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가 17일 오전 10시 경기도 성남시 본사에서 주총을 열고 대대적인 변화를 선언했다.  

▲ 김상헌 전 대표(왼쪽)가 한성숙 새대표를 소개하고 있다. 출처=네이버

이날 네이버 주총에서 창업주인 이해진 의장이 의장직에서 물러나고 변대규 휴맥스홀딩스 회장이 새 의장에 올랐다. 지난 8년간 회사를 이끌었던 김상헌 전대표 대신 한성숙 대표가 정점에 올랐다. 

모범적인 경영진 교체

변 신임의장은 디지털 셋톱박스로 시작해 비디오 및 브로드밴드 게이트웨이로 글로벌 성공신화를 쓴 벤처 1세대. 서울대를 졸업한 그는 한국공학한림원 정회원과 국가과학기술위원회 민간위원, 한국공학한림원 부회장, (사)한국벤처기업협회 부회장 등도 역임한 인물이다.

네이버는 변 의장이 정부, 대학 및 연구기관, 벤처유관단체에서 쌓은 다양한 경험과 여러 기업의 사외이사로서 경영 현안을 챙겨본 경험을 이사회에 더해 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 변대규 의장. 출처=네이버

이 전의장이 글로벌 전략에 매진하기로 한 상태에서, 그의 멘토 역할을 하던 변 신임의장에게 자신의 자리를 제안했다는 말도 있다.

그러나, 이 전 의장과 변 의장이 자주 교류하던 사이는 아니라는 것이 정설이다. 이번 콘트롤 타워 체인지를 기점으로 '네이버가 셋톱박스 사업에 진출하는 것 아니냐'는 말도 돌았으나 이 역시 사실무근. 

김상헌 전대표의 뒤를 이은 인물은 한성숙 대표. 김 전 대표는 2010년대 이후로 네이버가 이룩한 다양한 성과의 핵심을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지난해 넥슨 주식 공여 파문에 휘말린 것이 옥의 티. 김 전 대표는 고문으로 남는다. 

한 신임대표는 실무형 리더다. 최근에는 스몰 비즈니스를 이끌었으며 부드러운 리더십으로 인문학적 소양을 기술기반 플랫폼 정체성에 연결해야 하는 중차대한 역할을 맡았다. 한대표는 이 전 의장에게 "일하는 자세를 꾸준히, 변하지 않게 하라"는 조언을 들었다고 한다. 

사외이사로 참여하는 변 의장은 휴맥스홀딩스등 다른 회사의 임원인 관계로 기타비상무이사로 들어간다는 설명이다.

업계는 이번 네이버 최고경영진 교체에 대해 '전형적인 모범생 스타일의 인사'라는 평가를 내린다. 국내 대기업들은 친인척 편법 승계가 일상화된 반면, 네이버는 창업주가 일선에서 물러나 새로운 기회를 모색하는 일을 하는 대신, 새로운 인물을 전면에 내세우는 것 자체가 신선하다는 평이다.

때문에 경쟁자인 카카오가  '풍운아'라고 한다면, 네이버는 `모범생`라고 부르는 업계의 평가와도 일치하는 경영진 교체방식이다.  

이 전 의장은 약 4%의 네이버 지분을 보유하고 있으며, 국민연금공단은 지난해 9월 기준 11.27%의 주식을 보유하고 있어 최대 주주다.

▲ K-펀드 1 기자회견. 출처=최진홍 이코노믹리뷰 기자

교체 이유 하나는 `글로벌`

이 전 의장은 글로벌 시장을 적극적으로 공략하기 위해 변신을 시도했다. 라인의 성공적인 상장과 더불어 스냅챗을 제2의 라인, 혹은 제2의 스냅챗으로 만들려는 야심을 불태우고 있다.

현재 네이버는 라인과 함께 플뢰르 펠르랭(Fleur Pellerin) 전 프랑스 디지털경제 장관과 유럽 금융전문가 앙투안 드레쉬(Antoine Dresch)가 설립한 코렐리아 캐피탈(Korelya Capital)의 유럽 투자 펀드 ‘K-펀드 1’에 출자한 상태다.

유럽을 중심으로 글로벌 전략을 다듬는 한편 다양한 기술적 플랫폼 생태계 구축에 나서고 있다. 코렐리아 캐피탈과 함께 프랑스 하이엔드 음향 기술 스타트업 드비알레(Devialet)에 전략적 투자를 진행하는 한편, 지난 2005년 설립된 음성 인식 및 자연어 처리 엔진 개발 전문 기업인 사운드하운드 투자까지 나섰다.

앞으로 네이버는 반(反) 실리콘밸리 정서가 존재하는 유럽을 중심으로 나름의 전략적 선택을 추구하는 한편, 라인과 스노우 등을 통해 의미있는 실험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당연히 독자적 사용자 경험을 제공하는 기술적 시도가 병행된다. 웹 브라우저 웨일의 경우 글로벌 시장에서 윈도 및 크롬 등의 공세와 차별화된 커스터마이징을 제공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 출처=네이버

쇄신의 또다른 키워드는 `기술`

글로벌 전략과 더불어 기술적 진보도 눈길을 끈다. 

자율주행차와 더불어 인공지능 및 기타 기술기반적 사업에 전사적으로 나서는 배경이다. 네이버랩스의 자율주행차, 인공지능 클로바 및 웹 브라우더 웨일 등의 실험이 이어졌다.

콘텐츠와 플랫폼을 바탕으로 모든 플레이어의 길목을 관장하는 생태계 전략은 최근 ICT 업계의 트랜드다. 수직계열화 등의 표현으로 활용되는 부분도 있으며, 당연히 그 중심은 자신들이 차지하는 것이 특징이다. 메이드 바이 구글의 전략과 더불어 인텔의 프로젝트 알로이도 마찬가지다.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은 ‘모든 객체의 총합과 시너지’며 이를 바탕으로 판을 새롭게 짜는 플레이어가 승리한다.

네이버는 기술 지향 생태계를 지향하며 그 판의 범위를 글로벌로 강하게 당기고 있다. 개발자 컨퍼런스 ‘DEVIEW 2016’에 답이 있다. 기술적 베이스는 인공지능이다. 네이버의 송창현 CTO는 인공지능 기반의 연구개발을 위한 구체적인 비전, ‘Ambient Intelligence(생활환경지능)’을 소개하며 사용자에게 새로운 경험을 제공하겠다고 선언했다. 네이버랩스를 주력으로 삼아 인공지능 기반의 생태계를 기술적 관점에서 풀어나가겠다는 야심이다.

중장기적 프로젝트인 자율주행과 로보틱스 연구도 강조했다. 현재 자율주행의 경우, ‘인지’ 분야에 주목해 정밀한 물체 인식, 상황 판단 등을 연구하고 있으며, 로봇을 통한 정확한 실내 지도 구축 기술에도 주력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인공지능을 담아내는 현실의 하드웨어인 로봇은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인 ‘인터넷 + 제조업’의 핵심이 되어줄 것으로 보인다. 더불어 통역앱 파파고, 자연스러운 음색을 구현한 음성합성 기술과 수년간 축적해온 웹엔진 기술을 적용한 네이버의 브라우저 웨일(Whale)의 티저 등도 소개했다.

네이버의 이러한 전격전은 기술 기반, 즉 원천 기술을 바탕으로 생태계를 꾸리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스스로를 생태계의 주인으로 규정한 상태에서 해당 기술을 다른 기술과 연결하거나, 혹은 빨아들이는 방식으로 대단위 전략을 짜겠다는 뜻이다.

▲ 클로바. 출처=네이버

 

그리고  다시 `플랫폼`으로

당연하지만 글로벌과 기술 기반의 정체성은 플랫폼 성격을 지향한다. 이는 곧 생태계의 파괴력 측면에서 위력을 발휘할 전망이다.

기술 기반의 생태계는 곧 네이버가 가진 기존의 서비스 기반 생태계와 맞물린다. 사용자 경험을 중시하는 서비스 기반 생태계는 강렬한 존재감을 자랑할 수 있지만, 상대적으로 기술 기반 생태계보다 진입장벽이 낮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그런 이유로 네이버는 서비스에 이어 플랫폼, 콘텐츠의 시너지를 넘어 생태계를 꾸리는 기술적 경쟁력을 더욱 극적으로 결합하려는 시도를 보여주고 있다.

당연한 말이지만 네이버는 기술과 글로벌의 정체성을 빠르게 묶어 이를 플랫폼 노하우에 녹여 생태계를 창출하는 쪽으로 나아갈 전망이다.

한성숙 대표의 `스몰 비즈니스`

플랫폼 전략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스몰 비즈니스. 일종의 완전 생태계 인프라 건설이다. 기술 기반의 핵심 전략이 기본적인 생태계를 창출한 상태에서 이를 글로벌로 연결해 일정정도의 영향력을 확보하고, 플랫폼 노하우가 완벽하게 접목되면 그 내부에 스몰 비즈니스의 방법론이 작동하는 방식이다.

한 대표는 스몰 비즈니스를 이끌었던 인사이자, 말 그대로 생태계 전반에 대한 이해가 빠르다. 일각에서 기술 전공자가 아닌 인문 전공자이기 때문에 가능한 전략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결론적으로 스몰 비즈니스의 방법론은 기술-글로벌-플랫폼 전략을 추구하는 네이버의 기본 전제조건이 되는 셈이다. 여기에서 한 대표가 나름의 존재감을 보여줄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