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문화체육관광부의 집계에 따르면 국내 당구장 수는 2만1980개에 달한다. 여기서 당구를 즐기는 동호회인 수는 약 1200만명으로 한국당구연맹이 추정한다. 이를 보면 국내 최대 규모 스포츠라고 볼 수 있다.

당구를 하나의 스포츠로서 즐기려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지난해 대한당구연맹 주관으로 열린 국내 공식 전국대회는 13회 진행됐다. 비공식 전국대회까지 합치면 17회다. 시·도 대회는 지역별로 다르지만 적게 연 10회, 많으면 연 15~20회 정도 실시한다. 대회 개최 횟수가 적다고 볼 수 있지만, 상금 규모만큼은 적지 않다.

▲ DS당구장, 동호인이 상시 시합을 겨룬다 <사진=이코노믹리뷰 장영성기자>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열린 '2016 LG 유플러스컵 3쿠션 마스터스'는 대회 총상금 1억6000만원에 우승상금만 7000만원에 달했다. 큐롬(3쿠션) 부분에서 이례적으로 높은 상금을 내걸었다. 여기에 '2016 3쿠션 세계선수권'에서 준우승을 차지한 김행직(LG 유플러스) 선수를 비롯하여 세계적으로 유명한 쿠드롱과 브롬달 등 대륙별 3쿠션 랭킹 1위 선수들이 참가. 대회 규모와 수준을 높였다. 이 대회는 우리나라 당구 역사에서 처음으로 대기업이 후원한 이례적인 대회이기도 하다.

김봉수 위원장 (사)대한당구연맹 대회위원회 위원장은 “당구 대회 상금 규모는 성격마다 다르다”며 “세계 여러 대회를 두고 보았을 때 국내 큐롬 대회 상금 규모는 큰 편, 올해는 우승상금이 8000만원에 달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회에 참여하는 사람들도 과거와 비교하면 성격이 많이 바뀌었다. 일본 공수도 전설 최배달이 했던 ‘도장 깨기’와 같은 ‘당구장 깨기’를 하며, 전전긍긍하던 아마추어 당구인은 이제 선수가 됐다. 학창시절 함께 편을 맺고 당구를 즐기던 친구는 이제 내기를 위한 돈이 아닌 자신이 속한 동호회나 클럽 이름을 내걸고 같이 시합에 임한다. 그들은 각자 동호회의 자존심을 지킨다는 명목에 다른 지역 구장과 친선경기를 월 1~2회 진행한다고 한다.

한 여성 당구 동호인은 “당구 자체가 섬세한 스포츠이기도 하지만, 동호회 간의 시합을 겨룰 때만큼은 그 섬세의 정도가 아주 날카롭다”며 동호회 시합의 긴장감을 표현했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최근 남성 당구인뿐만 아니라 여성 당구인이 부쩍 늘어났다고 말했다. 여성 당구인이라고는 찾기 어려운 예전 당구 세계에서 당구장의 세련된 변화로 인해 여성 당구인이 날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고 이야기했다. 실제로 여성 동호인 수는 물론 초·중·고등학생까지 당구장을 찾으며 하나의 스포츠로서 배움을 청하고 있다. 예전과 달리 가족들이 믿고 맡길 수 있는 장소로서 발전하고 있다는 증거다.

김정규당구스쿨의 김정규 사장은 “2005년부터 당구 동호회 인원이 꾸준히 상승했고, 당구장 구성 규모가 커졌다”며 “가족 단위 고객은 물론, 30대에서 70대까지 이르는 다양한 연령층과 남녀 구분없이 장애인까지 구장에 와서 당구를 배운다”고 말했다. 당구가 사행성 놀이문화에서 모두의 스포츠로 자리 잡고 있다는 의미다.

 

▲ 부천 플라틴 코리아 동호회 <사진=이코노믹리뷰 장영성기자>

도피처에서 안식처로 (패자는 카운터로)

시청률 조사기관인 TNMS가 2014년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0.368%의 시청률을 보이는 당구 채널은 0.953%의 야구(KBO 리그), 0.824%의 배구(V리그)에 이어 3번째로 시청률이 높은 스포츠 종목 채널이다. 그만큼 당구수요가 있다는 방증이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지난해 발표한 ‘2016년 전국 등록신고 체육시설업 현황’을 보아도 등록, 신고를 마친 당구장은 전체 체육시설의 39.36%를 차지한다. 지난 몇 해 동안 주춤했지만 2005년부터 베이비붐세대가 유입되며 꾸준히 등록률을 지켜왔다.

▲ 업종별 업소수 분포도 <출처=문화체육관광부 2016년 전국 등록신고 체육시설업 현황>
▲ 생계형자영업 업종별 현황 <출처=인천광역시 생계형자영업의 사업체 생존율과 일자리 실태>

불어나기 시작한 당구장은 우리나라 시장 생존율도 뛰어났다. 인천발전연구원이 지난해 발표한 ‘인천시 생계형 자영업의 사업체 생존율과 일자리 실태’에 따르면 인천 지역의 생계형 자영업자 10명 중 7명이 가게문을 닫았다. 2010년에 총 1만1162개소의 가게가 문을 열었고 2013년에 다시 조사해보니 그중 3424개만 살아남았다. 흥미로운 대목은 ‘어떤 업종이 살아남았는가’다. 1위가 편의점으로 54%, 2위는 세탁소 51.7%, 그리고 3위가 바로 당구장 46%로 절반에 가까운 생존율을 보였다. 일자리 생존율은 편의점(66.3%) 다음으로 당구(49.1%)가 2위에 올랐다. 과거의 이미지를 탈피한 당구장들이 속속 등장하면서 대중의 이목을 붙잡았고, 여기에 베이비부머가 합류하면서 장단을 이룬 결과다.

당구 붐이 일고 있는 이유는 6·25전쟁 직후인 1955년부터 1963년 태생을 일컫는 베이비붐세대가 은퇴하며 당구를 여가로 찾는 사람들의 공이 크다. 우리나라의 당구장 문화는 과거 20~30대 남성들의 레저 문화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당구장을 이용하는 손님의 주류가 그들이라는 얘기다. 이들은 당구 시장을 지켜주는 든든한 고객이었다. 그러나 든든한 고객들은 시간을 지나며 나이를 쌓아갔다. 조금 더 지나 보니 사회에서 은퇴하게 됐다. 은퇴 후 과거 향수를 찾아 당구장으로 돌아온 그 시절 20~30대는 지금의 50~60대인 베이비부머가 됐고, 이들은 최근 당구 열풍의 주를 이뤘다.

이러한 관점에서 우리나라의 당구 문화도 이제는 모든 세대에게 공감을 줄 수 있는 새로운 문화로 거듭해 왔다. 과거 담배냄새가 풍기며 다툼을 하는 장소가 아닌 가족과 개인의 여가를 즐기는 공간으로 만들고자 하는 당구업계의 바람도 한몫했다. 여성들 역시 마찬가지다. 감정이 섬세한 여성들이 남성들의 거친 문화를 감수하면서까지 일반 당구장을 드나드는 이유는 이와 같은 당구장의 변화가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어린아이부터 여성, 은퇴한 베이비붐 세대에 이르기까지 당구장으로 끌어들일 수 있는 잠재력이 최근 당구장 트렌드에 함축되어 있다는 말이다.

비록 은퇴한 베이비부머들이 모여 시작된 붐이지만, 그들은 당구장에 일차원적인 목적만 품지 않았다. 당구장은 업계 종사자들과 불어나는 당구 동호인들이 합심하며 새로운 공간을 창출해 냈다. 이제 당구는 아재들의 도피처부터 레저를 즐기기 위한 가족들의 안식처까지 다양한 모습으로 변화하고 있다. 물론 아직까진 그 결과가 뚜렷하게 나타나지 않았다는 점은 분명하다. 허나 그들이 즐기는 요즘 당구는 아마, 과거의 향수와 세월이 불러들인 하나의 피난처임에는 사실이다.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앞으로 당구는 하나의 추억으로서, 가족과 세월의 동반자로서 우리 곁에 자리매김할 것이다.

끝으로 우리나라의 아시안 게임 첫 메달리스트인 김정규 선수가 기자와 인터뷰 도중 나눈 이야기를 빌리며 당구 이야기를 마친다.

“당구가 왜 가족 스포츠로 떠오르는 줄 아세요? 가족 단위가 즐길 수 있는 스포츠는 당구가 최적이에요. 어떤 스포츠라도 가족끼리 이야기하면서 즐길 수 있는 스포츠가 많지 않아요. 물론 가족뿐만이 아니에요. 시합을 겨루는 상대와 자기 생각들을 교감해 가며 즐기는 스포츠죠. 이러한 매력이 과거 당구인들을, 그들의 가족을 당구장으로 다시 불러 들여온 것 같아요. 기자님은 가족과 다 함께 모여 스포츠를 즐겨본 지가 언제죠? 한번 당구장에 가족과 가보세요. 제 말이 무슨 뜻인지 알 수 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