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퇴근 후 저녁 밥을 먹으며 TV 를 보는데, 재미로 보던 내용이 어느 순간 뒤통수를 치고 다가왔다. 한 고생물학 전문가가 공룡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었다. ‘공룡은 멸종되지 않았다’는 것과 ‘먼 훗날 코끼리 뼈를 화석으로 발견한 사람들은 코끼리의 형태를 어떻게 복원할까’ 하는 두 가지 점에서 너무나 당연하게 알고 있던 것들이 와르르 무너졌다.

공룡은 ‘골반에 구멍이 나 있고, 허벅지 뼈 위쪽이 90 도로 꺾여있어 골반에 쏙 들어가는 척추동물'로 정의된다고 한다. 때문에 000 사우르스로 알려진 커다란 파충류만 공룡이 아니라 조류도 공룡의 범주에 포함된다고 했다. 또 그간 과학자들이 발굴된 뼈를 토대로 형태를 복원하는 데에 수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는데, 만약 코끼리가 멸종되고 난 한참 뒤에 발굴된 뼈만으로 둥글고 커다란 귀 모습과 길게 주름진 근육과 피부로 된 코끼리 코를 그대로 재현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은 흥미로웠다. 1900 년대 초기 유럽 학자들은 공룡 다리뼈와 꼬리뼈들의 조합이 맞지 않자, 자신의 이론이 맞다고 우기면서 꼬리뼈를 분질러 버린 일도 있었다고 한다.

386 세대들은 어렸을 때 반공포스터를 그리면 북한 사람들은 무조건 빨간 피부의 뿔난 괴물로 그렸다. 자라면서는 무슬림들은 모두 테러리스트로 오해하기도 했다. 우습지만 당시엔 그렇게 듣고 자랐기 때문이다. 이처럼 실질이 어떠한가 보다는 알고 있는 대로 행동하게 된다. 정치나 기업에 대해서도 똑같이 적용된다. 살다 보면 알고 있는 것과 실제가 많이 다르다는 것에 놀랄 때가 많다. 때문에 실질이 아무리 훌륭해도 사람들이 아는 만큼의 범주를 넘어서기 힘들다.

 

사람들이 보는 건 실질이 아닌 미디어에 비친 모습

사람들은 기업의 실질이 어떤지에 대해서 보다 미디어를 통해서 투영된 모습을 보게 된다. 그리고 그렇게 본 것들로 인해 그 기업에 대해 고착된 인식의 틀을 갖게 된다. 이런 인식의 틀을 긍정적으로 조금씩 형성시켜 나가는 것은 만만치 않은 일이다. 예전에 내가 근무했던 곳 중에서 ‘세녹스’를 제조 판매했던 곳이 있었다. 몇몇 경제매체에서 ‘올해의 10 대 뉴스’에도 나올 정도로 엄청난 반향을 불러왔다. 국내에서 월드컵이 열린 해인 2002 년에 지금의 ‘석유 및 석유대체연료 사업법'의 전신인 ‘석유사업법’ 위반 혐의로 당시 산업자원부에서 검찰에 고발하면서 기소됐다. 1 심에서는 승소하며 작은 기적을 연출했지만 항소심과 대법원까지 가는 상고심에서 패하면서 결국은 가짜 휘발유로 변질되어 버린 비운의 제품이었다.

당시 대중이 세녹스를 대하는 자세는 딱 두 가지였다. 첫 번째는 세금을 내지 않기 위해 편법을 동원하여 가짜 휘발유를 첨가제로 둔갑시켰다는 의혹의 물질, 두 번째는 뭐가 됐던 차에 해가 없으면서도 값싸고 차를 잘 가게 하는 고마운 물질이었다. 회사에서 어떻게 출시 했던지 간에 사람들은 자신이 알고 있는 대로 행동했다.

첫 번째 부류는 언론이나 일반 대중들이나 마찬가지로 불법집단으로 대할 뿐이었다. 산업자원부 기자단과 첫 대면을 위해 방문했을 때, 모 기자에게 ‘불법집단 구성원’이라고 야단을 맞으며 과천정부청사에서 쫓겨난 적이 있었다. 그는 취재를 해야 될 입장이었으면서도 선입견 때문이었는지 대면조차 거부했다.

두 번째는 논란 속에 있는 그것이 어떤 것인지는 상관없고 불법이 아닌 이상 저렴하고 차에 문제를 일으키지 않으니 최대한 사용하는 부류였다. 대부분의 사람들 입장이 이랬을 것이다. 논란이 되긴 하지만 허가된 요건을 갖춰 판매를 하는 상황이라 최대한 사용하는 사람들이었다.

초창기 세녹스는 엄청나게 팔렸다. 판매점에서는 아침마다 수백 미터씩 줄을 섰다. 하루치 물량으로 보냈는데, 2 시간만에 매진됐다고 판매점마다 아우성이었다. 또 어떤 판매점에서는 낮에는 단속하던 사람들이 밤에 퇴근할 땐 세녹스를 사러 오기도 했다고 알려주기도 했다.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세녹스 판매에 격려를 보내기도 했던 것을 보면 똑 같이 전파가 되어도 받아들이고 해석하는 사람들은 저마다 차이를 보였다.

 

기업은 실질이 아닌 루머 때문에 운다

미국 의류 브랜드 중에 토미힐피거라는 옷이 있다. 패션 디자이너이자 사업가인 토미 힐피거가 설립한 회사인데 이상한 루머로 인해 악전고투 할 수 밖에 없었다. 있지도 않았던 일이 널리 회자 되면서 대중들로부터 낙인이 찍혔던 케이스였다. 토미 힐피거가 ‘자신이 만든 옷은 흑인, 히스패닉, 유대인 또는 아시아인을 위한 것이 아니라 백인 상류층을 위한 것’이라며 인종차별주의와 반유대주의적 발언을 하다가 오프라 윈프리 쇼에서 쫓겨났다는 루머가 돌았다.

비즈니스맨 입장에서 도저히 이런 발언을 하리라는 상상조차 할 수 없다. 루머는 계속 퍼져 나갔고 힐피거사에는 막대한 손실로 돌아왔다. 결국 1999 년에 오프라 윈프리가 방송에서 그 루머가 사실이 아님을 직접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확산세는 그칠 줄을 몰랐다. 그로부터 8 년이 지난 뒤에 토미 힐피거가 오프라 윈프리 쇼에 출연하여 직접 해명을 했는데도 끝내 루머가 없어지지 않았다. 그는 막대한 자금을 써가면서 루머의 진상을 밝혀내기 위해 노력하는 한편 다양한 이벤트와 사회공헌 사업을 펼치며 루머를 잠재우려 애썼다. 쉽지는 않았겠지만 확산되기 전인 루머 발발 초기에 즉각적이면서도 더욱 적극적인 해명이 있었다면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을까 싶다.

사람들이 루머를 듣게 되면 머릿속에 자신만의 기업 이미지를 그리게 된다. 한번 그려진 이미지는 웬만해선 뒤집어지지 않는다. 기업이 아무리 선한 행동을 보이더라도 잘못된 첫 인상을 보유한 사람은 자기식으로 해석하게 되며 그가 인식한 것들이 실제가 되어 버린다. 막말로 기업이 좋은 일 99 가지를 알리더라도 1 가지 나쁜 일에 휘말려 여론에 휘둘려 버리면 십중팔구 그 기업의 연상 이미지는 전자가 아니라 후자가 된다.

 

쌓는 데 20년이지만, 단 5분이면 무너뜨려

‘피자, 헛 드셨습니다’는 광고로 글로벌 기업인 피자헛과 맞짱을 뜨던 기업이 있었다. 당시만 하더라도 국내에서 경쟁사를 비방하거나 비교하는 광고는 하지 못하는 때였고, 지금도 공정거래위원회 심사지침의 포괄성 때문에 활발하지 않다. 기억에 의하면 결국 소송에서 지긴 했지만 오히려 회사는 입지가 달라졌다. 실상이 어떻든 간에 글로벌 기업 ‘피자헛’과 맞짱 뜬 회사가 된 것이다. 패소로 인해 금전적 손실이야 피할 수 없었지만 대신 무형적 기업자산을 상당히 불렸다. 나중에는 사람들이 기억하는 3 대 피자 회사로 손꼽히게 된다. 물론 다른 두 회사는 미국계 글로벌 기업이다. 어떤 사람들은 이 세 회사 모두 동급의 외국계 기업으로 아는 경우도 많았다.

그런데 이 회사는 최고경영인의 갑질논란이 여론에 회자되면서 기업이미지는 땅바닥에 내팽개쳐지고 말았다. 그 전까지만 해도 글로벌 기업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던 기업에서 소위 악덕기업주에 갑질의 대명사가 됐다. 때마침 부글부글 끓고 있던 가맹점주들과의 마찰이 수면위로 부상하기도 했다. 그 여파는 국내 10 대 패스트푸드 브랜드의 빅데이터를 분석한 한국기업평판연구소의 연구결과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2016 년 1 월부터 4 월까지 4 개월간의 ‘브랜드 평판지수’ 조사결과를 보면, 1~2 월에는 6 위, 3 월에는 7 위로 미국계 글로벌 기업과 국내 대기업 브랜드 사이에서 중위권을 형성했다. 하지만 4 월 조사에서는 바닥인 10 위로 추락했다. 그 회사의 4 월 평판지수 점수는 그 전까지 10 위를 했던 다른 기업들이 받았던 점수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형편없는 결과였다. 그 기업 회장이 경비원에게 폭행을 가했던 날이 4 월 2 일이었고, 여론이 먼저 기업을 재판했던 것이다.

때문에 기업은 좋은 이미지를 쌓기 위해 부단히 많은 노력을 한다. 워렌 버핏이 ‘좋은 평판을 쌓는 데는 20 년이 걸리지만 그 평판을 무너뜨리는 데는 5 분이면 족하다’고 했다. 다시 말해 한 사람의 머릿속에 들어있는 부정적인 인식이 긍정적으로 바뀌는 데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리지만, 긍정적인 인식이 부정적으로 바뀌는 것은 순식간이다.

기업의 실질은 바뀐 것이 없지만 사람들의 인식이 바뀌어 버린 결과다. 옛 사람들은 전쟁을 할 때, 성을 공격하는 것은 하책이요, 사람의 마음을 공격하는 것이 상책이라 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실질이 지배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여론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투영된 인식이 지배하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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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기업의 실질도 중요하지만 사람들의 인식에 주목하라.

2. 20 년간 쌓은 공든탑을 5 분만에 무너뜨리는 우는 범하지 말라.

3. 루머는 초기에 즉각, 적극적 해명으로 대처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