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이밍에 한계란 없다: 게임 하드웨어 경제학>

① ‘게이밍’을 더했더니 ‘부가가치’ 생기더라

② 가상현실 게이밍 시대, 아직 시기상조?

③ 그들은 왜 1.5%짜리 게임기 시장에 도전하나

④ 언제 어디서든 중단 없는 게이밍 꿈꾸다

 

가상현실(VR)게임 ‘VR펀하우스’를 해본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10가지 미니게임으로 구성된 타이틀이다. 가상 세계에서 축구공을 던져 도자기를 깨트리거나 뿅망치를 사방으로 휘둘러대는 식으로 진행된다. 간단하다는 얘기다. 보기에는 간단하지만 여기에는 차세대 물리효과가 모두 녹아 있다.

한 번은 날아오는 그릇을 총으로 쏴서 깨버리는 미니게임을 했다. 그릇이 어찌나 많이 날아들던지 모두 깨트리긴 어려웠다. 그러다 머리 위로 그릇 하나가 날아왔다. 기자는 자신도 모르게 몸을 움직여 피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맞는다고 아프거나 게임에서 지는 것도 아니었다. 그 생생함에 뇌가 속았다.

▲ 사진=이코노믹리뷰 박재성 기자

 

‘가상현실 원년’ 예상 빗나갔다?

가상현실의 핵심은 완전한 몰입이다. 더 이상 유저는 바깥세계에서 게임 속 세상을 들여다보지 않아도 된다. 아예 게임으로 들어가 버리게 되니까. 가상현실은 게임뿐만 아니라 교육, 쇼핑, 여행 등 다방면에 파고들 것이라는 예상이 이미 오래 전에 나왔다.

특히 지난해는 가상현실 원년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다. 기술 자체가 새로운 것은 아니지만 소비자용 가상현실 헤드셋이 다수 출시되면서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할 것이라는 전망이었다. 2017년이 된 지금, 업계 관계자들은 예상이 빗나갔다는 얘기를 한다. 아직 시장이 열리기엔 시기상조라는 의견을 덧붙인다.

방준혁 넷마블 의장이 옳았던 걸까. 그는 2016년 초에 열린 언론행사에서 가상현실에 대한 소신을 밝혀 화제를 모은 바 있다. “2년 전부터 가상현실에 지속적인 관심을 갖고 지켜보고 있습니다. 의외로 게임에서는 시간이 좀 더 걸릴 것입니다.” 그는 가상현실 헤드셋 경량화가 우선 이뤄져야 한다는 말을 더했다.

 

▲ 소니 플레이스테이션VR. 출처=소니

우후죽순 가상현실 체험존, 수익 내는 곳 30% 미만

“현재까지는 시장이 많이 안 좋습니다.” 김영호 피지멘게임즈 대표의 말이다. 그는 가상현실 플랫폼 사업을 추진 중이다. 먼저 중국의 사례를 언급했다. 지난해 중국에 가상현실 체험존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3000개 이상에 달하는 정도인데 그중 수익을 내는 곳은 30% 미만이라는 설명이다.

국내에도 가상현실 체험존이 줄줄이 생겨나고 있는 현실이다. 이 역시 중국의 선례를 피해가기는 어려울 거라고 김영호 대표는 지적했다. “가상현실로 즐길 콘텐츠가 부족합니다. 그나마 있는 것도 싱글플레이 중심 무한반복형 콘텐츠죠. 처음 이용하는 고객은 신기해 하지만 연속성을 갖기 힘들어 시장이 커나가지 못하고 있죠.”

지적이 이어졌다. 시장에 대한 기대가 적은 까닭에 콘텐츠 제작에 투자가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이런 분위기 탓에 콘텐츠가 질적으로 떨어지고, 양적 부족으로 유저들이 더욱더 만족하지 못하게 되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이다. 악순환이다.

그는 솔루션도 얘기했다. “시장 형성을 위해선 3박자가 맞아야 하죠. 가상현실 하드웨어 인프라를 구축하려는 사업자가 수익이 돼야 합니다. 콘텐츠 제공자(CP)가 수익성을 기대하고 콘텐츠 개발에 투자해야 하죠. 사용자가 만족해 과금으로 이어져야 모든 게 순환이 되고요.”

▲ 구글 데이드림. 출처=구글

숫자엔 위기와 기회에 동시에 나타난다. 시장조사업체 디지캐피털은 2016년 초 그해 가상현실 시장 매출 규모가 38억달러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후 연말에 발표한 보고서에서는 28억달러로 내려잡았다. 업계 관계자들이 느끼는 분위기가 지표에도 반영된 셈이다.

다만 ‘올해부터가 진짜’라는 기대감 역시도 숫자에서 찾아볼 수 있다. 디지캐피털은 올해 가상현실 시장 규모가 50억달러에 달할 것으로 내다봤다. 지난해의 2배 규모다. 이후 폭발적으로 성장해 2020년 1500억달러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시장이 기대한 대로 흘러가리라는 보장은 없지만.

 

글로벌 GPU 공룡의 가상현실 게이밍 시대 준비

그렇다면 가상현실 게이밍 시대 주역은 누가 될까. 여러 소프트웨어는 물론 하드웨어 업체들이 물밑에서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그중에서 글로벌 GPU(그래픽처리장치) 공룡 엔비디아는 야심차게 가상현실 시대를 준비 중이다.

“지포스(GeForce)가 전 세계 외장 그래픽카드 시장의 절반 이상 점유율을 확보하고 있는 만큼 우리에게 차세대 가상현실 게임시장의 의미는 남다릅니다.” 김승규 엔비디아코리아 컨슈머 영업담당 상무의 설명이다.

그는 말을 이어갔다. “앞으로 VR 게임 시장이 활성화되면 이를 구현할 그래픽 요구사항도 증가할 것입니다. 이에 따라 엔비디아의 독보적인 GPU 기술 리더십에 대한 시장 내 수요도 더욱 증가할 것으로 보입니다.”

엔비디아는 다각적으로 가상현실 시대에 다가서고 있다. 가상현실 콘텐츠를 생생하게 구현해주는 파스칼 아키텍처 기반 GPU를 공개하는가 하면 10여년에 걸쳐 3차원 물리효과를 구현하는 기술인 피직스(PhysX)를 개발했다.

VR 환경에서 그래픽 효과를 구현하는 데 필요한 연산을 효과적으로 처리하기 위한 기술이 탑재된 SDK(소프트웨어 개발 키트) ‘VR 웍스’를 선보이기도 했다. 앞서 언급한 VR펀하우스도 엔비디아의 라이트스피드 스튜디오에서 개발한 게임이다.

 

결국엔 열릴 시장, 하이엔드 디바이스에 주목해야

모두가 엔비디아처럼 시장에 포괄적으로 접근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국내 게임사의 경우 콘텐츠 개발 부문에 조심스럽게 접근 중이다. 조이시티, 로이게임즈, 엔씨소프트, 드래곤플라이 등이 가상현실 게임 개발에 도전하고 있다.

여러 가상현실 콘텐츠 분야 중에 게임이 차지하는 무게감은 남다르다. 게임엔진회사 유니티가 발표한 ‘2016 모바일·가상현실 게임시장 리포트’에 따르면 미국 가상현실 유저 81%가 게임을 하기 위해 가상현실 헤드셋을 사용 중이다. 시장조사업체 슈퍼데이터리서치는 내년 가상현실 콘텐츠 수익 중 게임이 차지하는 비중이 48%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떤 가상현실 플랫폼을 겨냥한 콘텐츠를 만들어야 하는가. 지난해에는 스마트폰과 결합해서 사용하는 모바일 가상현실 헤드셋 판매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삼성전자의 기어 VR이 451만대 공급되면서 71.6%로 점유율 1위를 기록했다. 기어 VR을 포함한 모바일 VR 헤드셋 비중은 전체의 95%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슈퍼데이터리서치는 올해에도 모바일 VR이 시장을 주도할 것으로 전망했다. 다만 저렴한 디바이스 가격과 콘텐츠 가격이 소액인 점을 들며 지속적으로 가상현실 시장을 주도하기엔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2018년 이후엔 PC·콘솔 기반 하이엔드 디바이스 보급이 확대되면서 고가 콘텐츠 판매가 증가해 가상현실 시장을 주도적으로 이끌어갈 것으로 예측했다. 2020년에는 PC·콘솔 기반 디바이스가 전체의 79%를 차지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가상현실 게이밍 시대를 주도할 킬러콘텐츠를 제작하려는 개발사 입장에서 고려해야 할 시장변화다.

“가상현실 헤드셋의 가격이 아직 높은 편이고 인기 콘텐츠의 수가 부족하다는 것이 가상현실 산업이 아직 크게 부상하지 못하고 있는 원인으로 분석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가상현실은 궁극적으로 기술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기 때문에 문제 요인들이 점차 해소되면서 시장이 크게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봅니다.” 김승규 엔비디아코리아 상무의 말이다.