을 키워가고 있다.

 

▲ 일본 중고명품 전문숍 코메효 온라인 광고. 출처= 코메효 공식 홈페이지

중고제품 전문 숍

불황이 지속됨에 따라 일본에서는 중고 명품을 판매하는 서비스가 주목받기 시작했다. 소득수준의 감소로 일본의 소비자들은 새 제품과 상태는 크게 다르지 않으면서도 가격이 저렴한 중고품을 찾게 됐다.

대표적으로 떠오른 업체가 바로 중고명품 백화점 코메효(コメ兵)다. 도쿄의 중심지인 신주쿠 산쵸메를 비롯한 일본 전국 25곳에 소재한 코메효에서는 샤넬·루이비통·에르메스 등 명품 브랜드의 가방 및 잡화, 의류의 중고 제품을 판매하고 있다.

코메효는 비싸게 구매해 싸게 파는 원칙을 강조한다. ‘없는 게 없이’ 다른 구매처보다 조금이라도 더 값을 매겨주고 다양한 브랜드의 상품들을 확보해 많은 소비자들을 끌어 모으는 전략적 접근이다. 아울러 판매자들이 구매자들이 상품을 편리하게 팔고 살 수 있는 택배서비스를 마련해 편의성도 강화했다. 중고 상품 수요 증가와 편의성 강화 전략에 힘입어 2010년 247억엔이었던 코메효의 매출은 2014년 431억엔으로 4년 만에 2배 가까이 급증했다.

 

▲ 한국의 건담 프라모델 전문 샵. 출처= 이코노믹리뷰 박정훈 기자

한국으로의 전이

일본과의 문화적 교류가 확대되면서 2000년대 이후 일본의 오타쿠 문화는 한국에도 유입되기 시작했다. 유명 애니메이션 콘텐츠들을 활용한 캐릭터 상품·완구·테마파크 등으로 구현된 일본의 오타쿠 문화는 우리나라에서 ‘키덜트(Kidult)’ 문화와 만나 새롭게 주목받는 산업군을 구성했다. 이에 우리나라에도 일본의 애니메이션 피규어, 플라스틱 모델을 전문적으로 판매하는 매장들이 전국 곳곳에 생겨나기 시작했다.

마찬가지로 한국의 반려동물과 아웃도어 관련 산업도 경기 침체기 일본의 사회적 변화와 맥락을 같이 하는 흐름으로 산업의 규모가 점점 성장하는 추세를 보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