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저의 일상과 가젯(Gadget)에 얽힌 그렇고 그런 이야기. 일상가젯 3화.

▲ 화웨이 P9으로 찍은 사진. 사진=이코노믹리뷰 조재성 기자

‘장비병’이란 질병이 있다. 대학시절 그 초기증상이 나타났다. 구체적으론 카메라 장비병이었다. 미술대학 회화 전공이었는데 사진수업이 있길래 들었다. 그러면서 인생 첫 카메라를 사게 됐다. 캐논 DSLR 카메라 보급기 EOS 400D였다.

400D로 수많은 과제를 해냈다. 사진 찍는 일에 빠지기 시작했다. 카메라와도 사랑에 빠졌다. 어딜 가든 카메라를 어깨에 메고 다녔다. 괜히 뭐든 다 찍고 다녔다. 길가에 놓인 쓰레기통에서도 예술적인 그 무언가를 포착해내려 했다(열정과 실력은 별개다).

▲ 당시 입문용 DSLR 카메라로 인기를 얻었던 캐논 EOS 400D. 출처=캐논

그시절 남대문 카메라 상가를 서성거리기 시작했다. 중고 렌즈 몇개를 사서 400D에 물리다가 카메라 자체를 바꾸는 데 이르렀다. 없는 형편에 중급기에까지 손을 댔다. 그러다 또 팔고 소니 카메라를 썼다. 스트로보와 세로그립도 샀다. 필름카메라도 몇개 사들였다.

주위에선 “장비병 걸렸다”고 놀렸다. 이정도로 뭔 장비병인가 싶은 사람도 있겠지만 대학생이 무슨 돈이 있겠나. 우리 사이에선 장비병이었다. 그래도 좋았다. 무언가에 애정을 쏟는다는 건 삶의 질을 높이는 한 방법이다.

장비병이 사실은 유행병이자 전염병이었다. 같은 과 동기는 증세가 더 심각했다. 있는 돈 없는 돈 탈탈 털어 수백만원짜리 니콘 플래그십 모델을 손에 넣었다. 그러면서 우린 미술 작업에 필요하다고 스스로 최면을 걸었다.

▲ 화웨이 P9으로 찍은 사진. 사진=이코노믹리뷰 조재성 기자
▲ 화웨이 P9으로 찍은 사진. 사진=이코노믹리뷰 조재성 기자
▲ 화웨이 P9으로 찍은 사진. 사진=이코노믹리뷰 조재성 기자

 

가질 수 없는 그 이름, 라이카

우리가 따르던 사진수업 강사로부터 라이카란 카메라 브랜드를 알게 됐다. 다큐멘터리 사진가였던 그는 라이카 M 시리즈로 작업한다고 했다. 정확히 어떤 모델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는 왜 라이카가 위대한지 얘기했다.

라이카는 100년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독일 회사다. 인류의 역사적 현장에 라이카가 있었다.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과 같은 전설적인 사진가도 라이카로 찰나를 기록했다. 지금 이 시점에도 지구 곳곳에서 라이카는 오늘의 역사와 함께하고 있다.

▲ 화웨이 P9으로 찍은 사진. 사진=이코노믹리뷰 조재성 기자
▲ 화웨이 P9으로 찍은 사진. 사진=이코노믹리뷰 조재성 기자
▲ 화웨이 P9으로 찍은 사진. 사진=이코노믹리뷰 조재성 기자
▲ 화웨이 P9으로 찍은 사진. 사진=이코노믹리뷰 조재성 기자
▲ 화웨이 P9으로 찍은 사진. 사진=이코노믹리뷰 조재성 기자

어린 마음에 혹했다. 라이카를 지를 순 없었다. 렌즈랑 바디를 제대로 갖추려면 1000만원이 훌쩍 넘을 정도였으니까. 라이카가 괜히 명품이라 불리는 건 아니다. 누군가는 값어치 못하는 ‘거품’이라고 폄하하지만.

가지고 싶지만 가질 수 없는 존재였다. 그런데 어느날 동기가 니콘 플래그십 카메라(D2였던 걸로 기억한다)를 팔아치웠다. 라이카 카메라를 사기 위해서다. 돈을 더 보태 중고로 사버렸다. 필름카메라였다. 이번엔 내가 그를 장비병 걸렸다고 폄하했다.

▲ 라이카 M10. 바디만 890만원이다. 출처=라이카 카메라

 

'라이카폰이라니, 이건 혁명이야'

시간이 흘렀다. 장비병이 자연 치유됐다. 남대문엘 가서 카메라 장비를 하나둘 팔아버렸다. 이젠 니콘 미러리스 V1 하나만 가지고 있다. 잘 사용하지도 않는다. 서재에 장식품으로 진열해놨다. 사진에 대한 열정이 식었다.

스마트폰이 빈자리를 채웠다. 웬만한 사진은 폰카메라로도 충분하다 여겼다. 육중한 DSLR과 비교하면 작고 가벼웠다. 어느덧 카메라는 귀찮은 존재로 전락했다. 물론 폰카의 사진 품질이 코딱지만한 이미지센서 탓에 만족스럽진 않았지만.

그러다 라이카란 이름이 다시 눈에 들어왔다. 2016년 4월쯤으로 기억한다. 중국 화웨이에서 P9이라는 폰을 내놨다. 뒷면에 카메라가 2개 달린 제품인데 이걸 라이카와 협업해 만들어냈다고 설명했다. ‘라이카폰’의 탄생이다.

▲ 화웨이 P9으로 찍은 사진. 사진=이코노믹리뷰 조재성 기자
▲ 화웨이 P9으로 찍은 사진. 사진=이코노믹리뷰 조재성 기자
▲ 화웨이 P9으로 찍은 사진. 사진=이코노믹리뷰 조재성 기자

‘100만원 이하에 라이카 카메라를 손에 넣을 수 있다니! 이건 꼭 사야 해. 혁명이야.’ 이런 생각을 했다. 결국 지르진 않았다. 국내 출시가 안 됐기 때문이다. 또 원래 쓰던 폰 약정기간이 어마어마하게 남은 탓이 컸다. 위약금 압박이 지름신을 이겼다.

한동안 잊고 살았다. 영영 잊긴 어려웠다. 지난해 연말 P9이 한국에 상륙했다. 누군가에게 홀린 것처럼 리뷰 제품 대여를 신청했다. 다음날 P9과 만날 수 있었다. 그이와 진지한 대화를 나눴다([사물인터뷰] 화웨이 P9). 이별의 시간이 찾아왔다.

기자란 영업 당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매력 넘치는 신제품 정보를 매일같이 접하다 보면 지갑이 열리고야 만다. 지름신이 다시 강림했다. 스쳐 지나간 P9을 영원히 내걸로 만들고 싶었다. 망할 약정 때문에 ‘조금만 더 참자’고 읊조렸다.

꾹꾹 참다가 지난달 ‘그날’이 왔다. 잠 들기 전 침대에서 구매대행 사이트를 이용해 P9을 주문했다. 한국엔 출시되지 않은 세라믹 화이트 색상으로. 유심기변을 할 생각이었다. 설레는 마음에 잠이 오질 않았다.

▲ 화웨이 P9으로 찍은 사진. 사진=이코노믹리뷰 조재성 기자
▲ 화웨이 P9으로 찍은 사진. 사진=이코노믹리뷰 조재성 기자
▲ 화웨이 P9으로 찍은 사진. 사진=이코노믹리뷰 조재성 기자

홍콩에서 건너와야 할 P9도 오질 않았다. “고객님! 현지에서 세라믹 화이트 색상이 품절됐다고 합니다!” 전화를 받고 고개를 떨궜다. “주문 취소해주세요.” 기어들아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울적한 하루를 보내다가 그날 밤 다시 시도했다. 이번엔 ‘미스틱 실버’ 색상으로 주문했다.

비록 이 색깔이 한국에 출시된 모델이어도 아무렴 어떤가. 원래 라이카 때문에 이걸 사려는 거 아니었나. 이렇게 위안 삼았다. 기다림 끝에 그가 왔다. 낡은 내 아이폰5S(이 역시 LG V10에서 유심기변한 폰이다. 약정은 V10에 걸려 있다)를 서랍 속에 넣어뒀다.

▲ 화웨이 P9 미스틱실버 색상. 출처=화웨이

 

'폰토그래퍼'의 탄생

그래서 사진이 잘 찍히냐고? 이걸 말하기 전에 해소해야 할 오해가 있다. 당신은 어디선가 이런 얘길 들었을 거다. 화웨이가 돈 주고 라이카 브랜드만 빌린 거라고. 아직까지도 이게 진실인 줄 알고 있는 사람이 많다. 사실이 아니다.

오해가 커지자 화웨이와 라이카가 성명서를 내기까지 했다. 브랜드만 빌린 게 아니라 렌즈 광학 설계부터 카메라 모듈까지 함께 개발했다고 해명했다. 특히 라이카 룩을 재현하기 위해 공들였다고 설명했다.

▲ 화웨이 P9으로 찍은 사진. 사진=이코노믹리뷰 조재성 기자
▲ 화웨이 P9으로 찍은 사진. 사진=이코노믹리뷰 조재성 기자

라이카 룩은 라이카 카메라로 찍은 사진에서만 볼 수 있는 특성을 뜻한다. 두 회사는 특히 P9의 결과물이 라이카 주마릿M 렌즈로 찍은 사진과 느낌을 줄 때까지 연구를 거듭했다. 이들은 라이카 카메라에 대해 이해도가 높은 유명 사진가들에게 검증을 맡기기도 했다. 결국 그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난 라이카 카메라가 어떻게 찍히는지 잘 모른다. P9이 어떤 사진을 찍어내는지는 잘 안다. 폰을 손에 넣은 날부터 주구장창 사진을 찍어대고 있다. 대학시절 열정을 넘어서는 수준이다. '폰토그래퍼(Phone+Photographer)' 다 됐다.

특히 P9의 흑백사진을 사랑한다. 뒷면에 카메라가 2개 달려있다고 하지 않았던가. 하나는 흑백 카메라다. 라이카라고 하면 감성 풍부한 흑백사진을 먼저들 떠올린다. P9 카메라앱을 괜히 켜서 흑백모드로 눈앞 풍경을 프레임에 담아보는 습관이 생겼다.

▲ 화웨이 P9으로 찍은 사진. 사진=이코노믹리뷰 조재성 기자
▲ 화웨이 P9으로 찍은 사진. 사진=이코노믹리뷰 조재성 기자

사진을 잘 찍냐고? 그러진 못한다. 이 글 중간중간에 등장하는 사진을 보면 알 수 있지 않나. 그래도 만족한다. 우러러 보기만 했던 라이카가 손 안에 있으니 무서울 게 없다. 사진이야 찍으면 찍을수록 늘지 않겠나. P9은 셔터음도 매력적이다. 실제 라이카 카메라 소리를 녹음했다고 한다. 그 소리를 들을 때마다 아직도 설렌다.

한 가지 위기가 있긴 하다. 후속작 P10이 등장해버렸다. P10은 라이카는 물론 세계적인 색상회사 팬톤까지 힘을 모은 제품이다. 제품 컬러를 팬톤이 뽑아냈다. 그래서 폰이 초록색이고 보라색이다. 다시 지갑을 만지작거린다. 도처에 장비병이라는 유령이 떠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