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는 이슈로 덮는다.”

영화 <더 킹>이 현실을 파고드는 송곳 같은 명대사로 관객을 사로잡고 있다. <더 킹>은 무소불위 권력을 쥐고 폼 나게 살고 싶었던 주인공 조인성이 대한민국을 입맛대로 좌지우지하는 권력의 설계자 정우성을 만나 세상의 왕으로 올라서기 위해 펼치는 이야기다.

 

그런데 이런 장면이 그리 낯설지 않다. 실제로 정치권에서 큰 문제가 나올 때마다 새로운 이슈가 나타나는 것은 공공연한 현상이다. 과거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의 금품 제공 리스트가 정치권을 뒤흔든 가운데 스포츠 스타 오승환과 소녀시대 유리의 열애설이 불거졌고, 수지와 이민호의 열애설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자원외교 비리 의혹이 제기되자 이날 공교롭게도 초특급 열애기사들이 쏟아져 나왔다.

이러한 현상을 ‘맥거핀 효과(MacGuffin Effect)’라고 한다. 영화에 관심 있는 이들은 한 번쯤 들어봤음직한 용어다. 맥거핀은 미스터리 스릴러의 거장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이 즐겨 사용했던 기법으로, 관객들의 주의를 분산시키기 위해 사용하는 극적 장치를 가리킨다.

영화 초반에 중요한 것처럼 잔뜩 분위기를 잡고 등장하지만 실제로는 줄거리나 결말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으로 밝혀진다. 사람들은 아무것도 아닌 것에 눈이 팔려 정신없이 끌려 다니다가 어느 순간 별 의미 없이 사라지는 상황에 망연자실하게 된다. 결국 맥거핀은 사람을 유인하기 위한 바람잡이 혹은 낚시용 떡밥인 셈이다.

감독들은 맥거핀에 대한 관객들의 예상을 역이용해서 영화에 집중하게 하고, 반전의 서스펜스를 통해 극적 효과를 끌어올린다. 문제는 영화적 재미를 위한 이 장치가 실제 현실에서 사용된다면 문제는 심각해진다는 것이다.

가장 흔한 예로 인터넷상에서 시선을 잡는 문구들은 맥거핀 효과를 적극 활용한 기막힌 낚시 기술이다. 내용과는 관계가 없는 자극적인 제목의 문구들은 사람들의 주목을 끌어 클릭을 유도한다. ‘김혜수 벗은 사진’이라고 해서 화들짝 놀라 들어가 봤더니, 김혜수가 셀프카메라를 찍은 사진이 담긴 글로 김혜수의 벗(友)은 사진 찍기라며 김을 빼는 식이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는 축구 실력뿐만 아니라 군더더기 없는 탄탄한 근육질 몸매와 잘생긴 외모까지 갖춘 세계적인 축구 스타다. 축구에 관심이 없는 사람조차 알 법한 호날두, 그의 조국 포르투갈에서도 한때는 ‘3F’라는 우민화 정책이 펼쳐졌다.

1926년 군사 쿠데타로 군인들이 정권을 장악한 포르투갈 정치에 혜성처럼 나타난 경제학과 교수 출신의 살라자르는 철권 독재통치로 무려 36년의 장기집권이라는 엄청난 성과를 달성해낸다. 장기집권을 하려면 국민들의 정치 무관심이 지속되어야 함을 잘 알고 있었던 그는 3F에 관심을 집중케 했다.

Futebol(축구), Fatima(선녀 파티마로 상징되는 종교), Fado(포르투갈인들이 사랑했던 음악 파두) 이 세 가지 ‘F’에 아낌없는 지원과 투자를 한 결과 국민들은 정치 대신 축구에 온 관심을 쏟고, 정치 대신 종교로 문제를 해결하고, 정치로 억압받는 분노와 슬픔을 파두로 해소하는 데 익숙해진다. 더불어 교육에 대한 투자는 소홀히 함으로써 정치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은 물론 비판 능력마저 현저하게 떨어지고 만다.

이후 3F 정책은 국민들이 정치에 무관심하길 바라는 거의 모든 독재자들에게 핵심 참고 자료가 되었는데, 우리나라의 경우 전두환 정권의 3S 정책으로 차용된다. 3S는 스포츠(Sports), 섹스(Sex), 스크린(Screen)의 머리글자(Initial)를 딴 것으로 독재정권이 국민의 정치적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해 사용하는 술수로 요약할 수 있다.

12·12 쿠데타로 정권을 잡아 민심을 수습하는 일이 시급했던 전두환 정권은 국민을 열광시키라는 목표하에 3S 정책을 실시한다. 올림픽 유치를 지시한 이유, GNP 2000달러도 안 되는 개발도상국에서 프로야구를 출범시킨 배경, 포르노적 욕망을 분출시키기 위한 에로물의 대량 유통, 영화 활성화 정책 등이 모두 국민의 정치적인 관심과 불만을 다른 곳으로 돌리려는 정치적인 목적에서 시작된 술수였다는 것은 이미 학자들 사이에서 정설로 통한다.

이러한 시선 돌리기는 한곳에 집중되어 있던 국민의 관심을 해체시키고 본질을 보는 눈을 흐리게 만든다. 물론 의도하지 않았든 의도했든 스포츠, 섹스, 영화 등을 보고 즐김으로써 복잡한 현실을 잊고 짜릿한 즐거움을 느끼면 그만이다. 하지만 단순한 즐거움과 쾌락에 매몰돼 정작 중요한 것을 놓치는 것은 아닐지 그것이 염려스러울 뿐이다. <더 킹>의 정우성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