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계약설이 맞다면, 노동은 사회를 창출했고, 문명을 완성했다. 나아가 잉여재산의 등장은 계급사회를 촉발시켰으며 권력을 창출했고 정치를 구성한다. 생존을 위한 행위인 노동은 집단의 정체성으로 부상했고 신성한 의무로 부여받으며 이데올로기의 가면을 쓰기 시작했다. 그래서 인류의 역사는 노동의 역사라고도 한다.

이 대목에서 중요한 연결고리가 있다. 바로 노동이 집단의 정체성이자 능력으로 여겨지며, 자연스럽게 특정 존재에 대한 인정을 끌어내는 바로미터로 활용되는 대목이다.

우리는 일자리를 통해 재화를 창출하고, 그 일부를 세금이라는 이름으로 정부에 납부한다. 그러면 정부는 그 세금을 모아 국가의 발전을 도모하는 방향으로 사용한다. 여기에서 우리는 세금을 내며 국가의 일부라는 정체성을 인정받으며, 역으로 우리는 정부가 세금을 걷어가는 순간 정부에게 일종의 대표성을 부여한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거래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 로크와 루소가 주장한 사회계약설(社會契約說)의 근간이다.

▲ 출처=퓨처오브라이프

인공지능 포비아의 상반된 시각

최근 4차 산업혁명과 관련해 장밋빛 전망과 우울한 예언이 엇갈리고 있지만, 인공지능 및 로봇의 등장으로 인간의 입지가 좁아질 것이라는 점에는 대부분의 전문가가 동의하고 있다. 아마존의 전자동 물류창고 솔루션 및 스마트팩토리, 소프트웨어의 인공지능 및 하드웨어의 로봇 경쟁력이 조금씩 인간의 영역으로 밀려오고 있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지점은 '인공지능 및 로봇의 등장으로 인간의 입지가 좁아질 것'이라는 점에 전문가들이 동의하고 있으나, 직접적으로 미칠 영향력에 대해서는 미묘한 온도차이가 느껴진다는 점이다.

먼저 부정적인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논리는 이렇다. 세계적인 물리학자이자 대표적인 반(反) 인공지능 인사인 스티븐 호킹은 지난 3월11일 비즈니스인사이더와의 인터뷰에서 "인공지능이 급성장하며 사람의 힘으로 통제할 수 없는 시점이 다가오고 있다"고 경고했다. 이어 그는 "인류는 위험을 인지하고 세계공동정부를 세워 이에 대비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다소 의외지만, 테슬라의 앨런 머스크도 인공지능을 우려하는 대표적인 인사다. 그는 인공지능의 부정적 영향에 대비하기 위해 비영리 연구기관인 퓨처오브라이프를 설립하는 한편 지난 2014년 MIT 강연에서 "인공지능은 악마를 소환하는 것"이라는 극단적인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 물론 그는 테슬라를 통해 자율주행차의 비전을 충실히 따라가는 한편 이를 활용한 다양한 초연결 인프라를 구상하는 대표적인 인물이며, 최근 '인공지능은 관리될 수 있다'는 쪽으로 다소 입장을 선회하고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인공지능 포비아'에 한 표를 던지는 사람이다.

앨런 머스크는 스티븐 호킹과 함께 퓨처오브라이프의 고문을 맡고 있으며, 지난 2월에는 인공지능의 잠재적 위협을 경계하고 세계의 전문가들이 이를 위해 협력에 나서야 한다는 '인공지능 23원칙'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들 주장의 근거는 '마이크로소프트의 테이 논란'에서도 찾을 수 있다. 테이는 인간의 언어를 이해하기 위해 만들어진 인공지능이며, 메시징 서비스 킥과 그룹미를 비롯해 트위터를 바탕으로 사람과 대화하는 방식이다. 말 그대로 대화를 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능력을 키운다.

하지만 일부 백인 우월주의자와 여성 및 무슬림 혐오자들이 의도적으로 테이에 접근해 그릇된 정보를 주입했고, 테이가 최악의 인종차별주의자로 변신한 일이 발생했다. 결국 마이크로소프트는 테이의 베타 서비스를 중단했다. 테이 논란은 인공지능에 대한 경계심을 일깨움과 동시에, 약 인공지능의 인간 활동에 있어서도 큰 시사점을 남겼다.

결국 인공지능이 빠르게 우리의 삶으로 파고드는 상황에서, 이를 경계하고 두려워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들의 시각에서 인공지능은 또 하나의 맨해튼 프로젝트다. 로버트 오펜하이머가 주도한 맨해튼 프로젝트는 2차 세계대전의 종식을 알린 원자폭탄의 발명을 끌어냈으나, 인류에게는 그 자체로 재앙이다. 오펜하이머는 원자폭탄이 발명된 직후 "나는 이제 세상의 파괴자, 죽음의 신이 되었다"라는 말을 남겼다. 그 다음은 인공지능이 아닐까?

반면 인공지능의 순기능을 강조하는 쪽도 있다. 가상현실을 메인으로 삼고 있으나 인공지능에도 관심이 높은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CEO는 공식석상에서 마윈 알리바바 회장과의 대담을 통해 인공지능 예찬론을 펴기도 했으며, 다수의 전문가들도 이에 동조하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연구 총괄책임자 에릭 호비츠는 "인공지능이 의식을 가질 수 있겠지만, 그로 인해 인간이 위협을 받을 일은 없다고 확신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비전펀드를 운영하고 있는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은 인공지능 예찬론자다. 그는 지난 2월 열렸던 MWC 2017 기조연설에 참여해 "인공지능은 우리의 훌륭한 파트너"라고 단언했다. 나아가 그는 슈퍼인텔리전스(Super Intelligence)를 강조하며 30년 후 IQ 1만의 슈퍼인텔리전스 컴퓨터가 탄생해 우리의 삶을 더욱 윤택하게 만들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른바 싱귤래리티(Singularity)의 등장으로 인류는 비약적인 발전을 할 것이라는 논리다.

손정의 회장은 기조연설 말미 인공지능이 인류에게 위험하지 않느냐는 질문을 두고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하는지에 달려 있다”며 “인공지능은 우리의 파트너가 될 것이라고 믿는다"고 재차 강조했다.

여기에 '속도'에 대한 담론이 붙는다. '인공지능이 얼마나 빨리 발전할 것인가'라는 논쟁이다.

인공지능을 긍정적으로 보는 전문가의 일부에서는, 인공지능 자체가 인류의 파트너라는 점을 전제한 상태에서 "발전속도가 엄청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제를 펴기도 하기 때문이다. '왓슨 포 온콜로지(Watson for Oncology)'를 바탕으로 최근 의학분야에서 활약하고 있는 인공지능 IBM 왓슨의 사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현재 왓슨은 일선병원에서 인공지능 의사로 활동하고 있지만 냉정하게 말해 기존의 의사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소위 '핵심 조언자'의 역할에 머물러 있다. 즉 인공지능은 인간의 보조자라는 뜻이다. 여기서 이들은 논리를 확장해 '인공지능이 대체할 수 없는 인간의 영역은 분명히 있으며, 양쪽은 서로 시너지를 일으킬 것'이라는 주장을 펴기도 한다.

약 인공지능에서 강 인공지능으로 넘어가는 속도가 예상보다 빠르지 않다는 전제로, 적절한 타협의 여지가 있다는 점을 내세워 인공지능 부정론자의 우려를 불식시키려는 의도다.

▲ 인공지능 병원 구성. 출처=SK C&C

로봇세 도입 논쟁

인공지능을 둘러싼 각자의 비전과 우려가 충돌하는 상황에서, 소위 로봇세 논쟁이 최근 부상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인공지능으로 대표되는 초연결의 영역이 현실의 하드웨어로 구현되는 단초가 바로 로봇이라는 점에서, 그리고 로봇세 논쟁 자체가 인공지능 포비아를 일정정도 덜어준다는 측면에서 양쪽은 긴밀한 연결고리를 공유하고 있다.

로봇세 도입 논쟁은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주가 지폈다. 최근 그는 쿼츠와의 인터뷰에서 로봇에 세금을 부과해 세수 부족을 충족하고, 이를 활용해 공동체의 균등한 발전을 주장하고 나섰다.

빌 게이츠가 로봇세 도입을 주장한 배경은 무엇일까. 그는 인공지능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쪽에 서 있다. 이런 상태에서 인공지능과 로봇의 발전으로 일자리가 사라지고 사회 공동체가 붕괴되는 극단적인 상황을 경계하고 나선 셈이다.

세계 경제포럼에 따르면 오는 2020년까지 로봇으로 인해 전 세계에서 사라지는 일자리는 무려 710만개에 이른다. 결국 인류 공동체의 존속을 위해 로봇세를 도입, 기술의 발전속도를 제어하고 그 간극에서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마련하자는 주장이다. 이러한 빌 게이츠의 주장은 프랑스 대선 후보인 브누아 아몽의 '로봇세 도입을 통한 기본소득제 공약'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는 얘기다.

하지만 반대도 만만치 않다. 래리 서머스 전 미국 재무장관이 대표적이다 그는 지난 6일 파이낸셜타임스 기고를 통해 "로봇세 주장은 완전히 잘못됐다"며 "빌 게이츠의 의도에는 동의하지만 로봇세를 매길 확실한 논리적 근거가 없다"고 꼬집었다.  그는 "정부는 혁신에 세금을 부과하는 것이 아니라 보조금을 지원하는 게 일반적"이라고 지적했다.

래리 서머스 전 장관의 주장을 천천히 살펴보면 '빌 게이츠의 의견에는 동의하지만, 방법이 잘못됐다'로 요약된다. 기술의 발전과 인류의 진보가 적절하게 어우러져야 한다는 대전제는 찬성하지만 세부 방법론이 틀렸다는 뜻이다. 일례로 그는 "인간의 일자리를 빼앗은 주범을 로봇이라고 특정할 수 있는가"라며 "키오스크와 항공기 발권기 등도 일자리를 빼앗았지만 우리는 여기에 세금을 매기지 않는다"고 부연했다. 나아가 "로봇세는 보호 무역주의에 불과하다"며 빌 게이츠의 의견은 발전하는 로봇산업에 찬물을 끼얹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 인공지능과 인간 번역사 대결. 출처=시스트란

로봇세 도입 논쟁의 핵심, 인격화

최근 벌어지는 일련의 인공지능 논쟁과 로봇세 도입을 두고 벌어지는 논리의 충돌을 살펴보면, 한 가지 전제조건이 완성되지 않았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인공지능의 긍정적, 부정적 영향력과 기술의 속도를 비롯해 로봇세 논쟁의 근간을 이루는 주장의 단면. 바로 로봇의 인격화다.

로크와 루소가 주장한 사회계약설의 전제는 '모든 인간은 천부의 권리를 가진다'에서 출발해 `자연 상태에서는 자유와 권리의 보장이 확실하지 않기 때문에 국가와 계약을 맺어 자신들의 권리를 국가에 위임한다`로 요약된다. 납세의 의무도 바로 여기에서 출발한다.

이런 상태에서 로봇세가 실시되면 로봇은 단숨에 사회계약설의 적용을 받는 어엿한 인격적 객체가 될 수 있다. 그런 이유로 로봇세는 곧 로봇의 인격화를 일부 인정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의미있는 행보가 눈에 들어온다. 유럽의회는 지난 1월 인공지능 로봇의 법적인 지위를 '전자인간'으로 규정하는 결의안을 통과시킨 바 있다. 인간의 손에서 만들어 낸 피조물을 '전자인간'으로 인정하는 순간, 일정정도의 인격화를 인정했다는 뜻이다. 당연히 로봇세 징수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이 결의안에는 '로봇의 정의를 명확하게 하고, 인간에 도움을 주는 존재에 머물러야 한다'와 '언제든 로봇의 움직임을 정지시킬 수 있는 킬 스위치가 있어야 한다'는 전제가 붙어있다. 완전한 인간이 아닌 전자인간이기 때문에, 그리고 전자인간은 전적으로 인간의 발전과 행복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는 취지로 읽힌다. 이렇게 되면 인간은 로봇세를 부과하면서도 나름의 인격을 인정한 로봇을 '2등 인간'으로 받아들이는 행보를 걷게 된다.

앞으로 어떻게 될까? 예단할 수 없지만 추후 닥쳐올 무수한 논쟁의 핵심에 '기술진화의 속도'와 '경계의 명확한 구분'이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2등 인간인 로봇의 기술진화가 얼마나 빠를 것인가. 나아가 로봇으로 인해 창출된 재화를 어떻게 규정하고 산업을 방해하지 않는 선에서 어디까지 세금을 걷을 수 있을 것인가. 인공지능 포비아를 두고 벌어지는 다양한 논쟁과 로봇의 인격화적 측면에서 의미심장한 질문을 여럿 던진다.

산업혁명 이후 벌어졌던 극단적인 러다이트 운동의 시대는 끝났다. 앞으로는 바람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활용하는가의 시대다. 우리는 어떤 결정을 내릴 것인가? 인류는 서서히 기로에 다가서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